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왜 지금 탈진실의 시대에 들어서고 있습니까. 첫째, 세계화와 급격한 기술의 변화는 어느 때보다 높은 불확실성을 야기하고 있고, 경제적 불평등 및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어느 때보다 극심한 삶의 불안감을 낳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확실성과 불안감이 큰 사회에서는 걱정과 염려, 후회, 인지 부조화를 경험할 가능성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끼리만 모여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플랫폼이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보수와 진보의 스펙트럼에 걸쳐서 다양한 언론이 공존하고, SNS상에서 1인 미디어 시대가 열렸지만, 내가 원하는 정보만 선별할 수 있는 환경에서 살고 있습니다.
국민은 자녀로 은유될 수 없다. 대통령이 아버지 역할을 맡은 것이 아니며, 공화정이 어머니인 것도 아니다. 국가는 가정의 확장판이 아니다. 언론과 지식인들이 시국을 개탄하는 목소리를 내준 용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응원한다. 하지만 대통령의 '여성으로서의 사생활'을 존중하자는 변호사를 포함하여 모든 이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여자 대통령을 공인으로 생각하는 것이 왜 그렇게 어려운가.
만약 지금 대통령이 생물학적으로 남자였다면, 여자인 박근혜 대통령에게 붙여지는 옮길 수 없는 여성비하적인 차별적 표현들이 지금과 같이 SNS를 채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예를 들어서, 남성 대통령이 과오를 저질렀을 때에, '역시 남자가 대통령하면 안 돼...'라는 결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박근혜의 생물학적 여성성은 이러한 '역시 여자가 하면 안 돼..'라는 결론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곤 한다. 대통령의 생물학적 성에 따라서 대통령의 지도력에 대한 비판의 '이중기준'이 적용된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진보와 개혁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성혐오적' 행위이다.
사실 여성 대통령은 우리나라에서 박근혜대통령이 먼저 했다. 박대통령의 당선은 분명 한국사회에서 최초의 여성대통령 당선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노예해방과 여성해방과 같이 사회발전의 관점에서 의미를 부여하기에는 많이 미흡하다. 우선 당선의 배경에 아버지 후광이 있었고, 또한 대통령으로서도 차세대 출신답게 과거 아버지의 공적과 과오를 분별하고,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진취적 정치를 했어야 한다. 우리가 밖으로 자부하고 자랑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하고, 아쉬운 지점인 것이다.
2016년, 올해는 '붉은 원숭이의 해'이다. 그런데 2016년이 되기 전부터 한자어표기인 '병신년(丙申年)'이란 표음(表音) 때문에 말들이 많았다. 인생 살면서 욕 한번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마는 물 만난 고기처럼 '병신년'을 인용한 장난 아닌 장난과 욕인 듯 욕 아닌 듯한 인터넷 댓글들이 판을 쳤다. 여성대통령인 현 정부를 비꼬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결국, 일부 장애인단체에서는 장애인과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인 '병신년'을 한글표기인 '붉은 원숭이해'로 바꿔 부르자는 캠페인을 벌이기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