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총선거
2020년 03월 29일 09시 27분 KST | 업데이트됨 2020년 03월 29일 09시 27분 KST

"아줌마가 뭘 안다고 국회의원이 돼?" 악플에 '태호 엄마'는 상처받지 않는다

[2020 총선 인터뷰] 이소현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후보 21번

HangangKim / Huffpostkorea
이소현 

 

2019년 5월 15일 저녁, 항공사 승무원인 이소현씨(37)는 비행 때문에 인도 뭄바이에 있었다. 하나밖에 없는 아이 태호(8)가 축구클럽에서 돌아올 시간인데, 아직 오지 않고 있다는 연락이 왔다. 무슨 일일까. 사고가 났다고 했다. ‘좀 다쳤겠지. 괜찮을 거야’ 스스로를 다독였다. 먼 나라에 있어 당장 뛰어갈 수도 없었고, 학원에서 집까지는 멀지도 않을뿐더러 아파트 단지가 많은 곳이라 속도를 높이 내기도 어려운 도로였기 때문이다.

호텔 방에서 기도를 하며 연락을 기다리던 중 드디어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받자마자 ”어때?”라고 물었는데, 곧바로 대답하지 못한다. 아무 말도 못 하던 남편이 말문을 열었다. ”태호가 유찬이랑..” 소현씨는 그 순간 자기도 모르게 뒷말을 듣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며 휴대폰을 내던졌다. 갑작스러운 비명에 놀란 동료 승무원들이 소현씨의 방으로 달려왔다. 소현씨를 대신해 동료가 남편과 통화를 하는데 이 소리가 들렸다. ”하늘나라로 갔대..”

그날 이후 소현씨의 인생은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축구클럽 학원은 알고 보니 ‘서비스 판매용품점‘으로 등록돼 있었다. 학원 원장이라고 생각했던 이는 사실 ‘사장‘이었고, 통학버스 차량은 노란색으로 칠했을 뿐 어린이 보호 차량이 아니었다. 보호자 없이 코치가 되는대로 아이들을 실어 날랐고, 안전교육도 없었고 보험도 제대로 들어있지 않았다. 이 모든 것들이 현행법에 따르면, ‘별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주변에 학원을 안 보내는 집이 없었건만, 이 사실을 아는 부모는 아무도 없었다.

언제든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올 수 있음을 알게 된 이상 소현씨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청와대 청원을 시작했고, 모든 통학용 자동차를 어린이 통학버스 신고대상에 포함시키자는 걸 골자로 한 ‘태호·유찬이법’의 발의를 이끌었다. 통과를 촉구하며 날마다 국회를 찾아갔건만 법안은 끝내 국회에서 최종 통과되지 못했다.

절망하던 소현씨는 ”그러지 말고 국회에 들어와 직접 해보라”는 더불어민주당의 영입 제안을 받아들여, 4·15 총선에서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후보 21번이 됐다. ”아줌마가 무슨 전문성이 있다고 국회 의원이 되냐”는 악플이 소현씨에게 쏟아졌다.

3월 23일 허프포스트와 만난 소현씨는 악플에 대해 ”상처를 전혀 받지 않는 게 저도 인정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라며 ”그런데 저처럼 평범한 사람은 국회에 가면 안 되느냐”고 반문했다.

소현씨는 ”목마른 정도가 아니라 피눈물 나는 사람이 손톱 빠지도록 우물을 파는 심정으로 정치를 통해 사회를 바꿔보기로 했다”며 ”아이의 안전에 있어서만큼은 물러서지 않고 싸울 것”이라고 결기를 드러냈다. 소현씨는 온화하면서도 강단 있는 모습이다. 태호를 떠나보낸 후 둘째를 임신한 소현씨는 오는 5월 출산을 앞두고 있다. 아래는 소현씨와 나눈 대화들이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소현씨와 아기의 건강은 어떤가요?

오히려 첫째를 임신했을 때보다 건강은 더 좋은 것 같아요. 하고자 하는 일에 집중해서 그런지 팔팔해요.(웃음)

그럼 임신 상태에서 국회를 찾아가 태호·유찬이법 처리 활동을 하신 거잖아요. 너무 힘들었을 것 같은데 ”태호가 움직이게 해준다고 생각해 별로 힘들지 않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어떤 의미인가요?

차가운 국회 바닥에 앉아서 의원들을 기다리기도 하고, 입덧도 하고.. 되게 힘들긴 했는데요. 그렇게 무너질 때마다 갑자기 떠나보낸 아이를 생각하면 힘든 것도 아닌 거예요. 태호를 잃고 처음에는 억울하기도 했어요. 법적 제재가 있었더라면 학원 차량 운행이 그렇게 엉망진창으로 되진 않았을 텐데. 그러다가 더 나아가서 ‘법과 제도가 바뀌어야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됐죠. 

HangangKim / Huffpostkorea

한국 정서상 임신부가 힘든 활동을 한다고 하면 일단 걱정하는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데요.

맞아요. ‘도대체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네가 그렇게 해서 남는 게 뭐야?’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하지만 저와 남편은 확고했어요. 이런 종류의 사고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거잖아요. 국회에 관련 법안이 방치돼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이상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어요.

임신하면 힘들다고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임신한 여성이 그렇게 연약한 존재이기만 한 건 아니네요?

아, 저도 이번에 처음으로 느꼈어요. 첫째 때는 한없이 쉬어야 하는 줄 알았는데. 밖에서 활동하고 그랬더니 오히려 컨디션이 더 좋아지더라고요. 그런데, 이게 다른 임신부에게도 적용될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어요.  

뉴스1
태호 가족 및 정치하는 엄마들 관계자들이 2019년 11월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회의장 앞에서 피켓을 들고 어린이생명안전법안 국회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맨 오른쪽이 이소현씨다. 

# ‘태호 아빠’ 아닌 ‘태호 엄마’

 

국회에서 태호·유찬이법 처리 요청할 때 보라색에 ‘페미니스트 키우기’(raising a feminist)라는 문구가 적힌 옷을 입으신 게 인상 깊었어요. 어떤 옷인가요?

제가 활동하는 시민단체 ‘정치하는 엄마들’ 옷이에요. ‘정치‘와 ‘엄마‘는 언뜻 잘 연결되지 않잖아요. ‘엄마가 무슨 정치야?’ 대체로 이런 반응인데. 저희는 정치가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는 거라고 생각하고, 정치를 하는 게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엄마’라고 돼 있지만 반드시 엄마여야 하는 게 아니라 육아를 하는 이들을 말하고요. 그래서 아빠, 삼촌, 할아버지, 할머니 등등 누구나 가입할 수 있어요.

우리는 모든 아이가 평등 속에서 자라나길 바랍니다. 지금 텔레그램 n번방 사건만 봐도, 여성을 도구보듯 하는 그들이 정말 끔찍하죠. 아이들 모두에게 성평등 교육을 해야 해요. 어른들이 성평등하지 않은데 말로만 가르치면 교육이 안 되니까, 어른들이 만든 불평등도 바꿔 가면서요.

비례대표 경선하실 때 ”아이를 보내고 이소현이라는 이름보다 ‘태호 엄마’로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태호라는 이름을 보내주려고 합니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개인적으로는 태호를 못 보내죠.(웃음) 하지만 정치에 발을 들이게 됐잖아요. 단지 태호 엄마로서 내 아이만을 위한 활동을 하는 게 아니라, 제 둘째 아이 그리고 다른 모든 아이의 안전을 위해서 활동하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는 의미에요. 

뉴스1
2019년 11월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어린이 교통안전 강화 대책 당정협의에 고 태호군 어머니 이소현씨와 고 해인양 어머니 고은미씨가 고인의 영정을 든 채 회의를 지켜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인재영입위원회가 소현씨를 오랫동안 설득했다고 들었습니다. 자세히 말해주실 수 있을까요.

지난해 말이었어요. 12월 10일 본회의 끝나고 일주일 뒤쯤이었던 것 같아요. 민주당에서 전화가 왔는데, 민식이법은 통과됐지만 태호·유찬이법은 통과가 안 됐잖아요. 뭔가 할 이야기가 있나 보다 생각하고, 사실은 (태호·유찬이법이 통과되지 않은 것에 대해) 따지러 갔어요. 그런데 가자마자 ‘태호네가 총선에 나가봤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한대 맞은 느낌이었죠.

‘무슨 소리냐.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고, 이제 (법안 통과는) 당신들이 해야 할 일이다‘라고 했는데, ‘직접 해보지 않으시겠느냐‘고 하더라고요. ‘평범한 엄마인 내가 어떻게 감히 그런 일을 하지?’ 이런 생각이 들면서도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렸던 것 같아요. 국회에 들어갈 꿈을 품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린이 안전 법안만큼은 만들어 놓으리라는 결심을 강하게 했기 때문에요. 특히 저를 자극한 말이 ‘다음 국회가 열리면 또 국회를 찾아다니지 말고 직접 해봐라’ 였어요. 

뉴스1
1월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인재영입 발표 기자회견에서 '태호엄마' 이소현씨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민주당에서 ‘태호 아빠‘가 아닌 ‘태호 엄마’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도 궁금하네요.(웃음) 사실 태호 아빠는 정치에 관심이 많은 편이었고, 저는 별로 없었거든요. 그런데 지난해 사고가 벌어지고 여기까지 쉼 없이 달려오면서 정치라는 게 정말 생활 가까이 있는 거구나 느꼈어요. 당장 집 밖에 나가 신호등 하나 건너는 것도 정치에 의해 만들어진 법에 적용을 받는 거잖아요.

‘왜 하필 나지?’ 했는데, 태호 아빠가 그러더라고요. ‘몰랐는데 네가 나보다 더 강한 것 같다’고. 같이 달려오면서 태호 아빠는 많이 흔들릴 때 저를 보면서 의지를 다잡았다고 하더군요. 제가 더 강한가 봐요.(웃음) 

HangangKim / Huffpostkorea

# 소현씨가 국회에서 반드시 하고 싶은 것

 

평범한 회사원이었는데 갑자기 정치인이 된 것에 대해 친구나 지인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뭐라고? 오마이갓’ 이었죠.(웃음) 집에서도 그렇고, 가까운 친구들도 걱정을 많이 했어요. 이용당하는 거라고.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이용당해도 좋고, 저도 이용하겠다고. 이용해서, 아이들이 안전한 환경을 만들 거라고.

제 기사에 ‘이 아줌마가 무슨 전문가라고 국회를 가’라고 악플이 달려요. 그런데 상처를 전혀 받지 않는 게, 저도 인정하거든요. 그런데 왜 저처럼 평범한 사람은 국회에 가면 안 되나요? 국회는 특별한 사람만 가는 곳인가요?

지난해에 매일 국회에 찾아가면서 정말 의문이었죠. 도대체 국회는 뭐 하는 곳이고, 국회의원은 뭐 하는 사람들이길래 이렇게 문제점을 조목조목 다 지적해서 가져다줘도 움직이지 않는지 말이에요. 우리나라에서 애들을 학원에 안 보내는 사람이 없는데 왜 이렇게 중요한 문제를 그냥 내버려 두는 걸까. 왜 나는 여기서 ‘보채는 민원인’ 취급만 받는 걸까. 

비례연합정당인 더불어시민당에 녹색당과 같은 소수정당이 빠지면서 ‘소수정당의 원내 진입’이라는 명분을 내던졌다는 비판이 있는데, 이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소수 정당의 정치참여라는 선거법 취지와 조금 틀어진 부분도 있기 때문에, 아쉬운 마음은 있어요. 함께 같은 뜻으로 갔으면 좋았겠지만, 뜻이 맞지 않는 정당과 굳이 힘들게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각 정당의 의견도 존중합니다.

국회에 가서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것, 그리고 반드시 하고 싶은 것을 말해주세요.

저로 인해서 국회 문턱이 낮아졌으면 좋겠어요.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 정치인을 했으면 좋겠다는 게 첫번째고요. 두번째는 아이들이 타는 통학버스만큼은 믿고 맡길 수 있도록 만들고 싶어요.

더 나아가서는 ‘어린이 안전 부처’를 만들고 싶어요. 어린이집에서 일어나는 일은 보건복지부, 초등학교는 교육부 소관이고 중구난방이거든요. 통학 차량 관련해서는 경찰청에 문의해야 하고요. 애당초 관리가 될 수 없는 구조인 거죠. 컨트롤타워를 만들어서 어린이 안전 문제는 통합적으로,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HangangKim / Huffpostkorea

다양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히는 국회에서 일하다 보면, 흔들리는 순간이 있을 텐데요. 이럴 때는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

지난해 국회 법안소위 때 정말 화가 많이 났어요. ‘(통학 차량 관리 강화하면 돈이 소요되는데) 영세업자들의 반발은 그럼 어떻게 하냐’는 거예요.

국회의원들은 중간자 역할로 절충을 해야 하잖아요. 정부 지원금을 받게 만들든지, 아니면 학부모들이 일정 부분을 부담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든지. 어느 부모가 자기 아이 안전을 위해 몇만원씩 내자고 하면 안 내겠어요? 하도 논의가 진척되지 않길래 저희가 그런 걸 제안했거든요.

그래도 안 통해요. 이 문제가 정말 중요하고, 시급해서, 빨리 해결해야 한다는 의지가 없었던 것 같아요. 저는 이럴 때, ‘어린이의 안전’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두고 추진할 거예요. 안전에 있어서만큼은 돈이 좀 들더라도 강력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러서지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