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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8월 16일 13시 58분 KST

약자 혐오 끊이지 않는 기안84 : 이제 네이버와 MBC가 답할 차례다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혐오 재생산의 공범들

MBC
기안84

또, 기안84다. 웹툰 작가 겸 방송인 기안84가 네이버에서 연재 중인 웹툰 <복학왕>은, 최근 에피소드 ‘광어인간’에 묘사된 여성혐오적 시각으로 다시금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극 중 업무 능력이나 사회적 스펙이 부족한 것도 모자라 업무 태도도 불성실한 20대 여성 봉지은은 ‘애교’의 힘으로 능력의 부족을 메우려 든다. 봉지은은 인턴십이 끝나던 날 회식 자리에서 배 위에 키조개를 올려놓고 부수는데, 이를 인상적으로 본 40대 노총각 팀장은 봉지은을 최종 합격시킨다.

‘능력이 없는 여성 구직자가 귀여움을 무기로 입사한다’는 발상부터가 실제 구직전선에 나선 여성들이 마주하는 현실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모독하는 것이지만, 더 큰 문제는 그 과정의 묘사다. 기안84는 한 컷을 할애해 봉지은이 열심히 깬 조개의 살을 클로즈업으로 묘사한다. 유달리 번들거리게 그려진 조개의 살이 클로즈업된 뒤, 주인공 우기명에게 40대 노총각 팀장은 말한다. 그날 회식 자리에서 봉지은과 스킨십을 시작하고 사귀게 되었다고.

기안84의 해명처럼 단순히 ‘해달을 흉내 내는 귀여움’을 표현하기 위해서라면, 굳이 조개를 클로즈업으로 잡을 필요는 없었으리라. 한 컷을 할애해 그 광경을 그리고는 스킨십이 있었다고 스토리를 전개한 것은 엄연히 작가의 선택이며, 그게 암시하는 바가 없다고 한다면 독자를 바보로 아는 처사다. 

'복학왕'의 에피소드 광어인간 

분노한 독자들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기안84의 작품 연재 중단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을 올렸고, 이틀 만에 9만명에 가까운 누리꾼이 서명에 동참했다. 기안84가 고정출연 중인 문화방송(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 게시판에도 그의 하차를 요구하는 글들이 줄줄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사태가 커지자 기안84는 조개를 대게로 바꿔 그린 수정고를 올리며 사과문을 올렸지만, 누리꾼들은 물론 언론들 또한 “보나마나 또 <나 혼자 산다> 오프닝에서 적당히 주눅 든 표정으로 앉아 있다가 대수롭지 않은 일인 양 건성으로 사과하고 끝낼 것”이라는 시나리오를 예상 중이다. 이미 여러 차례 비슷한 논란이 일 때마다 같은 식으로 대응해왔던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기안84를 옹호하는 이들 중에선 “작가가 모든 독자를 만족시킬 수는 없으며, 그렇다는 이유만으로 작가의 하차를 요구할 순 없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물론 그 어떤 작품도 모든 독자를 다 만족시킬 수는 없다. 그리고 단순히 작품이나 작가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하차를 요구하는 건 잘못된 일이다. 단순히 소비자들의 항의가 거세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하차시키는 일을 무한정 긍정한다면, 제 목소리를 내며 일자리를 지킬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으리라.

 

약자 혐오를 부추기다 

그러나 지금 기안84의 하차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과연 그런가? 어떤 작품이 지속해서 사회적 편견을 재생산하고 사회적 약자를 향한 증오를 부추긴다면, 그 유해성에 대한 문제 제기를 단순히 좋고 싫음의 문제라고 보긴 어렵다. 기안84는 이미 작품을 통해 꾸준히 혐오를 ‘유머’랍시고 전시해왔던 전력이 있으며,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그는 ‘표현이 서툴렀다’, ‘재미를 주려고 하다가 선을 넘었다’ 같은 변명으로 일관했다. 자신이 재미를 주기 위해 왜 유독 차별적이고 혐오적인 표현들만 골라서 사용했는지는 언급한 적이 없었는데, 이는 사태를 무마하기 위해 논의를 회피한 쪽에 가깝다. 그리고 이번에도 별다른 조치 없이 넘어간다면, 높은 확률로 다음에도 비슷한 일이 터질 것이다. 

청각 장애인 비하 논란을 일으켰던 과거 작품 

일각에선 “작가들에게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더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물론 창작에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건 중요한 일이다. 세상엔 도발적이고 논쟁적인 표현을 통해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고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훌륭한 작가들도 있으며, 안전하고 무난한 표현만을 허용하는 것은 그와 같은 도전을 가로막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문제가 되는 <복학왕>은, 그 표현의 자유를 가지고 상대적 약자들에게 제기되어왔던 뻔한 스테레오타입을 게으르게 재생산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혐오 표현을 ‘표현의 자유’라는 이유로 보호하면, 그 결과는 이미 존재하는 사회적 편견의 게으른 재생산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복학왕>에는 여성은 서른이 넘으면 그 가치를 잃는다거나, 청각장애를 지닌 농인은 청인과 달리 마음속으로 혼자 생각할 때도 그 표현이 어눌할 것이라거나, 저개발국가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은 낙후된 숙소를 보면서도 감탄할 것이라는 식의 편견이 꾸준히 등장해왔다. 만만한 사람을 때리는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면서 “표현의 자유가 훌륭한 작품을 만드는 것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한다면, 대체 여성과 장애인과 외국인 노동자를 비하하는 것에 어떤 훌륭함이 있는지 되물을 수밖에 없지 않겠나?

 

사회현상 그대로 반영했을 뿐이라고? 

누군가는 <복학왕> 시리즈는 한심하고 답 없는 청년들이 찌질거리는 모습을 극사실주의적으로 그린 작품일 뿐, “사람을 차별하는 작품”과 “사람을 차별하는 사람을 다룬 작품”은 다르다고 말한다. 네이버 웹툰 또한 과거 <복학왕>을 비롯한 웹툰들이 여성혐오로 비판받을 때마다 “사회현상을 그대로 보여준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는 말로 작품을 향한 비판을 방어해왔다.

그러나 <복학왕> 시리즈는 주인공 우기명이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고난을 겪으며 그 고난의 결과로 좌절감이 누적되는 과정은 공들여 보여주며 감정 이입할 장치들을 열어놓는 반면, 작품이 조롱하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선 그런 장치를 마련하지 않았다. <복학왕>은 우기명의 시야를 렌즈 삼아 세상을 그리는 작품이라는 한계가 분명하고, 주인공과의 거리두기에 실패한 탓에 결국 그 답 없는 청년의 혐오를 아무 비판 없이 재생산하고 있다.

또 어떤 이는 “작가와 작품은 구분해서 봐야 하며, 작품이 안 좋다고 해서 작가의 다른 활동, 이를테면 <나 혼자 산다> 등에 출연하는 방송 활동까지 제약하는 건 부당한 일”이라고도 주장한다. 그러나 그는 웹툰 활동과 방송 활동에서 모두 같은 페르소나인 ‘기안84’를 사용하고 있으며, 그가 웹툰과 방송에서 보여주는 언행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웹툰에서 야기된 논란을 방송에서 간략히 언급하고 사과하며 무마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는 것만 봐도, 그의 웹툰 활동과 방송 활동은 연장선상에 놓인 일임을 알 수 있다.

게다가 그는 방송에서도 “만일 엄현경이 기안84의 여동생이었다면 어땠을 것 같냐”는 질문에 “부적절한 관계가 되지 않았을까”라고 답한 바 있으며, 그로 인해 받은 비판을 “예능은 예능으로 보자”는 말로 옹호받은 전례가 있다. 웹툰에서나, 방송에서나, 같은 페르소나가 같은 일을 반복 중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혐오 표현을 일삼았던 이가 그 어떤 제재도 없이 꾸준히 방송에 출연해 유명해지고 그를 통해 축적한 부로 건물을 사들이는 과정이 생중계되는 건, 보는 이들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보낸다. 성공을 위해서라면 약자를 혐오하고 조롱하는 방식을 택해도 사회가 그를 용인한다는 메시지 말이다.

실제로 <복학왕>의 댓글난은 온통 사회적 약자를 비하하고 증오하는 댓글이 판을 친다. “이 만화 보는 사람들 사이에선 이렇게 말해도 된다”는 분위기가 형성된 탓에, 비슷한 생각을 하는 이들끼리 거침없이 발언하고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는 걸 확인하며 자기 확신을 키우고 있는 셈이다. 기안84의 활동은 보는 이들이 약자에 대한 증오와 혐오를 거침없이 표현하도록 독려하는 ‘깨진 유리창’이 되었다.

누군가는 또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고 말한다. 지금 분노한 사람들은 자연인 김희민이 몹쓸 사람이라고 이야기하거나, 그렇기 때문에 그를 축출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그가 ‘기안84’라는 페르소나를 쓰고 보여준 일련의 행동에 대해 적절한 책임을 묻고 있다. 사람 자체를 단죄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저지른 행위를 처벌하는 것, 그게 근대법의 정신 아닌가? 이제 걸어 다니는 깨진 유리창이 된 기안84와 그 깨진 유리창을 통제할 생각은커녕 꾸준히 옹호하면서 상황을 키워온 네이버와 문화방송이 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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