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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그저 최선을 다해 살아갈 뿐" 가슴 전절제로 하늘 무너질 듯 슬퍼했던 유방암 환자가 시간 지나면서 깨닫게 된 중요한 인생의 진리

당장의 좋은 일이 정말 좋은 일일까? 사실 모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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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사진  ⓒKateryna Kovarzh / EyeEm via Getty Images

“배액량이 줄지 않네요. 배액관 달고 퇴원하셔야겠어요. 하루 배액량 잘 확인하시고, 배액관이 막히지 않게 이 부분을 잘 눌러주셔야 해요.”

가슴 절제 수술 뒤 일주일 동안 입원할 때, 간호사는 정해진 시간마다 배액량을 확인하고 배액관을 비워주고 소독도 해주었다. 배액관은 수술 부위에서 나오는 분비물이나 혈액 등이 고이지 않도록 배출시키는 역할을 한다. 가슴 위쪽과 옆구리 쪽으로 작은 구멍을 만들어 호스를 연결해 흡입기로 빨아들인다. 하루 평균 배액량이 30㏄ 미만으로 나와야 관을 뽑는데, 나는 퇴원하는 당일까지도 하루 70㏄가 넘게 나왔다. 결국 작은 배액관 하나, 큰 배액관 하나를 달고 퇴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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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사진  ⓒCatherine McQueen via Getty Images

가끔은 베짱이 놀이도 필요해

가슴 절제로 인해 가슴 쪽은 물론 등 통증이 심했다. 누우려고 힘을 주면 아파서 침대를 세우고 잠을 잤다. 가슴, 등 쪽 말고도 옆에 대롱대롱 달린 배액관은 더 불편하고 아팠다. 잘못 움직이다 배액관이 빠지기라도 하면 응급실에 가야 하므로 조심해야 했고, 배액관이 잘못 꺾이면 제대로 분비물이 나오지 않아 계속 신경을 써야 했다. 배액관이 막히지 않도록 관을 짜줄 때면 마치 칼로 살을 그을 때처럼 소름이 끼쳤다. 2주가 지나면 배액관을 빼야 한다는데 양이 줄지 않아 마음을 졸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배액량이 확 줄지 않았던 이유는 수술 후 아프다고 누워만 있으면 회복이 느리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듣고 그 아픈 몸을 이끌고 어떻게든 걸어보겠다고 너무 많이 움직인 탓이 컸다. 드레싱을 하러 외래로 병원을 방문했을 때 성형외과 간호사는 “최대한 안 움직여야 배액량이 빨리 줄어요. 다른 과 수술과는 좀 달라요”라고 말해주었다. 전절제 뒤 배액량이 줄지 않아 고생했던 나는 1년 뒤 보형물 교체 수술을 한 뒤엔 많이 움직이지 않았다. 걷고 싶고 움직이고 싶어도 참고 ‘베짱이 놀이’를 즐겼더니 배액량이 빨리 줄어 배액관을 빨리 뺄 수 있었다. 배액관만 빼도 얼마나 살 것 같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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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사진  ⓒthe_burtons via Getty Images

배액관을 빼고 난 뒤에는 유방외과, 종양내과, 방사선종양학과, 재활의학과, 산부인과 등 여러 과를 돌아다니며 진료를 받아야 했다. 유방외과에서는 최종 수술 결과를 확인하고, 촉진도 다시 했다. 유방외과 의사는 “전절제한 유방에서 최종적으로 2.3㎝ 유방 외에도 옆에 제자리암이 발견됐다”며 “제자리암까지 포함하면 암의 크기는 4.5㎝ 정도 된다”고 말했다. 의사의 설명에 나는 깜짝 놀라며 “수술 전 검사에서는 발견되지 않았잖아요. 그럴 수도 있는 건가요?”라고 물었더니 의사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흔히 있는 일이죠”라고 답했다.

인생은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항암 8차를 하고 암의 사이즈를 줄여 부분절제를 하기를 원했던 나는 암 크기가 현격하게 줄지 않아 전절제를 해야 했다. 그 독한 항암제를 투입할 때도 씩씩하게 버텨온 나는 전절제 결정에 하늘이 무너질 듯 더 슬퍼했다. 그렇게 애를 쓰고 노력해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에 무기력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런 내 생각은 얼마나 짧은 생각이었던가. 최종 수술 결과를 보니 애초 발견된 암 외에도 그 옆에 제자리암까지 있었다고 하니 전절제는 내게 딱 맞는 결정이었다. 제자리암은 유관이나 소엽의 기저막을 침범하지 않아 덜 위험하다고 하지만, 제자리암이 또다시 암으로 진행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의사의 잘못된 판단으로 부분절제를 선택했다가 암이 재발해 다시 수술하고 그 힘든 항암을 다시 해야 하는 경우도 봤던 터라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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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이미지  ⓒcalvindexter via Getty Images

그때 경험으로 나는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섣불리 좋다 나쁘다 판단 내리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내게 일어나는 일이 좋은 일일지, 나쁜 일일지는 나중에 결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주변을 둘러봐도 고통스러운 일을 겪고도 그 일로 되레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좋은 일이라 생각했던 일이 나중에 고통의 씨앗이 되는 경우도 보았다.

법륜 스님이 쓴 <스님의 주례사>에도 이런 일화가 나온다. 몇십년 전 한 학생이 데모를 하다가 감옥에 갔다. 이 학생의 어머니는 ‘제발 감옥에서 빨리 나오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고, 실제로 그 학생은 1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당연히 어머니는 기뻐했다. 그런데 이 아들이 3개월 만에 교통사고로 숨지고 말았다. 어머니는 스님에게 “그냥 감옥에 있었으면 죽지는 않았을걸. 내가 기도해서 꺼냈으니 내가 죽인 거야”라고 말하며 통곡을 했다고 한다. 스님은 이처럼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며 “소원을 이루면 정말로 좋을까요? 알 수 없어요. 그냥 최선을 다할 뿐이에요. 되고 안 되고는 중요한 게 아니에요”라고 말했다. 책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는데, ‘인생은 새옹지마’라는 삶의 지혜를 내 일을 통해 피부로 체감한 것이다.

 

전절제 결정으로 새삼 얻은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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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이미지  ⓒcalvindexter via Getty Images

그날 이후 나는 내게 일어나는 일에 대해 쉽게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통상적으로 전절제 환자의 경우 방사선 치료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 방사선종양학과 교수는 림프절에서 암이 발견된 나는 국소 재발 방지를 위해 가슴과 목 부위 중심으로 16회 방사선 치료를 하자고 했다. 방사선 치료만이라도 피했으면 하는 맘이었지만, 의사의 현명한 결정이려니 생각하며 받아들였다. 방사선 치료를 하려면 손을 만세 자세로 올릴 수 있어야 하는데, 수술 후 내 팔은 90도 정도만 올라갔다. 방사선종양학과 의사는 수술 후 3~4주 안에는 방사선 치료를 시작해야 하므로 한 달 동안 재활치료를 해서 팔이 올라가도록 만들어 오라고 했다. 재활의학과에 갔더니 내게 어깨의 유착성 관절낭염 진단을 내렸다. 종양내과에서는 수술도 끝났으니 여성호르몬 억제제인 타목시펜 20㎎을 날마다 먹고, 한 달에 한 번 고세렐린(일반적으로 졸라덱스라는 상품명으로 불림) 주사를 맞자고 했다.

이 두 조합으로 나는 40대 초반에 사실상 폐경을 하게 됐고, 약 부작용으로 갑자기 얼굴에 열이 올라오며 땀을 뻘뻘 흘리는 증상을 경험했다. 또 약 부작용으로 아침에 일어나면 ‘끙’ 소리를 내고 발을 디뎌야 할 정도로 관절통도 생겼고, 불면증 증세도 나타났다. 항암과 수술이라는 큰 산을 넘으니 이렇듯 작은 산들이 내 앞에 떡하니 등장했다. 그러나 인생은 새옹지마이고 좋고 나쁜 일은 지금 알 수 없다는 생각을 하니 법륜 스님이 말한 대로 “그냥 최선을 다하자”라는 마음이 저절로 생겼다. 그렇게 나는 내 앞의 작은 산들을 넘기 위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기자이며 두 아이의 엄마. <자존감은 나의 힘> <고마워, 내 아이가 되어줘서>(공저) 등의 저자. 현재는 병가 중이며, 유방암 진단을 받고 알게 된 암 치료 과정과 삶의 소중함에 대해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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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유방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