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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 브렉시트 연기를 요청했고, 상황은 점점 "엉망진창"이 되어가고 있다

영국은 브렉시트 연기를 공식 요청했다. 그러나...

  • 허완
  • 입력 2019.03.21 11:59
  • 수정 2019.03.21 14:21
ⓒBloomberg via Getty Images

″우리가 아는 건, 이건 XXX 엉망진창이라는 게 전부다. 그게 모두가 아는 유일한 진실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영국의 한 장관은 현재 상황을 이렇게 진단했다.

브렉시트가 열흘도 채 남지 않은 지금, 영국 정치권의 혼돈이 계속되고 있다. 

20일(현지시각) 벌어진 일들을 간단히 정리해보자.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는 유럽연합(EU)에 브렉시트 연기를 공식 요청했다. EU는 영국 의원들이 다음주에 브렉시트 합의안을 통과시킨다는 전제 하에 브렉시트 연기 요청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답했다. 

그런데, 이날 밤 메이 총리는 대국민 기자회견을 열어 ‘브렉시트가 이렇게 된 건 나 때문이 아니고 의원들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여야 의원들은 격분했다. 브렉시트 합의안 통과 가능성이 높아지기는 커녕 오히려 더 낮아졌다는 평가다.

 

 

영국 : 브렉시트를 3개월만 미뤄주셔야겠습니다

 

메이 총리는 이날 도날드 투스크 EU 상임의장에게 공식 서한을 보내 브렉시트 연기를 요청했다. 애초 영국은 3월29일부로 EU를 탈퇴할 예정이었다. 메이 총리는 탈퇴 날짜를 6월30일로 미뤄달라고 했다. 3개월짜리 ‘짧은’ 연기다.

이에 앞서 열린 각료회의에서는 격론이 벌어졌다. 짧은 연기를 주장하는 쪽과 더 긴 연기를 주장하는 쪽이 팽팽히 맞섰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브렉시트가 장기간 미뤄지면 영국은 5월말에 열리는 EU의회 선거에 어쩔 수 없이 참여해야 한다.

메이 총리는 EU에 보낸 서한에서 영국이 EU의회 선거에 참여하는 것은 영국에게도 EU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적었다. 또 그는 이미 두 차례 부결됐던 브렉시트 합의안에 대한 3차 승인투표(meaningful vote)를 다음주에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메이 총리는 3차 승인투표가 성사될 수 있도록 지난주에 타결한 브렉시트 합의안 수정안을 EU이사회가 승인해 줄 것을 요청했다.

존 버커우 영국 하원 의장은 ‘근본적인 변화’가 없는 한 이미 부결된 합의안에 대해 재차 승인투표를 할 수 없다고 밝혀 이번주에 승인투표를 실시하려던 메이 총리의 계획을 좌절시킨 바 있다. 

 

EU : 브렉시트 연기? 그냥 해드릴 수는 없고요... 

 

메이 총리로부터 브렉시트 연기 요청 서한을 받은 도날드 투스크 EU 상임의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EU의 입장을 설명했다.

″짧은 연기는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원에서 브렉시트 합의안(Withdrawal Agreemnet)가 통과될 것이라는 전제 하에서요. 그와 같은 연기의 기간을 얼마로 할 것이냐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열려 있습니다.”

즉, 영국 의원들이 다시 한 번 브렉시트 합의안을 부결시키면 브렉시트 연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그렇게 되면 노딜(no deal) 브렉시트, 즉 아무런 합의 없이 영국이 무작정 EU를 탈퇴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유력한 가능성으로 떠오르게 된다.

EU는 그동안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브렉시트 연기 요청을 수용할 수 있다’고 밝혀왔다. 영국이 브렉시트를 연기하기 위해서는 EU 지도자들의 만장일치 합의가 필요하다. 영국 하원도 ‘3월29일’로 되어 있는 브렉시트 관련 법안을 수정해야 한다.

장-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외무장관은 이날 오후 자국 의회에 나와 브렉시트 연기를 거부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메이 총리가 ”(합의안 통과) 전략에 대한 충분한 보장”을 제시하지 못하면 브렉시트 연기는 거부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EU 고위 외교관은 메이 총리의 서한을 이렇게 평가했다. ”이제 우리 앞에는 과연 그 내용이 영국 의회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는 서한이 하나 놓여져 있다.”

또다른 EU 외교관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엄마나 친구들이 이 엉망진창인 상황에 내가 어떤 역할을 했냐고 물어보면 나는 (영국의) 지연, 연장, 무책임의 전략과 여야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무능 (때문)이었다고 답할 것이다.”

 

메이 총리의 대국민 기자회견 : ‘브렉시트가 이 지경이 된 건 의원들 탓입니다’

 

놀라운 일은 그 뒤에 벌어졌다. 메이 총리는 이날 밤 대국민 기자회견을 열어 여론전에 나섰다.

뜻밖에도, 메이 총리는 자신이 간절히 설득해야 할 의원들을 싸잡아 사실상 ‘공공의 적’으로 돌렸다. 더 많은 의원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도 모자랄 판에 브렉시트 위기의 모든 책임을 의원들에게 떠넘긴 것이다.

″저는 이렇게 확신합니다. 시민들은 (정치인들에게) 질려버렸습니다. 여러분들은 (정치권의) 내분에 진절머리가 났습니다. 여러분들은 정치적 게임과 불가사의한 절차상의 의견 불일치에 진절머리가 났습니다.”  

″(국민들은) 의원들이 브렉시트만 가지고 얘기하는 것에 지쳤습니다. 국민들은 자녀들의 학교, 국가 보건의료 서비스, 흉기 범죄 같은 진짜 문제들에 대해 우려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여러분들은 브렉시트 절차의 이 단계가 끝나서 마무리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편입니다. 이제 의원들이 결정할 때입니다.”

″의원들은 국민투표 결과를 받들어 우리의 돈과 국경, 법률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아오면서 일자리와 국가안보를 지키도록 해주는 이 합의안과 함께 탈퇴하기를 원하는 걸까요? 의원들은 합의안 없이 탈퇴하기를 원하는 걸까요? 아니면 의원들은 아예 탈퇴를 원하지 않는 걸까요?” 

″우리가 결정을 내릴 때입니다. 지금까지 의회는 결정을 내리는 것을 피하는 데에만 열중해왔습니다. 안건에 안건, 수정안에 수정안이 거듭 상정됐지만 의회는 무엇을 원하는지 결정을 내린 적이 없습니다.”

 

여야 의원들은 일제히 메이 총리를 비판하고 나섰다. 합의안에 찬성표를 던질 의향을 밝혀왔던 리사 낸디 노동당 의원은 메이 총리의 기자회견이 ”위험하고 무책임했다”고 말했다.

전직 장관 출신 한 보수당 의원은 ”그게 사실라 하더라도 빌어먹을 그 말을 꺼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말했고, 또다른 의원은 메이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메이 총리는 21일 EU 정상회의가 열리는 벨기에 브뤼셀로 이동해 EU 지도자들과 브렉시트 연장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다. 다만 이번 회의에서 브렉시트 연기 여부가 결정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투스크 의장은 밝혔다.

메이 총리는 다음주에 하원에 3차 승인투표를 상정할 계획이다. 그러나 통과 여부를 장담하기는 더 어려워졌다. 만약 부결되면, 브렉시트 날짜까지는 불과 2~3일 밖에 남지 않게 된다. 메이 총리의 위험한 도박이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Bloomberg via Getty Images

 

 

허완 에디터 : wan.heo@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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