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과 파면으로 시작된 19대 대통령 선거가 최종 후보등록을 앞두고 있다. 이제 우리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5월 9일 이후로 모아진다. 단순한 정권교체를 넘어서 새로운 대한민국이 열릴 수 있을까? 냉정하게 보면 지금은 엄청난 위기상황이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어낸 대한민국이 길을 잃었다. 성장은 정체되고 소득 양극화는 극도로 심화되었으며 민심은 분열되고 있다. 이런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성숙된 국민의식과 더불어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 적폐를 청산하고 새로운 국가시스템을 구축하며 국민통합을 이루어낼 지도자의 출현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는 두 번의 암살 위기 등 온갖 시련에도 불구하고 1789년 5월 노예무역 폐지 법안을 하원에 상정하는 것을 시작으로 50여년을 투쟁한 끝에 영국의회가 모든 노예를 1년 안에 해방시키라는 법령을 발표 했다는 소식을 들으며 1833년 8월 6일 생을 마감한다. 윌리엄 윌버포스는 어떻게 평생 한 길로 갈 수 있었고 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었을까?
미사일 쏘아 올리고 핵실험하는 것은 북한인데 지금 남한은 완전 열외 상태다. 미국은 북한과 직접 협상하고 있고 트럼프와 시진핑은 탁구공 넘기듯이 한반도게임을 하고 있는 현실이다. 또 일본은 얼마나 우리가 우습게 보이면, 일개 대사를 통해 일국의 대통령권한대행에게 맞짱 뜨자고 하나? 이런 처지에서 트럼프가 '책상에 올려놓았다는 한반도 선택지'에서 전쟁의 버튼을 누른다면 눈뜨고 당하는 수밖에 없다. 경륜이 없다면 이 난국을 헤쳐 나갈 수 없다.
극소수에게 이익이 집중되는 토지불로소득의 사유화는 지가의 투기적 상승을 부채질 하였고, 상품가격과 주택가격의 부당한 상승으로 이어졌다. 집값 폭등은 정당하게 열심히 일해 온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인생의 황금 같은 시간을 내 집 마련하는 데 허비하게 하였고 좌절케 하였다. 이처럼 개인의 삶이나 국가 시장경제를 심각하게 왜곡시켜온 토지 불로소득문제 해결 없이는 희망이 없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정말 해피엔딩이 없다. 건국의 과정이 힘들다 하지만 광복 70년이 지나도록 정상적으로 임기를 마친 대통령은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 등 여섯 사람밖에 없다. 일신상의 재앙이 없었던 대통령은 김영삼, 김대중, 이명박 셋뿐이었다. 그런데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임기 말기에 닥쳐온 미증유의 외환위기는 아직까지도 온 국민에게 후유증을 남기고 있다. 이명박은 어떤가? 아직도 BBK스캔들이 끝나지 않고 있다.
세월호 참사 3주기를 앞두고 마침내 세월호가 인양되었다. 화창한 봄날에 여행을 떠났던 우리 아이들이 차가운 바다 속에서 숨져간 생각을 할 때마다 가슴이 저려온다. 지난 3년 동안 유가족들이 받았을 고통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미여진다. 누가 이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는가?
스코필드는 1916년 기독교 선교사로 우리나라에 와서 세브란스의전에서 후학을 양성하였다. 그런 중에 1919년 3.1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일제의 만행과 3.1 운동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일을 하게 된다. 3월 1일에 그는 카메라를 들고 파고다 공원, 덕수궁, 종로를 오가며 사진을 찍어 서방세계에 보낸다.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3.1 운동 사진의 대부분이 스코필드 선교사가 찍은 것이다.
명동에서 화장품가게를 하는 분도 참석하였습니다. 그 상인은 전 재산에다 빚을 보태 가게를 내었는데 3년 만에 겨우 수익이 나는가 했더니 사드사태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차츰 유커가 줄어들다 최근에는 아예 매출이 절반으로 줄어들어 임대료를 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눈물을 흘립니다. 어디나 임대료를 못 내면 쫓겨나는 게 임차인의 처지라서 이제나 저제나 건물주의 계약해지통보가 올까 마음을 졸이며 살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분이 명동과 동대문에는 수만 명이 조그만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을 통해 파면되었다. 지난 몇 달 동안 탄핵에 집중되었던 우리의 관심은 이제 조기대선과 그 후 펼쳐질 대한민국의 미래에 모아지고 있다. 사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선진국의 문 앞에서 길을 잃었다. 수년째 성장은 정체되었고, 소득 양극화는 심화되었으며, 불공정과 부조리는 더욱 깊어졌다.
420년 전인 1597년도에 정유재란이 일어났다. 환갑으로 따지면 일곱 번 지났다. 당시 이순신장군은 한차례 고문을 당하고 투옥된 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고 백의종군하게 된다. 그 해 조선수군통제사가 된 원균의 지휘를 받았던 조선수군은 7월 16일 칠천량에서 궤멸 당했다. 임진왜란 후, 조선수군의 첫 패전이었다. 힘들게 일구었던 한산도 통제영도 쑥대밭이 되었다. 이제 조선의 운명은 거대한 바람 앞의 등불이었다. 그런데 불과 두 달 만인 9월 16일 명량대첩에서 이순신 장군은 기적적 승리를 하게 된다. 겨우 배 13척으로 왜적의 300여척을 이긴 것이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승리의 원인은 무엇일까?
미래전략실이 해체된다고 재벌현상이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제대로 재벌현상을 없애려면 끝없는 순환출자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즉 지배구조를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다. 각 계열사에서 총수일가의 직접 지배력이 존재하지 않는 계열사는 순환계열에서 제외시켜야 한다. 그래서 독립적인 경영을 확보케 해야 한다. 그것은 각 법인의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통해 거듭나면 된다.
"기본소득"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유의 문을 열어주고, 자유에 관해서 생각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의미이다. 돈 몇 푼 때문에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절망하고 삶을 포기한다. 자살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돈은 그리 크지 않다.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바라는 물질적 풍요는 큰 범위가 아닌 아주 기초적인 것이다. 매년 1,500조 가까운 돈이 돌고 있고, 한 해 예산만 하더라도 400조가 넘는 대한민국에서 많은 이들이 몇 백만 원, 몇 천만 원이 없어서 절망하고 삶을 포기한다.
대한민국 헌법은 삼권분립을 전제로 한다. 몇몇 주자들의 이러한 발언은 참주적 발상으로 삼권분립을 무시하는 헌정문란 행위이다. 대한민국에는 입헌민주국가로서의 의사결정과정이 있다. 헌법이 정한 절차를 따라야 한다. 국정정상화를 위해서는 헌재가 아니라 권한대행을 압박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국가로 하여금 자신의 책무인 공공성에 최선을 다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는 국민의 생활을 편하게 해주기 위해서다. 다른 것은 부차적이다. 그렇다면 일상경제생활부터 챙겨야 할 것이다. 최소한 생필품 가격이나 월세 등 먹고사는 문제와 교통비나 각종 공과금 때문에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아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제 국가는 공공성을 회복해야 한다. 구체적인 요금산정이나 고시에 대해서는 토론과 합의가 필요하겠지만, 어쨌든 국민의 일상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는 공공성의 이름으로 답을 해야 한다.
그 결정을 내린 자들은 지금 감옥으로 가고, 최고지도자는 탄핵으로 자리에서 밀려날 운명에 처해있어요. 그런데 이런 공격을 멈추지 않네요. 한국에서 기업과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너무 지나친 공격으로 당황하고 있어요. 명동 남대문 동대문 상인들은 중국과의 교류가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요. 그런데 자본도 크지 않은 이 분들은 고객이 조금이라도 줄거나 주문이 취소되면 생활이 파괴되는 소상공인들이에요.
단순히 복지와 사회안전망을 공약하기는 쉽지만, 그것이 실행되도록 경제를 재도약시킬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기는 쉽지 않다. 이것이 경제대통령의 판별기준이 된다. 다시 말해 공허한 복지공약만이 아니라, 경제와 내수활성화를 위한 비전과 대안이 제시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선적으로 중소기업 및 자영업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중소기업은 전체 기업의 99%를 차지하고 있으며 고용의 거의 90%를 차지한다. 지금처럼 대기업만 눈에 보이고 중소기업의 활력이 보이지 않는다면 국가경제의 발전은커녕 복지비 재원마련도 불가능하다.
외교와 협상이 나라를 지켜준다? 허황한 이야기다. 먼 과거로 갈 것도 없다. 동구의 공산블록이 무너지고 시장경제가 세계의 곳곳의 일반적인 현상이 된 세계화 시대, 모든 것이 계약과 협상에 의해 결정될 것으로 보이는 21세기에 땅 따먹기 전쟁이 일어났다. 영토할양이란 먼 과거 약육강식의 제국주의 시대의 일인 줄만 알던 시대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 2014년 우크라이나에서 간단한 전투가 있고 영토가 빼앗기는 100여 년 전에나 있음직한 일이 벌어졌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대 폐지론'을 들고 나와 다시 한 번 논쟁이 붙고 있다. 사회의 문제가 말 몇 마디로 해결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서울대 폐지와 대학의 평준화라는 주장은 가벼운 발언이다. 서울대학교를 없앤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문제는 서울대학교의 존재가 아니라 우리의 왜곡된 욕망구조에 있다.
문제는 아무도 헌법을 우리의 기본가치와 상식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동안 우리의 근대화와 산업화는, 경제발전은 기득권을 차지하고 보호하는 게 모두의 지상 과제이고 모두의 삶의 목표였다. 그러는 동안 헌법은 무시되었고 상식도 사라졌다. 이제 역사발전의 새로운 기회가 주어졌다. 이제 다시 인간과 개인의 상식에 기초하여 헌법도 개정해야 할 것이고, 새로운 지도자와 정부도 선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