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본인의 삶과 닮아있다.
'함께 잘사는 나라'를 강조했다.
'해고 위기'에 몰린 중장년 여성노동자 고용안정 방안 필요
안보파탄‘과 ‘경제파탄’을 심판하자!
이곳 '비치헤드'(Beachy Head)라는 바닷가 하얀 절벽 위에는 2차대전 참전 공군을 기념하는 비석이 있다. 돌에 새겨진 헌정사엔 이렇게 적혀 있다. "많은 이에게 비치헤드는 그들이 본 영국의 마지막 풍경이 되었다." 바람 부는 절벽 위에서 이 글을 읽으면서, 내가 보고 있는 이 절벽을 본 후 다시 돌아오지 못한 그들을 상상했다. 마지막 줄은 이렇게 끝난다. "그들을 기억하라"(Remember them). '그들을' 기억하라고 했다. 그들의 희생, 그들의 용맹함, 그들의 충성, 그들의 '무엇'이 아닌. 무엇을 기억할지는 기억하는 사람의 몫이다. 그와 내가 만나는 지점이 사람마다 시대마다 다를 터이니.
사실 전태일이 살던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노동자들의 요구는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전태일의 요구는 "근로기준법을 지켜달라"는 너무도 소박한 것이었다. 지금은 어떨까? 얼마 전에 철도 민영화 반대 투쟁을 벌이는 철도노조 위원장의 이야기를 들어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분들의 요구도 전태일이 요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매우 소박했다. 그분들의 가장 큰 요구는 "우리에게 노동기본권을 보장해달라"는 것이었고, 이 말은 곧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우리도 좀 사람답게 살자"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이 나이에 본 〈죽여주는 여자〉는 가슴을 찢는다. 달아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늙음과 죽음에 얼굴을 돌리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대하는 것이 인간적 존엄을 유지하는 유일한 길이다. 나는 젊음과 생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애호가 인간을 괴물로 만든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제가 〈제국의 위안부〉를 통해 시도한 일은 오로지 자신의 체험을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하고, 말했으나 잊혔던 목소리를 그저 복원하고, 세상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공간으로 내보내는 일이었습니다. 물론 그런 목소리만이 진짜 진실이라고 말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위안부할머니들을 둘러싼 일임에도 위안부문제가 당사자의 일부를 점점 제쳐놓고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침묵하게 된 분들의 목소리도 일단 들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사자들 간의 생각이 다르다면, 주변 사람들도 함께 다시 생각해 보자, 오로지 그것뿐이었습니다.
나의 책이 허위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협력이나 자발성 자체를 강조해야 했기에 이번 공판은 특별히 마음이 무거운 자리였다. 나의 책은 그런 것을 강조하는 일 자체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정에서의 공방이란 책의 취지를 협애한 것으로 만드는 행위였다. 물론 그것은 내가 시작한 사태는 아니다.
미국 중남부 한글학교 연합 캠프에서 중고등학생 아이들을 위하여 한국경제 발전의 역사를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자랑스런 경제발전을 가져온 박정희, 이병철, 정주영 등의 이름을 아이들에게 꼭 기억하게 해주어야 한다고 제게 신신당부하였습니다. 보내준 제 강의 노트를 보고서는 다음 날 숨을 헐떡이듯 이메일이 날라 왔습니다. 청소년들이 한국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한국의 긍정적인 측면만 소개해야 한다고 합니다. 다른 이야기는 정치적이므로 빼달라고 합니다.
"옛날 그 자리에 있던 구로공단은 어떻게 변했고 여기에 있던 사람들은 누구였는지 알고 싶었고 목소리를 듣고 싶었죠. 이번 <위로공단>에서 다루는 '노동'은 가족과도 밀접히 연결돼 있어요. 어머니는 공장에서 40년 동안 일을 하셨고 형수님은 전화 교환원에서 지금은 보험 설계사로, 동생은 마트 직원으로 일해요. 아버지는 철공소에서 일하시다 손도 다치셨고 지금은 일을 못하시죠. 어쩌면 사회 입장에서는 흩어지는 먼지처럼 느낄지도요. 이런 비슷한 환경에 처한 분을 만나 인터뷰하면서 그 내면을 보고 밖으로 표현하지 못한 것을 끄집어내면서 훈련되지 않은 그들의 고백을 제 상상력으로 재해석합니다. 어쩌면 저는 그 불안과 고통의 심리를 대신 이야기하는 사람일지도 몰라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를 봤다. 너무나 슬프고 아픈 영화였다. 이 영화는 부모가 누구냐에 따라 운명이 사실상 결정되는, 가난하고 가방끈 짧은 부모를 만난 사람들 대부분은 행복해지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해도 개미지옥에 빠진 것처럼 불행과 고통에서 헤어날 수 없는, 그리하여 약자들끼리 늑대가 되고 서로 죽이는 한국사회에 대한 솔직한 보고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