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수치심’이라는 용어가 갖는 문제점.
내가 알던 ‘최수연 변호사’가 맞나요?
대환영.
"'가해자다움’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성폭력을 저지르는 사람은 따로 정해져있지 않습니다."
신지예 대표는 곧바로 항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피해자 측은 SNS에 손편지를 공개한 두 사람을 고소했다.
'피해자 다움'을 요구하는 판결은 깨지는 추세다.
“‘피해자다움’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지적한 2심 판단은 타당하지 않다”
"범죄를 당한 후 피해자의 대응은 천차만별이다" - 법원
시대의 흐름과 역행하는 부적절한 판결이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사회의 정의가 살아나고 있다는 희망을 준 의미있는 판결"
미투 1년을 맞아 소회를 밝혔다.
원심과 같은 형량이다.
추행 후에도 피해자가 가해자의 지시를 따른 것은 '피해자의 모습'이 아니다? 피해자는 간호사, 가해자는 병원 원장이었다.
‘성평등위원회가 낼 법한 성명’을 총학이 냈다는 게 이유였다.
"재판부가 가해자 쪽의 주장만 고스란히 인용했다."
"재판정에서 '피해자다움'과 '정조'를 말씀하실 때, 어쩌면 결과는 예견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비서가 상사의 호텔을 예약한 것이 '합의된 성관계'를 의미하는가?"
여러 명의 남성들, 심지어 가해자 지인들이 있는 공간에 여성이 옷이 벗겨진 채로 뛰쳐나와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는 인식은 성폭력 피해가 무엇에 대한 침해인지에 대한 이해가 없음을 보여준다. 한국사회에서 성폭력 피해는 여전히 부끄럽거나 숨겨야 할 것으로 인식되어 왔고, 그렇기에 오랫동안 본인이 직접 고소해야 가능한 '친고죄'의 영역에 속해 있었다. 따라서 많은 피해 여성들이 성폭력 피해 사실이 노출되지 않기를 원하며, 이러한 인식들로 인해 성폭력의 신고율이 10% 정도에 머물게 되는 것임을 재판부는 과연 몰랐을까.
농담에 웃음 짓는 것,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며 셀카를 올리는 것, 지인들과 잘 어울리는 것, 시험성적이 우수한 것. 이 중 어느 것이라도 '성폭력피해자'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면, 당신의 '사소한' 고정관념은 이미 누군가를 평가하는 저울이나 옥죄는 사슬이었을지도 모른다. '성폭력피해자는 정신과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고통스럽다'고만 바라보는 사람들, 여성의 강간을 죽음보다 큰 일로 여기고, 씻을 수 없고 회복할 수 없는 일로 여기는 사회는 성폭력피해자를 평생 평범하게 살 수 없는 사람으로 규정해버리기 십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