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와인 소비가 다시 살아나고 있지만 가격대에 따라 시장 온도가 크게 엇갈리고 있다.
1만 원대 와인과 수십~수백만 원대 고가 와인에 수요가 몰리는 반면 5만~10만 원대 '중간 가격대' 와인 쪽에는 여전히 찬바람이 불고 있다. 이를테면 와인 시장의 다시 살아나는 와중에 저가와 고가 쪽으로 수요가 양극화하고 있는 셈이다.
4월1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대한민국맥주박람회&드링크 서울’의 한 참가 부스에 다양한 와인이 진열돼 있다. ⓒ연합뉴스
실제 국내 와인 수입량은 2021년 71만385hL로 정점을 찍은 뒤 2022년 65만5459hL, 2023년 49만269hL, 2024년 46만3152hL로 3년 연속 감소했다. 하지만 지난해 48만7558hL로 1년 전보다 5.27% 늘며 4년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올해도 상반기 주요 주류업체의 와인 매출이 늘었고, 하반기 들어 대형마트와 편의점 판매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시장 전체로는 분명 회복세지만 소비가 모든 가격대로 확산되는 것은 아니다.
가격대별 흐름을 보면 이러한 변화가 더 분명하다. 유통업계에서는 1만 원대 뉴월드 와인의 판매가 꾸준히 늘고 샴페인과 부르고뉴 등 고가 와인 수요도 이어지는 반면 5만~10만 원대 와인은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고 본다. 100만 원을 넘는 일부 프리미엄 와인은 물량을 확보하기 어려울 정도로 수요가 몰리는 사례도 있다.
중간 가격대 와인의 수요 회복이 더딘 배경에는 와인을 소비하는 방식의 변화가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도수가 낮고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술에 대한 선호가 커지면서 와인을 취미처럼 즐기며 여러 산지와 품종, 가격대의 제품을 비교해 마시는 소비도 예전만큼 활발하지 않다. 이 과정에서 5만~10만 원대 와인이 갖고 있던 ‘조금 더 좋은 와인’이라는 위치도 약해지고 있다.
1만 원대 와인은 식사와 함께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다는 점에서 선택하기 쉽고, 고가 와인은 생산자나 산지, 빈티지, 희소성처럼 높은 가격을 감수할 이유가 분명하다. 반면 중간 가격대는 일상적으로 마시기에는 가격 부담이 있고, 고가 와인처럼 뚜렷한 구매 이유를 만들기도 어렵다. 다양한 와인을 골라 마시던 소비가 줄면서 이 가격대의 애매한 위치가 더 두드러지고 있는 것이다.
반대로 저가 와인은 단순히 ‘싼 와인’에 머물지 않고 소비자가 와인에 다시 접근할 수 있는 입구가 되고 있다. 편의점에서는 1만 원 안팎의 메를로와 까바처럼 품종과 산지, 제조 방식이 분명한 상품을 내놓고 있다. 가격 부담은 낮추면서도 품종이나 산지에 따라 맛이 어떻게 다른지 경험할 수 있게 해 와인 소비의 진입장벽을 낮추고 있다.
이런 소비 변화 속에서 3만 원 안팎은 중간 가격대와 저가 와인 사이를 잇는 새로운 선택지로 떠오르고 있다. 롯데마트와 롯데슈퍼가 선보인 몬테스 제타 블랙은 3만9900원, 멤버십 할인가 3만2900원으로 출시됐다. 유명 생산자와 산지, 품종 등을 앞세워 1만 원대보다 상품 가치를 높이면서도 5만 원 이상 제품보다 가격 부담을 낮춘 상품이다. 유통업체들이 ‘싸게 파는 와인’과 ‘비싸도 살 이유가 있는 와인’ 사이에서 새로운 가격대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고가 시장은 가격이 높아도 살 이유가 분명한 와인을 중심으로 수요가 이어지고 있다. 샴페인과 부르고뉴를 비롯해 희소성이 높은 와인은 생산자의 역사와 철학, 떼루아, 빈티지처럼 가격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요소가 뚜렷하다. 고가 와인을 찾는 소비자도 단순히 비싼 술을 고르기보다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생산자나 산지에 돈을 쓰는 방식으로 선택 범위를 좁혀가고 있다.
유통업체들의 상품 전략도 이 변화에 맞춰 달라지고 있다. 1만 원대에서는 가격 부담을 낮추고 품종과 산지를 쉽게 경험할 수 있는 상품을, 3만 원대에서는 유명 생산자와 품질을 앞세운 상품을, 고가 시장에서는 희소성과 차별성이 있는 상품을 늘리고 있다. 와인 시장의 회복이 단순한 판매량 증가가 아니라 가격대별로 다른 소비자를 붙잡는 시장 재편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