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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혐' 페미라고? 집게 손 모양 그림으로 '남성 혐오' 논란 생긴 '메이플스토리' 작가는 40대 남성이었다

“넥슨, 외주업체에 책임 전가…사상 검증 동참” 비판도

남초 커뮤니티로부터 ‘남성 혐오’의 상징이라고 공격받은 게임 ‘메이플스토리’의 홍보영상 속 ‘집게 손 모양’을 그린 것은 여성이 아닌 남성 작가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여성 페미(페미니스트) 작가가 의도적으로 영상에 남성 혐오의 상징을 넣은 것”이라는 주장이 허황된 ‘페미 사상 검증’이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게임 개발사 넥슨이 사실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이용자들의 비난에 휩쓸려 외주업체 쪽에 ‘책임을 묻겠다’고 별러, 페미 사상 검증 논란을 부추겼다는 비판이 나왔다.

‘집게 손 모양’을 했다는 이유로 ‘남성 혐오’ 논란이 제기돼 지난 25일 비공개된 ‘메이플스토리’ 엔젤릭버스터 리마스터 버전의 홍보 애니메이션 장면.
‘집게 손 모양’을 했다는 이유로 ‘남성 혐오’ 논란이 제기돼 지난 25일 비공개된 ‘메이플스토리’ 엔젤릭버스터 리마스터 버전의 홍보 애니메이션 장면.

넥슨이 지난 23일 공개한 ‘메이플 스토리 엔젤릭버스터’의 홍보 영상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 ‘엔젤릭 버스터’(엔버)의 집게 손 모양이 담긴 영상 콘티를 그린 것은 40대 남성 ㄱ씨인 것으로 30일 확인됐다. 넥슨의 외주업체인 ‘스튜디오 뿌리’의 여성 애니메이터가 이 콘티를 그린 것으로 지목돼 ‘남혐 페미’란 공격을 받았지만, 사실이 아니었던 것이다.

한겨레의 취재에 따르면, 집게 손 콘티를 그린 ㄱ씨는 스튜디오 뿌리 소속이 아닌 객원 애니메이터로, 넥슨에 영상을 납품하기로 한 기한이 촉박해 구한 외부 인력이었다. ㄱ씨는 콘티에 집게 손 모양을 한 엔버를 그려넣으며 “화면에다 인사하는 엔버”라는 장면 설명을 달아놓았다. 애초 손가락으로 반쪽 하트를 만드는 모습을 그린 것인데, 남초 사이트에서 집게 손 모양으로 오인한 것이다.

특히 이 콘티는 50대 남성인 총괄 감독의 검수를 거쳐 최종 통과된 것이었다. 총괄 감독은 캐릭터의 전반적인 포즈를 연출하는 역할로, 감독의 연출 아래 애니메이터들이 배경 작업과 동작을 구현하는 원화·동화 작업을 맡는다. 엔버가 나온 영상을 그리는 데는 30여명의 애니메이터가 투입됐는데, 집게 손을 그린 ‘남혐 페미’로 공격받은 여성 애니메이터는 이들 중 1명이었을 뿐이다. 넥슨 역시 영상을 기획하며 뿌리 쪽과 8차례 이상 콘티 등을 확인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유출된 메이플스토리 엔젤릭버스터 홍보영상의 콘티
온라인 커뮤니티에 유출된 메이플스토리 엔젤릭버스터 홍보영상의 콘티

그런데도 넥슨은 남초 커뮤니티에서 문제가 제기된 직후 해당 영상을 비공개하고 이용자들에게 사과하며, 외주를 준 뿌리에 대해 법적 대응을 할 것을 예고했다. 특히 김창섭 넥슨 메이플스토리 총괄 디렉터가 이날 유튜브 방송을 통해 “맹목적으로 타인을 혐오하는 데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고, 몰래 드러내는 데 희열을 느끼는 사람들에 단호히 반대한다”며 “뿌리와 관련된 조사 결과에 따라 메이플뿐만 아니라 회사 차원에서도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엔버의 손 모양을 남혐으로 규정하고, 뿌리 쪽에 책임을 묻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남초 커뮤니티에서조차 “손가락을 (문제 삼은) 트위터 글 몇 개로 (남혐을 표현하기 위한) 고의성이 확정된 듯이 이야기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김환민 아이티(IT) 노조 부위원장은 “남초 커뮤니티가 주장한 것과는 달리 엔버의 손 모양이 남혐 페미의 고의적 행동이 아닌 게 드러난 것에서 알 수 있듯, 손 모양만으로 사상 검증을 하는 것은 애니메이션 업계를 우롱하는 터무니 없는 짓”이라며 “넥슨이 기초적인 사실관계도 확인하지 않고 외주업체에 책임을 묻겠다고 한 건 사상검증에 동참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비판했다.

한겨레 채윤태 기자 / cha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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