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의족이 없지, 의지가 없냐!" 33살 패러사이클리스트가 왼쪽 다리 절단 3달 만에 한 일은 보자마자 '리스펙'을 외쳤다

국가대표를 목표로 맹훈련 중.

2022년 9월23일, 박찬종(33·전북장애인사이클연맹)은 “비가 오지 않으면 거의 매일 자전거를 타고 지나다니던” 길을 달리고 있었다. 2차선에 있던 5톤 트럭이 갑자기 방향을 바꿔 3차선 끄트머리를 달리던 박찬종을 덮쳤다. 사흘 뒤인 9월26일, 그는 왼쪽 다리를 절단했다.

박찬종씨.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한겨레, 박찬종 인스타그램
박찬종씨.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한겨레, 박찬종 인스타그램
사이클 유튜버로 활동하다가 교통사고로 다리를 잃은 박찬종은 이제 패러사이클링 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달 21일 인천에서 한겨레와 만난 그가 밝게 웃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박찬종은 사고 뒤 석 달도 지나지 않아 새 자전거를 마련했다. 병실에 두고 자린고비 굴비 보듯 다시 안장 위에 오를 날을 기다렸다. 의족도 맞추기 전이었다. 오른쪽 발로 휠체어를 밀며 하루 한 시간씩 병원 주변을 돌며 유산소 운동을 하고, 한발 스쿼트와 턱걸이로 근력을 다지기 시작했다. 병실에서 자전거와 함께 찍은 사진에 “내가 의족이 없지 의지가 없냐”는 익살스러운 문구를 더해 인스타그램에 올리자, 3만명 넘는 사람들이 응원을 보냈다. 2016년부터 자전거 유튜버로 활동해 왔지만, 이렇게 큰 관심을 받아본 건 처음이었다.

그토록 좋아하던 자전거 위에서 다리를 잃었는데, 자전거가 쳐다도 보기 싫지는 않았을까. 지난달 21일 인천 송도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만난 박찬종은 “나 때문에 자전거를 접는 사람이 나오길 바라지 않는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처음엔 지금은 아내가 된 여자친구에게 자전거 관련 용품들을 모두 팔아 버리라고 했어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 자전거를 타지 않았더라도 피할 수 없는 사고였어요. 트럭이 3차선을 넘어 인도까지 돌진했으니까요.” 그는 “자전거를 주제로 유튜브 채널을 운영했는데, 이런 사고로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린다면 결말이 너무 안 좋잖아요”라고 덧붙였다.

박찬종이 지난 5월 벨기에 오스텐더에서 열린 2023 국제사이클연맹 패러사이클 월드컵에서 달리고 있다. ⓒ박찬종 제공/한겨레
박찬종이 지난 5월 벨기에 오스텐더에서 열린 2023 국제사이클연맹 패러사이클 월드컵에서 달리고 있다. ⓒ박찬종 제공/한겨레

그는 중고등학생 유튜브 구독자들이 “자전거가 너무 좋아서 사이클 선수가 되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으면 “재미있으면 취미로, 재능이 있다면 선수를 하라”고 보수적으로 답했다. 하지만 올해 1월 의족을 착용해 걸을 수 있게 되자, 2개월 만인 3월에 전업 사이클리스트가 되겠다는 마음을 굳히고 전북장애인사이클연맹에 등록했다.

의족이나 자전거 회사들에서 홍보대사가 되어 달라는 요청도 뿌리치기 어렵지만, 절단장애인의 희망이 될 수 있는 선수로 뛰면서 보답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의족 가격이 3000만원 정도인데 5년에 한 번 새 걸로 바꿔야 한다. 절단장애인에게는 큰 돈인데, 그분들의 어려움을 생각하면 더 노력할 수밖에 없다”라고 했다.

박찬종이 지난 3월 새 의족을 시착해 보고 있다. ⓒ박찬종 제공/한겨레
박찬종이 지난 3월 새 의족을 시착해 보고 있다. ⓒ박찬종 제공/한겨레

국내에선 패러사이클 관련 정보를 찾아보기 어렵다. 선수가 되면 달라진다. 지난 5월 벨기에 오스텐더에서 열린 국제사이클연맹(UCI) 패러사이클 월드컵에 출전했을 때의 경험은 짜릿했다. 박찬종은 다른 나라 선수들을 보면서 존경을 느끼고 용기뿐 아니라, ‘실전 꿀팁’도 얻는다.

“2020 도쿄패럴림픽 금메달리스트 대런 힉스(호주)를 대회장 근처 식당에서 우연히 만나 ‘당신 덕분에 다시 꿈을 꾸게 돼 여기까지 왔다’고 말하니 박수를 쳐 줬어요.” “미국 선수 토드 키는 ‘의족을 착용하고 양쪽 다리로 페달을 굴리는 C3 등급이 아닌, 절단된 다리를 자전거 몸체에 고정해 두고 한쪽 다리로만 페달을 굴리는 C2 등급에 출전하면 훨씬 유리할 것’이라고 했어요. 다음 대회부터는 등급을 바꿔 출전하려 준비 중이에요.”

박찬종(왼쪽)은 11월 열린 제43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 남자 사이클 개인도로독주 22㎞ C3 선수부 경기에서 은메달을 땄다. ⓒ박찬종 제공/한겨레
박찬종(왼쪽)은 11월 열린 제43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 남자 사이클 개인도로독주 22㎞ C3 선수부 경기에서 은메달을 땄다. ⓒ박찬종 제공/한겨레

박찬종은 11월 열린 제43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 선수부문 트랙 3㎞ 개인추발, 팀 스프린트, 개인도로독주 22㎞, 개인도로 61㎞ 등 네 개 종목에서 은메달을 손에 넣었다. 패러사이클 선수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를 묻자 박찬종은 “국가대표에 선발돼 2026년 나고야 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이고, 2028년 엘에이(LA) 패럴림픽에도 출전하고 싶다”고 답했다.

선수가 아닌 개인 박찬종으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도 있다. 그는 “운동 기록 앱 ‘스트라바’에 남아 있는 서울 남산 업힐 구간 개인 최단 기록인 5분10초를 깨고 싶어요. 지금은 7분 중반대인데, 깬다면 자신을 뛰어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달리기용 의족을 착용한 박찬종. ⓒ박찬종 제공/한겨레
달리기용 의족을 착용한 박찬종. ⓒ박찬종 제공/한겨레

박찬종은 “다리로 할 수 있는 활동이라면 모두 다시 하고 싶다. 수영, 달리기, 철인 3종 등에도 차츰 도전해 볼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우선 내년 10㎞ 마라톤 대회 출전을 시작으로 점차 거리를 늘려, 미국 보스턴에서 열리는 풀코스 마라톤 대회에도 나설 생각이다. “네 시간 반 정도에 들어오면 제 장애등급에서 1등을 할 수 있는데, 상금 3천달러(약 390만원)이니, 왕복 비행기 값은 충분히 나오겠죠.”

책을 쓸 구상도 하고 있는 박찬종은 “내 이야기가 ‘장애 극복기’로 읽히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제가 극복했다고 말하면, 극복하지 못한 분이 있다는 거잖아요. 처음에는 ‘무릎만 남아 있었어도 더 많은 활동을 할 수 있었을 텐데’라고 생각했는데, 10㎝ 더 절단했다고 10㎝ 더 불행하거나, 남아있다고 그만큼 행복하진 않았을 것 같아요. 장애를 크게 다르지 않은, 그저 함께 가져가는 거로 봐 주면 좋겠어요.”

한겨레 인천/정인선 기자 / ren@hani.co.kr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