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지역으로 낙인 찍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
대환영.
'전환치료'란 동성애를 성적 지향의 하나로 인정하지 않고 치료를 통해 이성애로 바꿀 수 있다는 의미의 유사 치료 행위다.
주체적 자기성이란 쉽게 설명하여 '주인공이 되고 싶은 정도', 즉 남들보다 위에 서고 싶어하는 정도를 일컫는다. 주체적 자기성이 강한 사람은 형, 오빠, 리더 등의 선임적 역할 수행을 선호한다. 원하지 않은 맨스플레인은 과학적으로 한국인 남성 다수의 심리상태가 현재 그렇기 때문에 출현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는 발언을 하며 동성애자들을 사회에서 존재해서는 안 될 존재로 묘사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부정이며 심각한 차별이자 폭력이다. 결국 '동성애자를 혐오할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인간을 차별하고 폭력을 행사할 권리'를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존엄성, 평등, 민주주의, 평화 등 이 사회를 구성하는 근본 원칙 자체를 부정하는 셈이다. 인간을 혐오할 권리가 존재하지 않듯, 바로 그 이유로 동성애자를 혐오할 권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당신이 과장급 직장인이라면, 상무님과의 관계에서는 저권력자이지만, 대리급 사원에게는 상당한 고권력자이다. 또한 당신이 30대 재벌 2세라고 할지라도(물론 그럴 리는 없겠지만) 회사에서와 대부분의 인간관계에서는 고권력자겠지만 아버지 앞에서는 완벽한 저권력자이다. 이러한 권력의 상대성은 매우 복잡한 문제를 일으킨다. 간혹 사회생활에서는 얌전한 샌님같은 사람이 가정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있다.
계모들이 행사하는 폭력은 아버지들의 폭행 못지않게 심각한 수준인데, 연구자들은 이들 여성 폭력범들에게 있어 가장 보편적인 정신장애는 경계선 성격장애임을 보고하였다. 이렇게 경계선 성격장애를 지닌 여성 폭력사범들의 공통점은 40%에서 76% 정도가 어릴 때 성폭력 피해에 노출된 적이 있으며 25%에서 73% 정도가 신체적으로 학대를 받았던 피해자였던 것이 확인되기도 하였다.
분노억제는 사람을 골병들게 만든다. 분노억제가 반복되어 깊어지면 화병으로 발전한다. 화병은 '울화병'이라고도 한다. 한국 사람들은 특히, 분노가 내면화된 화병이 많다. 그 이유는 전통적으로 분노억제를 미덕으로 삼은 결과다. 화를 내는 것은 점잖지 못한 행동이고, 화를 참고 이겨내는 것이 옳은 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분노와 결합된 화병을 이겨내는 것은 그저 자신과 타인을 용서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상책이라는 문화적 배경과도 관련이 깊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화병은 여러 증상들을 불러일으킨다.
최근 '결정 장애'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이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어느 한 쪽을 선택하지 못하는 심리를 일컫는다. 엄격하게 학술적으로 정의된 개념은 아니지만 간단한 점심 메뉴 선택에서 직업 선택이나 배우자 선택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의사결정의 문제들을 앞에 놓고 속 시원하게 결정을 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우유부단함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의사결정 장애의 원인은 무엇이며, 이를 극복하는 길은 무엇인지 모색해 본다.
매슬로우의 욕구위계설에 따르면, 하위욕구가 충족되어야 상위욕구로의 진전이 이루어진다고 하였는데, 최근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오히려 욕구가 퇴행되어 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먹고 살기 힘든 경제상황에 대한 불만, 취업하기 어려운 청년들의 쌓여가는 고민, 정치적 불안 및 언론의 폐쇄적인 보도에 대한 불만 등등에 대한 욕구좌절이 상위 단계로의 욕구진전을 어렵게 만들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 중 먹는 욕구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심리학 교양 강의를 할 때면 가끔 사람들에게 묻는 질문이 있다. 착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착한 아이가 될까요? 혹은 못된 아이가 될까요? 라는 것이다. 반대로 못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착한 아이가 될까요? 못된 아이가 될까요? 이러한 질문을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착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착한 아이가 되고, 못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못된 아이가 될 것이라고 답한다. 아이들이 부모를 닮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옳은 답이 아니다.
분노유발 상황에서의 효율적인 대처를 떠올리면 흔히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초점을 둔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행동 대처가 문제해결적이고 건설적이기 위해서는 분노유발 상황에서의 즉각적인 내적 경험을 명료화하는 내적 대처 과정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이 과정이 생략되고서는 건설적인 대처행동이 가능할 수 없다.
건강염려가 우리 한국사회에서 더 두드러져 보인다. 광우병이나 조류독감 등이 발병했다는 소식만 들려도 관련 음식점들이 망해나갈 정도로 한국인들은 민감하게 반응한다. 건강이나 생존을 위협하는 다른 위험 요인들이 많은데 유독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에 크게 공포를 느끼고 과도하게 반응한다. 조심해서 나쁠 것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지각된 위험이 실제 위험과 큰 차이가 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그렇다면 메르스나 광우병 등에 대한 위험을 실제보다 더 강하게 지각하게 되는 것은 왜 일까?
문제는, '외모가 중요한 것이 아니야. 내면의 아름다움이 중요한 것이지'라고 주장하기에는 심리학자의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외모가 가지는 영향력은 무척이나 크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배우자 혹은 애인을 선택할 때 성격을 가장 많이 고려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소개팅이 두 번째 만남으로 발전될 때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치는 요인은 외모라는 사실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하나의 두드러진 특징이 그 대상의 전체적인 인상에 영향을 끼친다는 후광효과의 대표적인 예가 외모이다.
일반적으로 안전체감도가 낮은 국가는 안전중시도가 높은 반면, 안전체감도가 높은 국가는 안전중시도가 낮다고 한다. 즉,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환경이 안전하지 않다고 느낄수록 안전을 더 중요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이러한 일반적 경향과는 사뭇 다르다: 우리나라는 안전체감도(15개국 12위)와 안전중시도(15개국 중 13위)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모두 낮은 편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신의 주변 환경이 안전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왜 안전함의 중요성을 낮게 평가하고 있는 것일까?
희소한 것에는 언제나 더 높은 가치가 부여된다. 하지만 희소성이 무엇으로부터 비롯되었는지에 따라서 그 효과는 달라진다. 예를 들어, 대량으로 생산된 제품이지만 이미 대부분이 팔려 나갔기 때문에 희소해진 것(예, 히트상품의 매진임박)과 수요와 관계없이 처음부터 적게 만들어진 제품(예, 한정품, 특별판, 혹은 희귀본)은 서로 다른 효과를 가진다. 전자를 '수요에 의한 한정'이라 하며, 이는 소비자의 충동구매를 유발한다. 반면, 후자는 '공급에 의한 한정'이라 구분하며, 이는 제품의 가치를 더 높게 지각하게 한다. 바로 이것이 허니버터칩 효과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47명의 여대생들에게 자기의 페이스북을 방문한 남학생들의 페북 프로파일을 보여주었어. A는 자기를 많이 좋다고 한 놈들, B는 그저 그렇다고 한 놈들, C는 많이 좋다고 하거나 그저 그렇다고 한 놈들(불확실 조건). 흥미로운 건, 자기를 많이 좋다고 하거나 그저 그렇다고 한 놈들(불확실 조건, C)이 자기를 많이 좋다고 한 놈들(A)보다 여대생들에게 더 끌린다고 평가됐다는 거지.
오프라인에서의 자기와 온라인에서의 자기 모습 간의 불일치가 커질수록 오히려 불안이 악화되기 때문이다. 사회불안이 있는 사람들은 실제 자신과 다른 모습으로, 보다 이상적으로 자신을 제시하려는 경향성을 보이는데, 이러한 경향성은 자신의 모습을 원하는 대로 편집할 수 있는 온라인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된다. 따라서, 온라인에서는 실제 자기와 이상적 자기의 격차, 즉 자기불일치가 더욱 커지게 되고, 이는 다시금 오프라인에서 경험했던 대인관계 불안을 심화시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