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처럼 상위대 몰아주기와 하위대 징벌하기 방식의 과거 신자유주의 정책을 답습하는 한, 앞으로 수많은 서남대가 생겨날 것은 물론이거니와 대학서열은 더 굳어지고 대학이라는 기관 자체가 불평등의 산실이 되고 있는 현상도 심화될 것이다.
선거 때마다 의제를 띄우기 위한 활동을 하지 않으면 묻혀버리기 때문에 계속 투쟁하고 있다. 투쟁의 목적은 가시화다. "드디어 한국에도!"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있었다. 노동자 투쟁, 세월호 추모 집회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의제에 성소수자는 항상 있었고, 함께 운동하고 연대하고 있었다. 성소수자 정치인, 페미니스트 정치인이 필요하다. 말로만 페미니스트라고 하는 정치인은 필요 없다. 기득권층이 굳건히 자리 잡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인들이 눈치를 안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소신 있는 정치인가?
법안대로면 대학이 문을 닫아 실직하는 교직원에게는 대통령령에 위임되어 얼마가 될지 알 수 없는 직업훈련비와 명예퇴직 수당을 던져주고, 졸지에 학교가 없어진 학생에게는 그 학기 등록금을 돌려주는 정도로 퉁치는 대신, 법인 이사나 특수관계자는 수십년간 등록금과 정부지원으로 불어난 잔여재산을 살뜰히 털어갈 수 있게 해주는 것 말이다. 가히 개돼지와 사람이 따로 있는 '신분제 강화' 법안이라 할 만하지 않은가.
나는 나 기획관의 발언이 징후적 사건이라고 본다. 한국사회 메인스트림에 속하는 사람들 혹은 그 언저리에 있는 사람들이 '민중은 개·돼지'라는 발언을 기자들에게 서슴없이 할 만큼 공적 윤리의식 내지 경계심이 완전히 무너졌다는 신호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나 기획관은 민주공화국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이며, 특수계급의 창설을 부인하는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하는 사람이다.
우리나라 사립대학 등록금은 미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높다. 2014년도 학부 등록금을 비교해보면 미국 21,189달러, 우리나라 8,554달러, 호주 8,322달러, 일본 8,263달러로 우리나라 국민소득 대비 사립대학 등록금이 아주 높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석사 학생 등록금은 1만 2천 달러를 넘어서서 호주와 일본의 두 배 수준을 넘는다. 학부 학생 100명 감소는 85만 달러의 수입 감소를 의미하는 상황에서, 학생이 줄 경우 이를 대체할 만한 소득원이 별로 없는 대학으로서는 학생 수 감축은 곧바로 대학의 재정위기로 직결되기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학부정원을 지키려고 애를 쓸 수밖에 없다.
'교육진보'세력은 '공교육정상화'를 명분으로 대학과 고교 입시에서 학교내신 반영비중을 크게 높였다. 그 결과, 학생들은 더 고통스럽다. 대한민국정부 수립 이래, 아니 유사 이래 고등학생들이 이렇게 통제적인, 강압적인, 경쟁적인 삶을 살아간 적이 있던가? 그런데도 최근 소위 '진보교육감'들은 고교입학전형에서 중학교 내신 비교과 비중 높이기 경쟁을 하고 있다. 이제 중학생의 고통도 고등학생에 이르게 될 것이고 사교육비는 더 증가할 것이다.
기본적으로 고등학교의 직업계열교육과 전문대학 개혁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이건 명확한 것 같다. 전문대학은 고용기금을 가지고 운영되는 폴리텍 모형이 있으니 잘 들여다보고, 제조업 위주로만 협소하게 구성된 부분은 보완해야 한다. 두 번째는 국공립대학의 등록금을 실질적으로 현격하게 낮추고, 미국의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 소수 계층 우대 정책)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저소득층 자녀일지라도 학업의지와 능력이 있다면 좋은 지방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자. 지방대학도 살리고 교육 불평등도 해소할 수 있다.
물론 학령인구의 감소가 대학현장에 미칠 충격을 줄이고 대학의 질을 높이기 위해 정부의 정책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취지 자체를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대학의 질은 한국 대학의 구조적 병폐를 그대로 둔 채 대학들을 서로 경쟁시킨다고 높아지지 않는다. 한국은 학생 1인당 공교육비가 OECD 하위권이며 사적 재원이 73퍼센트에 달해 70퍼센트가 공적재원인 OECD 평균과는 정반대다. 사학이 전체 대학의 80퍼센트를 넘고 그 대부분이 족벌경영을 하고 있어, 학생과 학부모는 세계 최고 수준의 고액등록금을 내고도 부실한 교육환경을 감수해야 한다.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절규를 들어도 무뎌졌고, 고공농성을 200일 넘게 해도 "또 그러는구나" 했다. 공장 굴뚝에서 농성하는 노동자들에게 하루 100만원씩 벌금을 때리는 법원에 "굴뚝이 상하는 것도 아닌데 뭐 이런 판결이 다 있나" 하고 분노했지만 10분 뒤 일상으로 돌아갔다. 밀양에선 할머니들이 쇠줄을 목에 걸고 몇 년을 싸웠지만, <밀양을 살다> 한번 읽으며 가슴 저미고 끝났다. 배가 침몰해 수백명의 어린 학생들이 죽는 참사가 일어나니 겨우 몇 달 마음이 심하게 아렸다. 진상조사위원회 법안이 누더기가 되고 예산과 인력이 없어 활동을 못하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혀를 끌끌 차지만, 그즈음 일주년 집회에 나가본 것이 다였다. 무뎌진 것이다.
가끔 학부모 대상 특강을 할 때가 있는데, 이런 질문을 한다. "한국의 고등학교 교육이 전 세계 1위가 되었다고 칩시다. 시설, 선생님, 학업성취도, 여러 면에서 OECD 1위가 되었다고 칩시다. 그러면 자녀들 과외 안 시키실 거예요?" 학부모들이 딱 한마디로 "아니오"라고 한다. 교육 관료보다 훨씬 똑똑한 분들이다. 왜냐고 물으면 바로 답이 나온다. "SKY에 들어가려면 1만등 안에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순위 싸움이란 얘기다. 지위경쟁인 것이다. 공교육의 질이 낮건 높건 상관없이 좋은 대학 들어가기 위한 방편으로 사교육을 받고 있다. 그러면 왜 꼭 좋은 대학에 가려는 것인가? 그래야 직업안정성이 보장된 곳에 취직할 수 있고, 보수도 높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사교육의 진짜 주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