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보는 배우들의 조합.
지금 가상화폐 시장에 필요한 것은 이와 같은 건강한 제도의 도입이다. 그 전에 폐쇄 운운 하는 것은 밤에 짖는 동네 개들이 시끄러우니 다 죽이자는 이야기다. 보통 이런 이야기는 도둑떼가 휩쓸고 간 뒤 정신 차리는 바보 원님이 나와야 제격이다.
지난 박근혜 탄핵정국을 이끈 촛불시위는 국가단위 시민 행동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국정원 댓글 사건을 맞닥뜨렸을 때도 지난 촛불시위 때처럼 하지 않았다. 우리는 세월호 사건을 정권이 정치적으로 악용했을 때에도 지난 촛불시위 때처럼 하지 않았다. 때때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지만, 그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각자의 생업과 삶에 이러한 의제들은 간단히 저울질됐다. 그렇다면 먹고사니즘 앞에 나약했던 것은 방송국 사람들뿐이었을까. 이제 와 파업한다는 비난이 그들에게만 향하는 게 맞을까. 이 파업의 시기를 결정한 것은 방송사 노조인가 시민사회인가.
누구나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고, 쓰레기 같은 인간에게도 똑같이 보장되어야 하는 기본권 차원의 문제라고 주장한다면, 노조의 기본권이 파괴된 상황에도 문제의식을 가지는 게 일관되다. 갑을오토텍은 부당노동행위, 파업방해, 노조원 폭행, 노조파괴 등 노동조합과 노동자의 헌법상 기본권을, 매우 공격적인 방식으로 무력화시킨 노동기본권 파괴의 백화점 같은 사업장이다. 변호인으로서 조력받을 권리를 옹호한 기본권 보장차원의 행위니 문제없다고 방어하려면 이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그것이 기본권을 대하는 일관되고 올바른 태도다.
엘리트를 자처하는 문체부 관료를 비롯해 문체부 산하기관의 매개 인력들은 '혼이 비정상'인 한 사람 위정자의 심기 경호를 위해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조직적으로 '부역'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물론 개인의 양심 문제로만 환원할 수 없는 전면적 관료화의 문제가 있을 것이다.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가 "권력은 규칙과 절차의 얼굴을 하고, 당연한 듯이 복종을 요구한다"라고 한 말은 '형식이 내용을 압도하는' 전면적 관료화 시대의 문제를 그대로 보여준다.
내가 '배운 여자'이기 때문에 나는 저학력의, 빈곤층 남성들의 젠더 감수성을 비판할 자격을 박탈당하는가? 어째서 '젠더'가 계급을 형성하고 여기에서 착취와 차별과 억압이 일어나고 있음은 은폐되는가? 다시 말하자면, 어째서 젠더의 계급-또는 여성성의 계급('창녀'와 '모성'의 스펙트럼 같은)은 계급의 문제로 논의되지 않는가? 블랙넛이나 정중식처럼, 소위 '루저' 감성의 혹은 실제로 남성성 경쟁에서 상대적 약자인 남성이 여성을 대상으로 착취나 비하, 혐오 발언을 할 때 이것이 논란이 되면 왜 그들보다 계급이 높은 여성을 기어이 '가정'하고, 여성이 반드시 약자는 아니라는 아무말 결론을 이끌어내는가?
"정치는 책임감과 존재의 복잡성을 깊이 이해하는 사람들이 담당해야 한다. ... 정치는 더러운 것이라고 생각하면 정치는 계속 단순한 기술로 남을 수밖에 없다. 정치가 불명예스러운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정치를 그렇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경제다'라는 사실은 말 안 해도 알고 있습니다. 중요한 건 그 다음입니다. '정답은 투표다'는 다음 순위를 점하는 구호가 아닙니다. 솔직히 투표로 더민주 밀어주면 경제가 나아질 거란 믿음을 갖고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남자가 말했다. '한국 사람들은 일하기만 하고 자아가 없어요. 다 똑같이 살아. 난 그렇게 살기 싫어서 세계를 떠돌아다니는데 외국은 참 사람 사는 곳 같아요.' 나 역시 20살에는 누가 들었음 직한 대학에 가고 27살쯤에 취업을 하고 연봉은 얼마 정도가 되어야 하며 30살이 넘으면 결혼을 해 몇 평 정도의 신혼집을 마련해야 한다는, 모두가 줄자 위를 걸으며 내가 어디 정도인지 끊임없이 주변을 둘러봐야 하는 그 분위기에 질식할 것 같아 한국을 떠나온 것도 있다. 하지만 여행을 많이 하면 인생을 더 잘 아는 걸까? 그리고 자아를 찾을 수 있을까?
다른 나라들이 금융위기 때 은행에 세금을 넣어 되살린 것과 반대로, 아이슬란드는 3대 은행을 모두 파산시킨다. 그리고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 금융사들이 부실 책임을 지기는커녕 금융위기 기간에도 고액 연봉과 보너스를 챙긴 것과 반대로, 아이슬란드 은행 경영자들은 부실에 책임을 지고 감옥에 가게 된다. 이 시기 아이슬란드 정부로부터 상징적 정책이 하나 더 나온다. 위기 직후에 모든 고기잡이 장소를 개방하고 시민 누구나 하루 650kg까지 물고기를 잡고 팔 수 있게 규제를 푼 것이다. 돈에 대한 규제는 묶고 고기잡이에 대한 규제는 푼 셈이다. 몇 년 전 금융 규제를 풀었던 것과 정반대 방향의 정책이다.
지금처럼 동아시아를 주 무대로 펼쳐지는 메가 FTA의 도미노는 이 지역이 '미국→중국'이라는 글로벌 차원의 세력전이와 '일본→중국'이라는 지역 차원의 세력전이가 동시에 일어나는 공간이라서 나타나는 독특한 현상이다. 그로 인해 이들 중 한 나라의 FTA 체결은 나머지 나라의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킨다. 바로 그 출발점이 한미FTA로, 한중FTA, 한중일 FTA, RCEP, TPP 그리고 TTIP로 이어지는 메가 FTA 도미노는 한미FTA가 체결되는 순간 족히 예견된 미래였다. 문제는 상호 협력과 연대의 기운이 아닌 견제와 대립의 산물로서 촉발된 메가 FTA 도미노에 내재된 불안정성이 언제 어떤 양상으로 표출되어 협력을 무력화시킬지 예측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한국 사회에서 나이 먹는 일은 공포스러운 일이다. 다들 느긋하게 여유를 즐기는 노년을 상상하지만, 바로 뒤 묵직한 질문이 따라온다. '그 여유를 위해 얼마를 모아두어야 할까? 그만큼을 모으기 위해 나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금융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이야기했던 5억원설, 10억원설, 20억원설이 머리를 스쳐간다. 나는 노후준비에 대한 질문을 바꿔볼 준비가 되었는가? '노후에 얼마가 필요한가, 그 얼마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을 과감히 폐기하고, '노후에 나에게는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새로운 질문을 던져볼 수 있는가?
짙은 정치적 그늘 속에서 핀 버섯을 식재료로 볶음밥을 하며 즐거워하는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남은 수수께끼는 "오늘 뭐 먹지?"가 되었다. 이 골치 아픈 수수께끼에 답하는 것은 "요즘 핫한 떡볶이 맛집~ 침이 넘어가네요" 하는 국정원의 문자메시지다. 하지만 하루종일 헤드폰을 끼고 모니터를 바라보며 도감청하다 지쳐 원룸으로 돌아간 국정원 직원의 밤 시간을 무엇이 채우겠는가? 야식 주문 메뉴 책자 아니면 먹방일 것이다. 그 또한 그렇게 자신이 참여해 만든 체제의 희생자인 것이다.
나는 공모전에 입상하여 실제로 70만원의 기본소득을 받았다. 당연히 추가적인 임금 노동은 필요했다. 기본소득이 주어지면 아무도 일을 하지 않아 경제가 파탄 날 것이라고 걱정을 하는 이들이 있던데, 그건 정말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다만 일을 '덜' 할 수 있고, '골라' 할 수 있다면 모를까. 기본소득을 받아 일단 월세와 기본적인 식비가 해결되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의 종류가 다양해졌다. 정말 하고 싶었으나 금액이 맞지 않아(혹은 금액이 없어) 포기했었던 작업도 기꺼이 받았고, 작업 방향이 달라 하기 싫었지만 억지로 했었던 업체의 의뢰는 과감히 거절할 수 있었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 결정적인 순간 어떻게 행동했을까? 마지막까지 배에 남아 최후를 맞는 영화 속 선장이 될 수는 없다면, 나보다 승객 목숨을 먼저 생각해 탈출시키는 영웅적 선원이 될 수는 없다면, 최소한 희박한 확률의 대형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회사 이익을 희생하도록 만드는 사장이나 직원은 될 수 있었을까? 그것조차도 쉽지는 않았으리라는 게 나의 솔직하고 좌절스러운 답이었다. 여전히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패러다임은 '먹고사니즘'이다. 안전이나 직업윤리보다는 속도와 회사 이익과 생존이라는 가치에 우선순위가 있다. 이를 거슬러 행동하려면 영웅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순응해도 문제는 있다. 운이 없으면 대형사고를 만나 순식간에 악마가 될 수 있다.
영화는 루이스 블룸이라는 미친놈을 통해서 언론 행태의 극단적인 단면을 보여준다. 하지만 더 눈여겨 봐야 할 것은, 고물상에서도 안 받아주던 이 미친놈이 재능을 인정받고 성장하는 업계다. 뉴스를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그가 했던 행동들에 대해, 언론사는 책임을 면할 수 있을까? 그 방면의 선수들일 업계 사람들이 '몰랐다'고 한다면 그것은 믿을 수 있는 이야기일까? <나이트크롤러>는 미친놈이 미친놈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승승장구하는 이야기다. 왠지 이 영화를 보면서 '나라면 저렇게 안 하지' 따위의 훈수를 둘 사람이 이 땅에도 많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