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지 않고 외롭지 않았습니다"
그가 쓴 색안경.
전광훈 목사는 "국민 여러분에게 많은 근심을 끼쳐드려 죄송하다"면서도 사랑제일교회 집단 감염을 '사기극'이라고 표현했다.
문재인 대통령, 조국 민정수석, 이해찬 민주당 대표, 이인영 원내대표를 언급했다.
한글날 맞아 무료 공개.
여성 수용자는 자신이 낳은 18개월 미만의 아이를 교정시설에서 키울 수 있다
서울대 출신 수형자의 디테일 가득한 감옥 관찰기.
이해하기 힘든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름다움은 곧 자신과 세계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파악의 깊이다. 빈약한 사유를 가리는 미사여구를 구사하는 것, 기발한 표현과 문장을 창안하는 것, 독특한 비유법과 상징법을 사용하는 것이 아름다움의 몸체가 아니다. 물론 그런 것들도 포함된다. 말을 갖고 노는 재주는 시의 중요한 구성요소다. 그러나 이런 '언어적 장치'들은 아름다움의 곁가지다. 아름다움은 곧 깊은 앎의 문제다. 미당시는 그런 아름다움에 이르는가. 그렇지 못하다. 나는 한국문학의 큰 공백으로 (문학적) 지성의 빈곤을 지적해왔는데, 미당시도 예외는 아니다. 참된 아름다움은 깊은 지성의 다른 표현이다.
선거 때마다 의제를 띄우기 위한 활동을 하지 않으면 묻혀버리기 때문에 계속 투쟁하고 있다. 투쟁의 목적은 가시화다. "드디어 한국에도!"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있었다. 노동자 투쟁, 세월호 추모 집회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의제에 성소수자는 항상 있었고, 함께 운동하고 연대하고 있었다. 성소수자 정치인, 페미니스트 정치인이 필요하다. 말로만 페미니스트라고 하는 정치인은 필요 없다. 기득권층이 굳건히 자리 잡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인들이 눈치를 안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소신 있는 정치인가?
동거하기 전, 우리는 자주 모텔에 갔다. 섹스할 곳이 없었으니까. 모텔은 비싸서 DVD방에서 황급히 일을 치르기도 했다. 어느 날 섹스 후 그가 말했다. "우리, 이제 너무 자주 모텔에 오지 말자." "응. 왜요?" "사람들이 그렇게 볼 수도 있어. 혁명한다는 애가 여자랑 이런 데를 와? 하고 말이야." 수긍했다. 모텔에서 나오는 길에 아는 사람과 마주칠 때 민망했으니까. 그런데 그의 말이 왠지 거북했다. 나는 그저 '여자'이고 우리가 교감하는 이곳은 '이런 데'일 뿐인가.
그의 판결문과 저술을 읽어보니 '더글라스 공식' 같은 것이 보였어요. 이 사람은 시민과 국가, 기업 사이에 우선순위를 정해놓고요. 국가와 기업이 부딪치면 국가의 편을 들고, 시민과 국가가 부딪치면 기본적으로 시민의 입장을 옹호하더군요. 헌법을 시민의 입장에서 보는, 그야말로 자유민주주의, 민주공화국의 의미를 가장 철저하게 탐구하여 판결에 반영한 판사라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