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ite는 아티스트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다큐멘터리 아티클입니다. 아티스트 개인 혹은 팀을 인터뷰하면서 그들의 활동을 추적합니다. 아티스트에 대한 이야기가 새롭게 발굴되고 쓰이길 바랍니다. 영상으로 제작된 다큐멘터리 <Ar+ist>는 유튜브에서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JTBC ‘비긴어게인 코리아’에서 가수 여섯 명이 지오디의 <길>을 불렀다. 노래가 끝나자 가수 크러쉬는 눈물을 쏟았다. 시청자 중 일부도 울었으리라 짐작했다. 나도 그랬기 때문이다. 천천히 눈물의 근원을 좇다 보니 발견한 것이 있었다. ‘이것이 맞는 것일까, 이게 나의 길일까, 이 길의 끝은...’이라는 물음을 애써 숨기며 산다는 사실이었다. 지오디 <길>이 자기 자신을 향한 끝없는 질문이자 아직도 자신이 없다는 두려움의 고백이라면, 93년생 아티스트 죠지의 <Boat>는 그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고백을 한다. ”생각했던 모습과는 조금 달라도 괜찮아. 이건 내가 바랬던 이상의 일부야. 이 정돈 감수해야지. 큰 파도가 날 덮칠 수도 있지만, 뜻밖의 사고가 날 수도 있지만”, ”난 내 삶에 만족해.” 이건 흔들리는 삶을 인정하는 단단한 자기 고백이다.
<Boat>는 죠지를 대중적으로 알린 곡이다. 친구들과 통통배를 빌려 찍은 뮤직비디오에는 특유의 발랄함과 편안함이 녹아 있다. 평소 인스타그램에서도 자신의 유쾌한 성격을 보여주는 아티스트 죠지.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BTS 정국이 자신의 노래를 커버했다며, 자신의 노래 <바라봐줘요>에 달린 인기댓글이 ‘I love Junguk(정국)’이라고 웃는 아티스트. 그가 궁금해진 건 당연했다. 분명 나는 지금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창작을 통해 삶을 구축해가는 아티스트를 추적하다 보면 때론 그 일이 삶의 이정표가 된다.
우리는 과거의 기억을 소진하며 현재를 살아가고, 현재를 살아가며 축적한 기억을 미래에 사용한다. 내가 만나온 크리에이터들이 그랬고, 죠지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직 10대 때 기억으로 지금까지 뭔가를 만들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그래요.” 거주지와 작업실을 겸하는 공간에는 식물들과 큰 포스터 액자, 건조대에는 서핑복이 걸려있었다. 2020년 8월 어느 여름날, 그곳에서 그를 만났다. 인터뷰 도중 해외 배송으로 샌들이 배송된 날이었다. 인터뷰는 아티스트 죠지가 세상에 알려지기까지 과정과 노래를 만드는 동안 품었던 고민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지금부터 죠지를 함께 추적해보자.
죠지의 <바라봐줘요>를 들으면서 고등학생 때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끙끙대는 제 모습이 떠올랐어요. 궁금해요. 죠지의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은 어땠는지.
= 중학생 때는 마냥 재밌었어요. 주어진 대로 누가 시키는 대로 정해진 인생 안에서 즐겁게 살았어요. 고등학생 때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인생에 대한 회의감이라든가. 사춘기가 와서 살아가야 될 이유도 많이 생각했었고, 그게 음악을 시작한 계기도 됐고.
동감해요. 저도 지금 다큐멘터리를 하는 이유가 고등학생 때 고민을 통해 찾은 메시지 때문이거든요.
= 아직까지 10대 때 기억으로 뭔가를 만드는 거 같아요. 20대에는 10대 때 생각했던 것들을 가공하고, 만드는 일을 하고 있어요. 소스도 그때에 많이 머물러 있어요.
10대가 알맹이를 채워 넣는 시기인 것 같아요. 죠지는 어떤 알맹이를 채워서 지금 이렇게 하고 있는 건가요?
= 남들처럼 살기 싫었다 해야 하나, 나는 좀 다르고 싶었다 해야 하나. 근데 어떻게 달라야 할진 잘 모르겠고. 당시에는 의욕이 없었어요. 그때 부모님이 음악을 제안하셨어요. 정신적인 건강을 위해서 음악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가 옛날에 음악을 좋아했으니까. 그래서 시작했는데 되게 재밌는 거예요. 속에 담아두고 고민만 하던 걸 표현하는 느낌이라. 그때부터 음악하는 즐거움으로 살았어요. 그 순간에는 내가 다른 거 같았고, 다른 인생을 사는 거 같았고. 그때는 되게 특별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빠져들어서 했었고.
처음 만난 선생님 앞에서 노래하는데 기분이 되게 이상했어요. 처음에 노래를 띄웠을 때 약간 찌릿찌릿한 느낌 있죠. 긴장되면서 약간 기분 좋은 그런 느낌 있잖아요. 그때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상한 기분이어서 빠졌던 거 같아요.
그때 죠지는 제3자 입장에서 볼 때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 친구들이 그런 말을 했어요. ‘너는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서 좋겠다‘. 막상 저는 걱정이 되게 많았는데 말이죠. 애들이랑 같이 있고, 음악할 때는 아무 생각 없다가도 혼자 버스 타고 집에 가는 길에는 고민이 많았어요. 하고 싶은 걸 했을 때 뒤따르는 책임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나봐요. ‘가수를 해야 하나?’ 처음엔 그냥 좋아서 했지만, 직업이 되는 건 다른 얘기잖아요.
그때는 남들 앞에 서는 건 좋아하지 않았어요. 두려움이 있었어요. 남들 앞에 서는 건 싫으니까 작곡가를 해야겠다. 당시엔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학교도 작곡과로 갔어요. 근데 또 인생이 흐르다 보니까 가수 쪽으로 가더라고요.
다른 인터뷰 보니까 죠지가 참여한 노래 저작권료가 들어와 엄마한테 말했더니 서울 가서 제대로 해보라고 하셨다고. 그 얘기 비하인드가 듣고 싶어요.
= 미래에 뭘 해야겠다는 게 막연하던 시기였어요. 하루하루 주어진대로 살았죠. 우연히 가수 주영이 형이 ‘이거(주영X효린의 <지워>의 작사) 한번 해볼래‘했는데, 그때 제가 병원에 입원해 있었거든요. 자전거 타다가 사고가 나서요. 병원에서 내내 그것만 했어요. 만들어서 보냈고, 노래가 발매됐는데 되게 잘됐어요. 차트에도 들어가고요. 통장에 한 200만 원 정도가 들어왔는데, 당시 저에게는 되게 큰돈이었어요. 엄마한테 ‘나 그때 병원에서 했던 거 이만큼 들어왔다’ 하니까 엄마가 그럼 서울 올라가서 제대로 해보라고 한 거죠. 그냥 대단한 스토리는 아니고.
대단한데요.
= 입봉한 거죠. 음악하는 동안 부모님이 잘 도와주신 편이에요. 혼자였으면 음악을 안 했을 거 같고. 제 인생에서 사람이 되게 중요했어요. 저는 약한 사람이거든요.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신 거죠. 주영이 형도 그런 케이스고. 뭘 만들어서 사람들한테 열심히 홍보하던 때도 아니었는데 뜬금없이 연락이 와서 그렇게 된 거고.
뭘 보고 연락이 온 거예요?
= 인스타그램에 노래 조금씩 올리고 그랬는데 그게 마음에 들었나 봐요. 그거 보고 디엠이 왔어요.
친구들과 여행을 기록한 영상 <카와이트립>을 봤어요. 영상에서 죠지씨가 그런 말을 했어요. 좋아하는 사람들과 작업을 해내고, 함께 무언가를 계속 이어나가는 것이 행복하다고 이야기했는데, 그 말이 인상 깊었거든요.
= 좋은 인생의 기준 중 하나가 같이 행복해져야 행복해진다는 생각이에요. 그래서 같이 잘되고 싶은 마음이 있고, 그러려고 노력했죠. 20대 때부터 친구들이랑 같이 잘되려고 했지만 쉽지만은 않더라고요. 일단 뭔가를 같이 한다는 자체가 쉽지 않았어요. 쉽지 않은 만큼 끝났을 때 느끼는 성취감이 크기도 하지만요.
좋은 인생의 기준 중 하나가 같이 행복해져야 행복해진다는 생각이에요.
예를 들면요?
= 처음 서울 올라왔을 때 욱이란 친구랑 음악 작업을 많이 했어요. 그전까진 몰랐는데 작업을 같이하다 보니까 안 맞는 것들이 좀 있었죠. 고집부릴 건 부리고 양보할 건 양보하고, 그러다 서로 마음에 드는 게 나오면 성취감이 컸어요. 근데 이게 또 그래요. 과정이 너무 힘들면 다음에 다시 시작할 때 멈칫, 멈칫하는 게 있어요. 시작에 약간 겁나는 게 생기더라고요. 얘랑 감정 상하기도 할 텐데 하는 마음이랄까. 친구니까요. 차라리 회사에서 만난 사람이면 일로만 생각하면 되는데 친구는 그런 게 아니니까요.
요즘은 어떤 고민하세요.
= 요즘이요? 사실 고민이라기보다는 막연히 ‘고민 없었으면 좋겠다’ 생각하면서 그걸 목표로 살아요. 저는 많은 돈 벌고 싶진 않아요. 그냥 적당히 돈 걱정 안 하고, 조금조금 소소하게 살고 싶어요. 음악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잘돼야 될 텐데 이런 걱정도 없고, 앨범 커버도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지금도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주의긴 하지만 막상 낼 때 되면 되게 신경 쓰이거든요. ‘사람들이 좋아할까?‘, ‘내가 이런 음악 만들면, 이런 가사는 싫어할 것 같은데’. 그런 고민 안 하고 싶어요. 놀러도 다니고. 너무 돈에 얽매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앨범커버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작년에 나온 <LEEEE> 앨범 커버가 전 되게 좋았어요. 근데 호불호는 많이 갈렸다고.
= 댓글에 ‘앨범커버 빼고 좋은 앨범’ 그런 거. 근데 저는 만족해요. 왜냐면 언젠가 하고 싶었던 앨범커버였었고. 실행하고 싶었는데 우연히 그걸 잘해줄 수 있는 친구도 만났고. 마음에 들게 나와서 전 되게 만족해요. CD 만들 때도 되게 재밌었거든요. 그래서 피지컬도 이제까지 만든 거 중에 제일 마음에 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