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가족'은 따로 없다.
정인이 아동학대와 관련된 어른들이 전부 발뺌하고 있는 모양새다.
2016년 현재, 우리 사회의 입양제도가 '여전히' '아동'에게 치명적인 위해를 끼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건이 다시 한 번 발생했다. 지난 7월 대구에서 예비 입양 부모에 의해 학대 당한 결과, 뇌사 상태에 빠진 3세 아동의 이야기이다. 이 아동은 이미 한 차례 다른 가정에 예비 입양 보내졌다가 '학대'받은 후 '반환된' 아동이었다. 1개월 만에 아동은 다시 대구의 예비 입양 가정에 보내졌다. 4개월 후, 아동은 저나트륨 증상으로 1차로 병원 응급실행을 했다. 아동학대를 의심한 의사가 신고했으나, 예비 입양 부모에 대한 지역 평판이 좋다는 이유로 사건은 무마되었다.
한국을 찾는 해외입양인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 즉 '뿌리'를 찾는 것이다. 그리고 왜 자신의 친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을 수밖에 없었는지, 더 나아가 고국은 왜 어린 자신들을 너무도 쉽게 내팽개쳤는지, 혹시 입양과정에 불법적 요소는 없었는지 그 '진실'을 원하고 있다. 이들은 이제, 해외입양에 관여하였던 자들 중 불법행위를 한 자들과 불법행위를 묵인·방조하거나 심지어 권장한 것으로 의심되는 정부에게 법적 책임을 묻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그러나 법의 영역에서도 그들은 큰 장벽을 만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입증의 문제'와 '시효제도'가 바로 그것이다.
아동복지에 대하여 말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아이를 안전하게 유기할 수 있게 보장할 것인가 이야기하는 것이 불편한 이유는 그러한 미봉책이 아동복지를 위한 제도개선을 지연시키거나 가로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선한 의도가 결과적으로 제도적인 악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베이비박스'는 참 기이한 단어이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존재인 '아기(베이비)'와 사물을 담거나 포장하는 데 사용되는 '박스'가 한 단어로 연결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우리사회에서 '베이비박스'는 아이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미담으로 통용되고 있다. 어쩌다 우리 아이들에게 '베이비박스'가 유일한 생명의 구원줄로 여겨지게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