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가 현실로?
설악산이라는 컨텐츠가 훼손될 위기에 처했다.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문제다. 작년 8월,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는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을 조건부 승인했다. 두 차례나 부결되었던 사업이 대통령 말 한 마디에 졸속으로 추진되고 있다. 산양을 비롯한 10여 종의 천연기념물과 38여 종류의 멸종위기 생물들이 사는 서식처임을 알면서도, 다섯 가지 보호구역이 중첩된 곳임에도 시간당 800명을 끌어올릴 수 있는 케이블카가 들어설 예정이다.
이명박정부 때 4대강의 엄청난 토목공사로 전국를 파헤쳤지만 개발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번 4.13 선거에도 수많은 개발공약과 규제완화공약이 난무할 것이다. 정치인은 10년 뒤, 100년 뒤의 장기적인 정책보다는 선거와 선거기간만 책임진다. 기업은 먼 미래세대를 위한 정책보다 일년 단위의 당기순이익으로 움직인다.
정상부인 한계령(오색령)은 자연경관이 수려해서 강원도가 추진하고 있는 오색케이블카 상부에서 보는 경관보다 훨씬 아름답다. 이 길을 차량통행을 금지시키고 재자연화하면 명품 트레킹 코스로 탈바꿈시킬 수 있다. 국립공원의 품위를 훼손하는 흉물스러운 시설이나 모습들이 모두 사라질 것이다. 겨울철마다 힘들게 하던 제설작업도 할 필요가 없어진다. 오히려 눈썰매를 타거나 노르딕 스키를 즐길 수 있는 천연의 슬로프가 된다. 즉 4계절 탐방 코스가 될 수 있다. 오색마을과 한계리마을은 트래킹 여행의 근거지가 될 수 있다.
국립공원은 그 나라에서 가장 보호가치가 높은 지역을 후손들을 위해 자연 상태 그대로 보호하기 위하여 지정하는 것이다. 설사 경제성이 있더라도 개발을 금지하겠다고 국가가 지정, 선언한 지역인 것이다. '억만금을 줘도 안 팔아(안 돼)'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사정이 어려워도 팔지 않고 대대로 물려가는 종중 땅이나 가보,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나 유물처럼 가장 소중한 것, 가장 깊은 자존심이 걸려 있는 것을 지칭하는 말이다. 국립공원 역시 자연경관이나 생태계의 가치도 매력적인 요소이지만, 무엇보다도 '경제성 있더라도 절대 개발하지 않는다'고 터부시되는 지역이라는 점에서 신비로운 장소이고, 때문에 '국가 자존심의 상징'이 되는 것이다.
국립공원 케이블카 설치로 연일 뜨거운 논란이 되고 있는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 예정지에 귀여운 새끼산양이 출현했다. 2012년도와 2013년, 두 번이나 오색케이블카 사업이 반려된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멸종위기야생동물(산양)의 서식지에는 케이블카를 최대한 회피해야 한다' 라는 환경부의 검토기준에 위배되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새끼산양이 노선 중간에서 발견됨에 따라 검토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논란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설악산 케이블카에 대한 문재인 대표의 태도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정치인 문재인', 그리고 그가 대표로 있는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해 심각한 회의와 배신감을 느끼게 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에서는 '그깟 케이블카 하나로 그렇게 심한 말을 할 수 있는가', '강원도에서 우리 당이 처한 어려움을 좀 이해해 주면 안 되겠는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깟 케이블카'가 아니다.
이번에 설악산 케이블카를 추진하거나 동조하는 사람들이 계속 알프스 케이블카를 사례로 든다. 어쩌다 스위스 또는 프랑스 샤모니에서 케이블카 한번 타보고 와서는 마치 자기 자신들은 해외 사례를 잘 알고 있고, 환경단체나 국민들은 국제적인 추세를 모르는 '우물 안 개구리'로 착각하는 오만에서 나온 말들이 아닌가 싶다.
관광객, 지역주민, 환경단체에 따라 케이블카에 대한 접근과 찬반이 모두 다르기에, 경제성 검증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 지난 7월 양양군에서 의뢰하여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에서 용역을 진행한 "설악산국립공원 오색삭도 설치사업 경제성 검증"에서는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하였다. 그럼에도 이 보고서는 현재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KEI의 2015년 보고서는 잠깐만 읽어봐도 '말도 안 된다'는 것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복잡한 수식을 나열해 포장했지만, 결국 2012년 당시에 비해 설악산 케이블카 탑승객 예상치를 잔뜩 높여서 만든 결과일 뿐이다. 조금 단순화해서 표현하면 2018년 기준으로 연간 케이블카 탑승객을, 지난번 보고서에서는 평균 38만5천명, 이번에는 평균 약 54만5천명으로 예측해서 B/C 분석을 한 것이다. 탑승객이 무려 40% 이상 높은 수치로 바뀌었으니, 경제성이 없던 사업이 졸지에 있는 사업으로 둔갑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설악산에 케이블카와 정상 부근의 호텔 건립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체르마트 마을이 자기들이 제시한 방식의 개발을 통해 관광객 유치에 성공한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그러나 이는 사실을 극도로 왜곡한, 악의적인 주장이다. 체르마트는 그런 반환경적인 마을이 아니다. 마터호른 정상부근은 물론이거니와 수 킬로미터 이내에는 호텔은커녕 케이블카도 설치되어 있지 않다. 체르마트에 있는 케이블카는 마터호른 정상으로 가는 케이블카가 아니다. 트래킹 출발지점으로 가는 '교통수단'이다.
케이블카 설치가 국민의 편리와 관광 활성화를 위해서라고 합니다. 그러나 기존에 설치됐던 설악산 케이블카를 보면 국민이 아닌 특정인을 위해서였습니다. 설악산 케이블카의 대표는 한태현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조카입니다. 박정희의 사위 한병기가 '설악케이블카 회장'이었고 아들 한태준, 한태현이 '설악케이블카(주)'의 대주주입니다. 한병기가 회장인 설악케이블카(주)'의 매출액 99%가 케이블카 운행으로 벌어들이는 돈입니다. 2011년 순이익이 37억 원이니 44년간 벌어들인 돈만 계산해도 수백억 원이 넘습니다. 단지 박정희의 사위라는 이유만으로 그 자녀들까지 특혜를 대물림받고 있습니다.
지금 설악산에 케이블카를 놓겠다고, 양양군과 강원도 그리고 환경부 등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정상부근에 호텔 건립을 포함한 대규모 개발 계획이 있다고 한다. 훗날 통일되면 후손들이 설악산을 찾았을 때 이런 말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설악산에 케이블카도 놓고, 개발도 하자고 할 때, 박근혜 대통령께서 '경제성이 있어도 안되는데, 하물며 엉터리 경제성 분석에 내가 속아서 설악산의 절경과 바꾸는 짓을 할 수 있겠느냐'며 못하게 하셨습니다" 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