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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년 만에 사유화 시동 거는 유한양행: 유일링 유한학원 이사 반응은 듣고 나니 평범한 직장인인 나도 정신 번쩍 차리게 된다

소유와 경영 분리한다는 창업주 유일한 박사 경영 원칙 따라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됐던 유한양행인데.

“할아버지께서 살아계셨다면 ‘기업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와 종업원의 것’이라는 당신의 경영철학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말씀하셨을 것 같아요.”

유한양행 창업주 고 유일한 박사의 손녀인 유일링 유한학원 이사가 14일 오후 서울 용산구의 한 호텔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한겨레
유한양행 창업주 고 유일한 박사의 손녀인 유일링 유한학원 이사가 14일 오후 서울 용산구의 한 호텔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한겨레

유일링 유한학원 이사가 최근 경영진의 회사 사유화 논란이 불거진 유한양행 사태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14일 저녁 한겨레와 만난 자리에서다. 그는 유한양행 창업주 유일한 박사의 손녀다. 미국에 거주하던 그는 15일 있을 주주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 11일 귀국했다. 귀국한 날은 유일한 박사의 53주기 추모일이었다.

유한양행은 한국 기업 역사에서 지배구조의 모범사례로 꼽힌다. 소유와 경영을 분리한다는 유일한 박사의 경영 원칙에 따라, 창업주 일가가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돼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회사가 회장직 신설을 추진하면서 논란이 불거진 상황이다. 유한양행은 15일 주주총회에서 회장, 부회장 직급을 신설하는 내용으로 정관을 변경할 계획이다. “이사회 결의로 이사 중 사장, 부사장, 전무이사, 상무이사, 약간인을 선임할 수 있다”는 기존 정관을 “이사회 결의로 회장, 부회장, 사장, 부사장, 전문, 상무, 약간인을 선임할 수 있다”로 바꾸려는 것이다.

1926년 창립한 유한양행은 지난 98년 역사에서 정관에 회장과 부회장이 명시된 적이 없다. 회장에 오른 이도 창업자인 유 박사와 그의 측근인 연만희 고문, 단둘뿐이다. 연 고문은 1996년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28년 만에 회사가 회장직 신설을 추진하면서, 일부 직원들이 “현 경영진이 회장직을 신설해 회사를 사유화하려 한다”고 주장하며 본사 앞에서 트럭시위까지 벌이고 있다. 일부 직원들은 주주들에게 전자투표를 통해 정관 변경에 반대해달라고 독려하는 상황이다.

유한양행 창업자인 고 유일한 박사의 손녀인 유일링 유한학원 이사가 15일 오전 서울 동작구 유한양행 본사에서 열린 주주총회에 입장하고 있다. 2024.3.15. ⓒ뉴스1
유한양행 창업자인 고 유일한 박사의 손녀인 유일링 유한학원 이사가 15일 오전 서울 동작구 유한양행 본사에서 열린 주주총회에 입장하고 있다. 2024.3.15. ⓒ뉴스1

논란의 중심에는 이정희 유한양행 이사회 의장에 대한 직원들의 의구심이 자리하고 있다. 이 의장이 회장직에 앉기 위해 직제를 신설한다는 것이 정관 개정에 반대하는 직원들의 주장이다. 이 의장은 2015년 유한양행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해 6년 동안 회사를 이끈 뒤, 지금은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앞선 대표들은 사장 임기가 끝나면 모두 은퇴했다.

유 박사의 유일한 후손인 유일링 이사가 2022년 본인의 뜻과 무관하게 유한재단 이사직에서 제외된 것도 이런 의구심을 키우는 요인이다. 그동안 유한양행은 유 이사 등이 관여한 유한재단과 유한양행 경영진 사이의 견제와 균형이 유지돼 왔지만, 이때부터는 재단 이사회마저 유한양행 전·현직들로 채워진 것이다. 유 이사는 “할아버지께서는 회사 경영에 있어서 견제와 균형을 중요시하셨다. 회장직이 만들어지면, 의사결정 구조가 늘어나고 권력이 집중돼 유한양행의 창립 정신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유한양행의 최대주주는 평소 장학사업을 펼쳐온 유 박사가 세상을 떠나며 전 재산을 기증한 유한재단과 유한학원이다. 2023년 12월31일 기준 유한재단은 15.77%, 유한학원은 7.75%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유한양행은 자사주 8.32%도 가지고 있다. 국민연금공단은 9.67%가 있다.

유한양행은 ‘회장직 신설은 회사 성장에 따른 조처일 뿐, 특정인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유한양행은 “직제 신설은 회사의 목표인 글로벌 50대 제약회사로 나아가기 위해 선제적으로 직급 유연화 조치를 한 것”이라며 “특정인의 회장 선임 가능성에 대해서는 본인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밝힌 바와 같이 절대 아니다”라고 했다. 이정희 의장은 이날 언론 인터뷰에서 “어떠한 경우에도 회장(직)을 맡을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한편, 유한킴벌리 대표이사를 지낸 문국현 전 창조한국당 대표와 이석연 전 법제처장,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 등으로 꾸려진 ‘유한을 사랑하는 시민사회 인사 대표’는 이날 선언문을 내어 “유한양행은 국민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아름다운 기업 문화의 상징”이라며 “(유한양행 경영진은) 유일한 박사의 창립 이념과 기업가 정신을 잊지 않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한겨레 김경욱 기자 /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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