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작 '휴가'는 신민아와 모녀로 호흡
그곳엔 혜경궁 홍씨, 효의왕후 김씨(정조의 비)의 위패도 있었다.
궁궐에도 봄이 왔다.
최근 강박장애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유명 연예인들 역시 강박증을 고백했다. 우리나라에서 강박증은 100명 중 3명이 앓고 있을 정도로 흔한 질병이 됐다. 강박장애로 병원 진료를 받은 사람이 2010년 2만490명에서 2014년 2만3천174명으로 13.1% 늘었을 정도다. 강박증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특정한 생각이나 행동을 반복하는 병적상태를 말한다. 만약 쓸데없는 걱정인 것을 알면서도 불안해서 강박행동을 멈출 수 없다면 '강박증'을 의심해봐야 한다.
훈민정음의 창제와 반포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압도된 것은 이 세종이란 사내가 1443년에 훈민정음을 완성해 놓고선 바로 일반 백성에게 반포하지 않고 3년(!) 동안 기다리며 말하자면 테스트를 해보고 쓸 만하다는 자신이 생긴 다음인 1446년에야 반포한 점이다. 뭐랄까 당시 조선의 땅 한자락에 대한 처분권, 백성 한 명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당신 세종대왕님께서 모두 쥐고 있다는 도저한 절대군주로서의 자신감이 없으면 감행할 수 없는 일종의 사치이면서도 또한 그러한 절대권력자가 빠지기 쉬운 자만과 조급함의 유혹을 대단한 자제력으로 극복한 게 이 '훈민정음 창제 3년 후 반포'라는 기막힌 기다림이 아닐까 싶다.
한 달 만에 해외 로케이션 없이 국내에서만 촬영된 이 영화 역시 인물에 주 포커스를 맞춰 배우의 연기력에 온전히 기댄다. 흑백사진 몇 장으로 남아있는 윤동주의 얼굴을 흑백필름으로 그대로 살려내며 실재감을 부여한다. 이준익의 말처럼 '꿩먹고 알먹고'다. 제작비를 대폭 절감한 것은 물론 우리 기억 속 순백의 시인을 자연스럽게 스크린 위로 데려올 수 있었다. '사도'와 '동주'가 같은 시기 시나리오가 작성돼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똑같은 구조를 가지게 됐다는데, 형식뿐만 아니라 기법 면에서도 두 영화는 상당히 닮아 있다.
홍봉한은 정작 사도세자가 죄인으로 죽고나서 그 아들인 세손 정조의 왕위계승도 위태로워졌을 때 외손자인 세손을 구출하기 위해서 나선 걸 보면 괜시리 홍봉한에 대한 변명을 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딸을 과부로 만들고 외손자가 아비 없이 커야 하는 기막힌 상황이었다ㅠㅠ 과부조차도 개가(改嫁)를 못하는 성리학 탈레반 사대부가 지배계급인 조선시대였고 그게 아니더라도 세자빈이 세자 사후 개가라니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위를 구하려고 나섰다간 집안이 망했을 거고 그 잘난 사위 따라다니다가 소속 당파가 폭싹 망할 지경이었으니;; 홍봉한 이 양반 눈물을 머금고 사위를 버리고 딸하고 외손자랑 집안을 구하는 대규모 사석(捨石) 작전을 쓴 게 아닐까?
이준익 감독의 '사도'를 봤다. 영조로 분한 송강호를 보는 건 진정 경이로운 일이었다. 콤플렉스의 화신이자 힘센 신하들에게 약점을 보이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노력했던 계몽군주 영조로 분한 송강호의 연기는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경지다. 불혹이 넘어 얻은 아들에 대한 너무나 큰 기대와 사랑이, 실망과 미움으로 바뀌는 과정을 송강호는 마치 영조의 환생인 듯 보여준다. 어긋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결국 파국을 맞는다.
임오화변은 결코 평범한 처형이 아니다. 아버지가 자기 아들을 상자 안에 넣고 말려죽인 사건이다. 평범한 아버지는 평범한 아들을 이렇게 죽이지 않는다. 당연히 이런 비정상적인 잔혹행위가 왜 일어났는지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 <사도>는 이를 설명하지 못한다. 그건 이 영화가 '정통사극'이긴 해도 많은 부분이 잘려나간, 일종의 예술적으로 검열된 버전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해 가능한 아버지와 아들의 비극을 그리고 싶다. 하지만 두 사람이 모두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결코 이야기는 뒤주에서 끝날 수 없다. 이건 잘못된 방정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