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가서 전문적인 치료를 받아야 한다.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인종차별 논란에 대한 KBS 입장
우엽과 태선은 TS엔터테인먼트를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했다.
팀은 8인 체제로 재편된다.
전속계약 해지를 통보하고 고소장을 제출했다.
자신의 성접대 의혹을 처음 알린 기자에게 “힘들다”며 심경을 토로했다
“입에 담기도 수치스럽고 치욕적인 말들이 무분별하게 사실처럼 이야기되고 있다”
“제보자가 저라는 이유만으로 저한테만 초점이 쏠릴 것이 걱정된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도, 궁극적으로 위안부 소녀상은 과거에 관한 작품이고, 겁없는 소녀는 미래를 이야기하는 조각이다.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두 조각은 상이한 역사를 가진 두 사회에서 서로 다른 역할을 부여 받았을 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위안부 소녀상을 볼 때 느끼는 불편함이 있다면, 그것은 아픈 역사 때문이 아니라 영원히 희생자로 객체화된 여자아이의 모습 때문이다.
한국사회는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언론의 현실 개입에 너그럽다. 보수 논객들은 정부에 들어가는 것을 승진의 자연스러운 마지막 단계라고 볼 만큼 한국의 보수사회는 너그럽고, 운동가와 언론인의 구분을 아무런 고민 없이 넘나들어도 그것이야말로 "행동하는 양심"이라고 할 만큼 한국의 진보사회는 관대하다. 내가 이번 문제를 굳이 판도라의 상자에 비유한 이유는 그 전에는 우리 언론이 훌륭했기 때문이 아니라, 현재 가장 존경받는 언론이 온 국민이 지켜보는 앞에서 선을 넘었기 때문이다.
기자는 언론인으로서의 정체성 뿐만 아니라, 자연인, 직업인, 시민 등 인간이 가지는 모든 정체성을 함께 가진다. 다만 때로 상황에 따라서 언론인으로서의 정체성과 다른 정체성이 부딪치기도 하며, 택일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는 것뿐이다. 이 경우는 거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범죄 정보를 입수하고 이것을 신고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개인의 판단이다. 이때 신고해야 한다는 시민의 입장과 취재해야 한다는 기자의 입장이 상충하는 것도 아니다. 누가 신고를 했건 국민들은 그녀가 체포되는 현장에 대한 "알 권리"가 있다. 현장에 기자가 있었다. 기자가 잠시 한 눈을 팔고 딴청을 피우지 않는 한 체포 현장에 대한 국민의 알 권리는 충분히 충족될 수 있고, 충족되어야 한다.
정유라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JTBC 기자는 현지 경찰에 신고를 하고 체포되는 장면을 촬영해서 보도한 것은 기자는 사건을 보도만 할 뿐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명백하게 어긴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기자이기에 앞서 하나의 시민이고, 그의 신고는 양심에 따라 판단할 수 있는 개인의 결정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가 시민으로서 신고하기로 했다면 보도를 포기했어야 했다. 그리고 만약 보도하기로 마음먹었으면 끝까지 관찰자로 남았어야 했다. 그게 보도윤리다. 그런 게 2017년 언론계에 남아 있다면 말이다.
새누리당사를 경찰이 청소해주는 사진은 우리나라의 수준이 어느 쪽에 가까운지를 잘 보여준다. 우리는 일당독재를 당당하게 내세우는 중국의 수준이고, 새누리당은 자신들이 독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적어도 경찰은 그렇게 생각하는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서울의 치안을 책임지는 경찰을 정당이라는 일개 조직의 경비원이나 청소원으로 취급할 수 있겠는가. 이건 공조직의 사유화다. 이 "깨진 창문" 하나를 사소한 일로 취급하고 그냥 넘기면 정당과 국민의 이익이 충돌할 때 국가의 합법적 무력조직이 국민이 아닌 정당의 편에 서게 된다. 우리는 그 모습을 익히 봐오지 않았는가?
첫 번째 질문을 한 기자부터 핵심을 찔렀다. "세계 지도자들에게 트럼프에 대해서 뭐라고 말할 생각인가?" 이런 질문을 받고 싶은 대통령은 없을 것이다. 오바마는 선거기간 내내 트럼프와 트럼프가 지지하는 가치에 대해 혹독한 비판을 했는데, 이제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 "트럼프도 대통령직을 잘 수행할 것"이라는 설득을 세계 지도자들에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그걸 어떻게 전달할 거냐는 것이 기자의 질문이다. 오바마는 그런 난감한 질문을 회피하는 대신 오히려 그것을 미국 대통령직과 정권에 대한 깊은 이해를 전달하는 기회로 삼는다.
많은 한국인들이 박정희가 운 좋게 훌륭한 국민을 만난 독재자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더 많은 한국인들은 아직도 박정희가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장본인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들은 아버지 옆에서 그 모습을 보고 배운 박근혜 역시 훌륭한 지도자가 될 거라 생각했다. 그들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맞았다. 아버지와 다르지 않은 대통령이라는 사실 말이다. 이번 박근혜-최순실 사태로 우리가 꼭 얻어야 할 중요한 소득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사회 한 쪽에 끈질기게 남아있는 박정희의 우상을 깨는 일이다.
60년대생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세상이 쉬웠다. 물론 개개인이 처한 환경에서 모든 것을 바쳐 열심히 노력한 분들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내 말은, 하나의 코호트로 봤을 때 그들은 다른 코호트들보다 쉬운 세상을 살았다는 거고, 어려운 환경조건이라 그렇지 다른 세대 역시 자기가 처한 환경에서 정말 열심히 살고 있다는 거다. 한국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를 열심히 살면서 성공했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하는 세대 = 열심히 살고 있지 않은 (혹은 똑똑하지 않은) 세대'라는 논리적 오류가 그 코호트에 존재한다.
민주당 전당대회 첫날인 월요일 밤 미셸 오바마의 연설은 뜻하지 않은 대히트였다. 오죽했으면 '힐러리 클린턴이 못하고 있는 부분을 미셸 오바마가 채워줄 수 있다'면서 퍼스트 레이디가 힐러리 캠페인을 적극 도와야 한다는 말이 다 나올까. 미국의 대통령은 맞벌이 직업이다. 현대의 미국 대통령의 부인은 옛날처럼 예쁘게 웃고 손을 흔드는 현모양처만으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지난 월요일 밤, 미셸 오바마가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차기 퍼스트 레이디가 되려고 하는 멜라니아 트럼프가 얼마나 자격미달인지 비참할 만큼 잔인하게 보여준 연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