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한인회장의 추도사에도 동의하지 못했다.
링거나 수액 오염·변질 경우 제외하면 '확률 0'에 가깝다는 입장
사건을 담당한 양천경찰서장은 경찰개혁 책임 역할을 하던 인물이었다.
일명 '우한 폐렴'이라고 불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예방에 적격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과도한 공포심과 제노포비아를 경계했다
목줄을 하지 않은 반려견으로 대표되는, 이 사회의 자유와 책임, 그리고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에 대한 공론화가 다양한 방식으로 태동하고 있었던 시기다. 마침 유명인과 관련된 불행하고도 애석한 사건이 터지자, 때마침 각자는 자신의 입장에서 격렬한 언사를 행하고 있다.
배우들의 열연이 눈부시다. 김수현이 1인 2역에 노출신에 액션신까지, 촬영장에서 생고생한 것이 눈에 선하다. 또한 설리는 예상을 깨고 배역에 맞는 마스크와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인다. 연기력이 검증된 이성민이나 이경영의 연기가 묻힐 판이다. 물론 영화 내에서 이성민이나 이경영이 도대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이해하기 어려워 그들의 연기도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하여간 배우들이 열연을 펼치는데 관객이 괜히 안타까움에 혀를 차는, 이런 영화도 쉽지 않다.
현장에서 겪는 소방관의 노고는 서술하기도 미안하고 벅찹니다. 대원들은 신고를 받자마자 달려가 어떤 상황이건 환자를 살리기 위한 사투를 벌여야 하고, 심지어 죽은 사람도 수습해야 합니다. 강에서 시체를 건지거나, 기계나 차에 분쇄되거나 불탄 시체를 수습하고,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부패된 시체를 처리하기도 합니다. 그 환경이 매번 위험천만하고 위태로울 것은 당연합니다. 5년간 33명의 소방관이 순직했고, 1595명이 다칠 정도입니다. 이렇게 동료와 환자들이 위험에 빠지고, 때론 죽어나가거나 이미 죽어버린 끔찍하고 잔인한 상황에서, 정신적인 무게가 막중함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5년간 35명의 소방관이 자살했고, 전체 소방관의 40% 정도는 외상 후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방금까지 간호사를 붙들고 소리 지르던 덩치 큰 남자가 나에게 시선을 돌리더니 외쳤다. "이 새끼가, 이 새끼 너 뭐 하는 거야." 그 태도가 너무 위협적이라 무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말했다. "제발, 제발 당신 친구분을 살리려고 합니다. 저는 여기 유일한 주치의고, 당신 친구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사람입니다. 이건 꼭 필요한 시술인데다가 위험한 시술이기도 합니다. 여기 전부 멸균되어 있으니 제게 손대지 말고 제발 나가주세요." "미친새끼. 어린 새끼가 나한테 나가라고? 나가라고?" 두 손과 환부가 소독된 상태였으므로 마음이 급해져 더 이상 응대할 수 없었다.
정부는 태반주사나 백옥주사나 감초주사 따위를 의학적 근거가 떨어지기 때문에 비보험으로 지정했습니다. 그렇다고 이 주사를 국민들이 못 맞을 이유는 없습니다. 이 법을 만든 사람이건, 일반 국민이건, 이 주사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보험 적용 없이 자유롭게 자기 돈을 내고 맞으면 됩니다. 하지만 비보험을 지정한 장본인인 청와대가, 혈세까지 잔뜩 써서 그 주사들을 사다가 맞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효과가 좋은 주사라면 전 국민에게 보험 적용을 해줘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게 아니라 개인적으로 그냥 너무 맞고 싶었다면 법을 그렇게 만들어 놓았으니 조용히 병원에 가서 다른 국민들처럼 자기 돈을 내고 맞든지요.
범죄를 저지른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디까지 불법이었고, 자기가 총 책임자인 문서의 유출이 어떤 경로로 이루어졌으며, 그 과정에서 자기가 얼마나 잘못을 어떻게 저질렀고, 그래서 관련된 사람들이 정확히 누구이며, 국정의 총책임자로서 어디까지가 자기 죄이고, 자신을 포함한 그 죄를 어떻게 엄단할 것인지 말해야 한다. 그게 옆집 순이가 아닌 대통령의 사과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내용은 일언반구 들을 수가 없다. 자리에 안 맞는 사람이 그 자리에 있는 것은 최악의 악덕이다. 대통령 같은 높은 자리일수록 그렇다.
자격정지 '1년'이면 (임신중절을 시행한)병원은 무조건 문을 닫아야 한다.
이 사람이 왜 병원까지 와서 누워 결국은 목숨을 잃게 되었는지도 사회가 밝힐 일이지 의사가 밝힐 일이 아니다. 의사는 이 사람을 받아 치료해서 317일을 살렸고, 자신의 소견을 밝혔을 뿐이다. 여기서 과학적인 이분법을 정치적 논란에 끌어들이는 것은, 결국 과학을 혼란스럽게 할 뿐이고, 다른 논쟁이나 쟁점을 부러 만들거나 사실을 호도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는 그가 죽은 2016년 9월 25일보다는 그가 쓰러져 영영 의식을 잃은 2015년 11월 14일을 쟁점으로 삼아야 한다. 모든 일은 그날 벌어졌으며, 그 여파로 그가 이제 사망했던 것이다. 우리는 서류보다는 우리에게 벌어진 객관적인 사실만을 보고 믿으며, 그에 대해 증명해야 한다.
내가 그냥 유명한 배우라고만 생각했던 그녀는, 분명 내 책을 봐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사인해 보낸 책을 꼼꼼하게 봐주었고, 또, 분명히 진지하게 독서하는 사람의 자세로 책에서 나름대로의 감동을 발견하고 책을 보내준 출판사와 쓴 저자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그녀의 서재에는 분명 여기저기서 보내온 책들이 잔뜩 쌓여 있을 것이다. 그녀는 그중의 한 권인 내 책을 그냥 안 읽을 수도 있었고, 읽었더라도 아무 말 안 할 수도 있었고, 읽고 친구들에게 이야기나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꼼꼼히 읽고 책을 보내준 출판사에 연락해 이름도 낯선 저자에게 고마움을 전달하는, 책과 글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방식을 택했던 것이다.
나는 하루 종일 누워 있는 설희와 할아버지가 사는 집을 상상했다. 곤히 잠들거나 웃는 듯한 표정을 짓는 설희를 보고 그나마 삶의 위안을 찾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그 몇 장면 말고는 할아버지는 내내 이 세상에 둘만 남겨진 듯한 기분일 것이다. 말도 통하지 않아 전혀 의지할 수 없고, 자신이 모든 것을 책임져야만 하는 아픈 아이. 자신이 무거운 짐을 끌고 있으나 앞에서 폭풍우가 몰아치는 느낌. 그 생활이 십 년이었다면 익숙하지 않은 타인에게는 무조건 까칠해질 수밖에 없다. 세상에서 아이를 지킬 사람은 자신밖에 없으되, 자신의 생활조차 녹록지 않은 투쟁이었다고 생각하면, 할아버지에게는 당연한 완고함이었다.
제약회사 직원과 밥을 먹고 제약회사 직원이 돈을 내면 불법인, 평범한 논리를 가지고 살아온 의사로서 '김영란 법'과 관련된 소동은 참으로 이상해 보인다. 공직자가 직무상 이해 관계에 있는 사람과 밥을 먹고 그 사람이 돈을 내는 것이 불법이 아니었으며, 심지어 법 제정에 반발하고 있는 것이라니. 이 법을 마주했을 때 '공직자'의 부패를 척결하겠다는 단호한 취지보다 오히려 더 먼저 피부에 와 닿는 것은, 여태껏 우리 사회에서 당연히 불법이어야 할 것들이 합법이었고, 그 규모가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정도이며, 심지어 이를 서로 묵인하고 비호해왔다는 점이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참혹한 범죄였다. 살인이었다. 살인마가 나와 이야기도 하고, 통곡도 했다. 그의 계획에서 염두에 두지 않았던 상황에 대한 일말의 불안과, 깨어나서 살 수 있느냐고 묻던 질문이 떠올랐다. 그것은 죽음이 아니라, 살아남에 대한 불안이었다. 그리고 논리적으로 교통사고 사망자의 옆자리에 탔던 사람이 멀쩡한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분명 살해 방법이 있을 터였다. 그것을 입증하는 방법은 바로 부검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최선을 다해서 3일이나 목숨을 붙들었다. 각종 약물을 쓰고 삽관을 했으며 혈관을 뚫었다. 그렇다면, 증거는 전부 날아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