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 3회로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자유한국당은 31일 8명의 외부 인사를 영입했다
맹신의 결정판 같은 방언이 터져 나온 것이다. '자신들과는 아무 관련도 없는 곳에 전쟁이 났다고 젊은이들이 달려온 나라한테....' 한국전쟁이 그렇다면 베트남 전쟁 역시 베트남을 구하겠다고 미국의 젊은이들이 자원해서 뛰어든 전쟁인가? 미국 행정부가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한다는 정치 현실 외교적 실리를 고려해 반대가 심한 청년들을 먼 정글로 보낸 것이 아니라? 한국전쟁 당시 도우러 왔던 은공뿐만 아니라 한국전쟁이 벌어지기 전 일제 강점과 분단을 가능케 한 미국의 가쓰라-태프트 밀약이나 애치슨 라인은 왜 거론하지 않나?
대통령의 선의를 팔아 재벌 총수들로부터 돈을 모금했다. 재단은 대통령의 충복과 그의 측근들로 채워졌다. 그들은 당초 목적과는 동떨어진 용도로 자금을 썼다. 대통령의 퇴임 이후를 대비한 기구가 아니냐는 의혹이 흘러나왔다. 당초 모금의 강제성을 부인하던 재벌들은 권력 앞에서 어떻게 하겠느냐고 하소연할 뿐이었다. 최순실 게이트의 시발점이 된 미르와 K스포츠 재단만 떠오른다면 비교적 젊은 세대이리라. 중장년층이라면 5공화국 일해재단의 악몽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지난해 3월 승마협회 사장사가 한화생명에서 삼성전자로 바뀌었다. 새로운 사장사는 특정 승마선수의 전지훈련을 위해 적극적으로 뛰었다. 독일 헤센주 승마협회장을 끌어들인 회사에 35억원의 컨설팅 비용을 지원했다. 이 해 여름에는 승마협회 회장인 삼성전자 대외담당 박상진 사장이 직접 독일을 방문하기도 했다. 같은 해 10월 2020년 도쿄 올림픽까지 아예 그 선수가 속한 마장마술 경기를 지원하기 위한 로드맵도 만들었다. 이제는 우리 국민 모두가 다 아는 그 유명한 어머니와 딸을 돕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들이었다. 이 모든 일이 정말 삼성이 맡은 승마 종목의 선수 기량 향상을 위한 것이었을까?
대기업들은 온전히 이번 일의 피해자라고만 할 수 있을까? 서슬 퍼런 권력이 요구하는 데 버틸 수 있었겠느냐는 항변만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기업 가운데 단 한 곳도 비선 실세와 청와대의 압력에 맞선 곳이 없었다는 사실을 국민에게 납득시킬 수 있을까? 구린 데가 많은 대기업들로서는 이런 방식의 거래가 한결 더 편하고 경제적이라는 계산이 앞섰을 수도 있다. 선뜻 권력 내부에 천문학적 돈을 안기는 이들이 국민 복지 증대를 위한 사소한 증세에도 한사코 반대한다는 점을 납득하기는 정말 어렵다.
중국은 우리에 대해 심리적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안보는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하면서 경제는 자신에게 기대고 있다는 생각에서다. 우리가 돈을 중국에서 번다는 표현이 전적으로 과장이나 왜곡만은 아니다. 두 나라 무역 규모는 3천억달러에 달한다. 우리는 중국과의 교역에서 무역수지 흑자의 3분의 2 이상인 6백억 달러를 낸다. 중국인 관광객 6백만명이 우리나라를 찾는다. 외국인 관광객의 45%를 차지하는 이들은 외국인 관광객 1인 지출의 약 5배를 쓰는 큰 손이다. 이제 북의 핵과 미사일이라는 잠재적 안보 위협을 위해 대중 경제협력이라는 현재적 경제 실리를 얼마나 잃게 될지가 관심사다.
영국 수상 처칠과 페니실린으로 유명한 알렉산더 플레밍의 우정은 전설이 됐다. 어린 시절 익사할 뻔한 처칠을 구한 플레밍과 부모를 통해 그의 의대 진학을 도운 처칠. 훗날 폐렴으로 죽을 처지였던 처칠은 플레밍이 발견한 페니실린으로 회생했다. 이 가슴 훈훈해지는 이야기가 실은 사실이 아니라면? 처칠 부모가 플레밍의 의대 진학을 도왔다는 기록이 없다는 점을 빼놓고도, 이 점은 약간만 머리를 쓰면 분명해진다.
이대로 가면 5년 후 우리 기업들은 휴대전화 시장에서 노키아나 에릭슨, 소니의 운명을 되풀이 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 두 기업은 휴대폰을 잘 만든다. 하지만 잘 만든 제품이 꼭 잘 팔리거나 이익을 많이 내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 삼성전자가 내놓은 갤럭시 S7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전 제품들에 비해 혁신적 요소는 거의 없다. 제조와 생산 능력으로만 치자면, 애플의 하청 공장 역할을 해온 중국 기업들이 우리를 거의 따라잡았다. 문제는 제품을 재미있고 멋지게 만드는 혁신 능력에서 우리가 뒤쳐진다는 것이다.
현재와 같은 글로벌 경제와 금융시장 상황에서 세계 각국의 잇단 마이너스 금리정책은 예상치 않은 부작용을 불러올 수도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어떤 의미에서 이미 시작된 세계 각국의 환율전쟁을 극적으로 심화시키는 것이다. 모든 나라들이 자국 통화가치를 떨어뜨리려고 하면 무역분쟁의 악순환이 거듭될 수 있다. 이는 1930년대 대공황 당시 세계 각국이 국제 공조에 실패하면서 이미 경험한 바 있다.
진짬뽕의 가격은 1천5백원. 일반적인 라면의 두 배를 훌쩍 뛰어넘는 가격임은 물론 신라면 블랙 출시가보다도 비싸다. 그런데도 이번에는 가격 논란이 거의 없다. 왜 그럴까? 두 신제품을 바라보는 소비자의 프레임(frame·사고의 틀)이 다른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과거 기름 값 하락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경제에 축복이었다. 주요 기업들의 에너지 비용과 생산 원가 감소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오일쇼크로 인한 1970년대의 경기 침체와 3저(低) 중 하나인 저유가로 인한 1980년대 후반의 호황을 경험한 우리 경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번에는 뭔가 다르다.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저유가가 세계를 짓누르는 디플레이션을 악화시킬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연초에만 세계 증시가 20% 가량 무너져 내린 것도 저유가 탓으로 본다. 왜 이번 저유가 흐름에 대해서는 누구도 반기지 않는 것일까?
불황기 큰 사치를 부채질하는 것은 두 가지 요인이다. 하나는 최근 소비에서 가장 중요한 준거가 되는 사회관계망(SNS)이다. 이 곳은 끊임없이 자신의 충동적 과소비를 일상으로 포장해 자랑하는 공간이다. 소비자들은 다른 이의 '염장질'에 자극받아 자신도 충동적 과소비를 하려는 욕구를 느낀다.
명예퇴직, 희망퇴직, 혹은 조기퇴직. 이름이야 무엇이든, 정년 이전에 근로자를 내쫓으려는 기업들의 시도가 거세지고 있다. 대상 근로자와 해당 산업 모두 전방위적이다. 과거 명예퇴직은 주로 정년을 5~10년가량 앞둔 이들을 대상으로 았다. 최근에는 사무직 근로자 전체가 표적이다. 현재 명예퇴직은 조선과 중공업, 해운 등 경영 상황이 극도로 악화된 분야에서만 행해지는 것도 아니다. 거의 모든 산업으로 번지고 있다. 가히 외환위기 이후 최대 규모라고 할 만하다.
건국 1백년도 채 안 된 사이 우리 기득권의 가치관과 행태는 천년 제국 로마의 후기를 닮아가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는 로마 공화정 당시 '개천에서 난 용' 격인 마리우스의 탄생을 기대할 수조차 없다. 그렇다고 근현대 영국 상류층에 필적할 노블리스 오블리제 개념은 더더욱 없다. 자신의 자녀들을 전쟁의 일선은 고사하고 군대에 보낼 마음조차 없다. 그런 상황에서 그저 민주주의의 퇴행이나 천민자본주의 단계의 시장 경제에 자족하며 마음 속으로 외칠 뿐이다. '이대로 영원히!'
왜 그는 천리 길도 마다하지 않고 직접 집과 학교를 지어 대지진 피해자들에게 건네는 걸까? TV 앞에 나와 자신과 회사의 이름으로 구호 성금을 약속하는 편이 훨씬 더 화려해 보이고 쉬울 텐데 말이다. "돈만 내는 것이 크게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나라와 지역사회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푸는 데 도움이 돼야 합니다." 돌랄갓 임시 거처 증정식에서 만난 초드리 회장의 말이다.
자신을 기업가 겸 시민운동가라고 소개한 그는 더욱 직설적이었다. "그들이 더 많이 버는 것이 제게도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소득이 늘면 제 회사나 제가 투자한 회사가 만드는 제품을 하나라도 더 소비하게 됩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여력조차 없습니다. 최상위 1%의 소득이 더 는다고 이미 모든 것을 누리고 있는 그들이 더 쓰지는 않습니다." 그는 2013년부터 불평등한 사회 구조에서 생존의 위기에 내몰린 중산층과 서민이 체제 전복적인 움직임에 나서도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라고 경고하기 시작했다.
좋은 교육의 기회조차 상위 계층이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 더욱이 상위 계층이 아닌 이상 좋은 교육조차 예전처럼 계층 이동의 확실한 수단은 아니라는 증거가 분명해지고 있다. 부모 세대인 산업화 세대가 쌓아놓은 계층의 벽이 계급이라는 성(城)처럼 확고해져서, 개인으로서는 이를 넘어서거나 부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당장의 고통보다 더욱 견딜 수 없는 것은, 그것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다는 좌절감이다.
17세 이하 대표팀이 처음부터 이런 기대를 품게 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의 이전 경기는 오히려 우려를 낳는 수준이었다. 물론 세계적 강팀과의 경기에서 이전 세대와 달리 주눅이 들지 않는 것은 보기 좋았다. 하지만 각자가 자기를 드러내는 데만 관심을 쏟다 보니 하나의 팀으로 성장할까 미심쩍었다.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이 세대에 대한 일반적인 선입견이 기우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요즘 자영업자들 사이에는 이런 자조 어린 푸념이 터져 나온다. '장사가 잘 돼도 고민, 잘 안 돼도 고민이다. 잘 안 되면 어떻게 임대료를 낼까가 고민이지만, 잘 되면 쫓겨나지 않을까 전전긍긍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