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주 세대에는 유학 경험이 거의 없었지만, 2세대부터 해외 유학이 거의 급속히 늘었다. 그런데 3세대 들어 미국 대학에서 경영학 석사학위(MBA)를 받는 등 '전문성'이 높아졌다. 요즘 4·5세대는 아예 대학 학부부터 미국 등지에서 시작하는 사례가 보편화하고 있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캠퍼스 전경. 국내 대기업 오너 일가가 가장 많이 졸업한 해외 대학으로 꼽힌다. ⓒ컬럼비아 대학교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7일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를 보면, 총수가 있는 대기업집단 89곳의 오너 일가 가운데 학력 확인이 가능한 350명을 살펴보면 1세대는 전체 34명 중 2명(5.9%)만 유학 경험이 있었다. 반면 2세대는 112명 중 76명(67.9%), 3세대는 155명 중 122명(78.7%)으로 높아졌고, 4·5세대는 49명 중 46명(93.9%)이 유학 경험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2세대의 해외 유학은 경영 참여를 앞두고 전문성을 보완하는 후계자 교육 성격이 강했다. CEO스코어 조사에서도 1~3세대 오너 일가는 국내 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한 뒤 해외에서 경영학 석사(MBA) 등 석·박사 과정을 밟은 경우가 많았다. 기업의 해외 사업 확대와 함께 차기 경영자에게 글로벌 경영 역량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해외 대학 MBA가 이를 익히는 경로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 2000년대 재계에서는 2세 경영자의 해외 MBA가 잇따랐다. 한진가의 조원태 당시 대한항공 차장은 국내 대학을 졸업한 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 MBA 과정에 진학했다. 당시 조양호 회장은 본격적 경영수업에 앞서 역량을 키우기 위한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한국능률협회가 운영한 2세 경영자 교육 과정에서도 경영 승계를 앞둔 젊은 경영자를 대상으로 조직·인사, 재무회계, 마케팅 전략과 함께 글로벌 경영과 전략경영 등을 교육하고 해외 기업 견학을 진행했다. 당시 해외 교육이 후계자의 경영수업과 맞물려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오너 3세부터는 해외 유학 방식이 다양해졌다. 대표적 사례가 신유열 롯데바이오로직스 대표이사, 신상열 농심 미래사업실장 부사장, 이선호 CJ그룹 미래기획그룹장이 꼽힌다. 모두 오너 3세지만 해외 교육 경로는 달랐다. 신유열 대표는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MBA를 받았다. 신상열 부사장은 같은 대학에서 산업공학을, 이선호 그룹장 역시 같은 곳에서 금융경제학을 전공했다. 같은 오너 3세 안에서도 일부는 경영 참여를 앞두고 MBA 과정에 들어갔고, 다른 이들은 좀더 일찍 미국 대학에서 학부 생활부터 시작했다.
오너 4·5세대에 이르러서는 해외 대학에 진학하는 시점 자체가 빨라졌다. 4·5세대 유학 경험자 46명 가운데 33명(71.7%)은 학사 과정부터 해외 대학에 진학한 것으로 조사됐다. 앞선 세대처럼 국내 대학을 졸업한 뒤 MBA 등 대학원 과정으로 해외에 나가는 방식보다 대학 입학 단계부터 해외 교육을 선택하는 사례가 많아진 것이다.
4·5세대의 외국 유학은 전공 선택에서도 앞선 세대와 차이를 보였다. 3세들 처럼 경영학을 전공하는 데 머물지 않고 금융경제학, 불문학·조직심리학, 산업공학, 응용통계학, 호텔경영학 등 공부하는 분야가 다양해졌다. 경영권 승계도 중요하지만 업종별 차별성이 커지면서 일찌감치 전문성을 갖추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이와 별도로 오너 일가의 외국 유학은 미국 명문대에 집중되고 있다. 학부와 대학원을 포함해 오너 일가가 가장 많이 졸업한 외국 대학은 미국 컬럼비아대학으로 22명에 이르렀다. 이어서 뉴욕대학 18명, 코넬대학 16명 등이 뒤를 이었다. 컬럼비아대학 '동문'으로는 신유열 대표, 신상열 부사장, 이선호 그룹장을 비롯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이해욱 DL그룹 회장, 이경후 CJ ENM 브랜드전략실장 부사장 등 여러 세대의 오너 일가가 포함돼 있다.
뉴욕대학 출신으로는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 박지원 두산에너빌리티 회장, 박진원 두산밥캣코리아 부회장, 신중하 교보생명 상무,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담서원 오리온 부사장 등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코넬대학에서는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의 장남 정해찬씨, 박상수 두산밥캣 글로벌비즈니스 전략팀장, 이규호 코오롱 대표이사 부회장,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의 차녀 서호정 씨, 조승연 전 대한항공 부사장 등이 졸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