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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다독여줄 수 있는 단어를 모았다" : 가정폭력 피해 생존자들이 앨범 발매 결심한 까닭

“내가 얻은 건 ‘용기’였고, 현재 그 용기로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진행한 문화예술 프로젝트 ‘마음대로, 점프!’ 참여자들이 만든 <우리, 이젠></div> 앨범 표지.
한국여성의전화가 진행한 문화예술 프로젝트 ‘마음대로, 점프!’ 참여자들이 만든 <우리, 이젠> 앨범 표지. ⓒ한겨레/ 한국여성의전화 제공

 

‘걱정과 두려움’, ‘기대와 희망’, ‘도전과 용기’ 오랜 시간 마음속에 꾹꾹 눌러 담은 단어들이 힘겹게 얼굴을 내밀었다. 단어는 모여 문장이 됐고, 멜로디가 붙자 노래가 됐다. 각기 다른 가사와 멜로디 속엔 가정폭력 피해 생존자들이 지나온 시간이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이들이 손수 만들고 부른 5곡이 담긴 앨범이 그렇게 꽃을 피웠다. 25일 발매를 앞둔 앨범의 제목은 ‘우리, 이젠’. 긴 암흑의 터널을 빠져나온 생존자들은 이제 함께 미래를 바라본다.

“밀어내고 피하고만 싶던 경험을 떠올리면서 스스로를 다독여줄 수 있는 단어를 모아 곡을 만들었어요.” 지난 11일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실에서 이번 앨범에 자작곡을 각각 한곡씩 담은 임작가(활동명·33)와 김수연(가명·47)씨를 만났다.

<우리, 이젠> 앨범은 한국여성의전화가 지난해 4월부터 가정폭력 피해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문화·예술 치유 프로그램 ‘마음대로, 점프!’의 결과물이다. 10여명의 참가자는 춤과 노래를 통해 각자가 겪은 폭력의 기억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노래와 춤을 통해 마음속 감정을 발산했다. 앨범엔 참가자 4명이 각각 만든 자작곡 네곡과 참여자 모두가 함께 만든 합창곡 ‘우리, 이젠’이 담겼다.

<우리, 이젠></div> 앨범 제작에 참여한 임작가(활동명)가 지난 11일 낮 3시께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우리, 이젠> 앨범 제작에 참여한 임작가(활동명)가 지난 11일 낮 3시께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한겨레

 

이들이 써 내려간 노랫말과 멜로디엔 지금까지 타인에게 쉽게 내비치지 못했던 각자의 삶의 궤적이 녹아 있다. ‘천장 벽지 위에 구름을 그려/ 나의 지붕이 곧 하늘이야/ 내가 누운 곳이 나의 집이요’. 임작가가 만든 ‘파티룸 302’란 곡은 남편의 폭력을 피해 4년여간 전국 각지를 떠돌아다녀야 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만든 곡이다. 임작가는 “여러 도시를 떠돌며 숨어 지내 갑갑한 느낌이 들었지만 공포심 때문에 밖에 나가지 못했다. 폭력 이전에 밝았던 모습을 상상하며 가사를 썼다”고 설명했다.

‘무거운 눈꺼풀/ 내 안에 갇혀버린 심장/ 메마른 핏빛의 눈동자/ 얼어붙은 나의 영혼/ 그만 그만 일어나’. 여덟살 이후 아버지와 친오빠로부터 40년 가까이 폭력에 노출됐던 김씨는 자작곡 ‘오솔길’을 통해 스스로 외면하고 단절해버렸던 어린 시절의 모습을 그려냈다. 김씨는 “움푹 파이고 잘린 어린 시절을 현재와 연결하고 싶었는데 방법을 몰라 늘 포기해왔다. 이번엔 그 시절의 모습과 꿈을 담아냈다”고 말했다.

음반 제작은 서로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과정이기도 했다. 김씨는 “살아오면서 사람들과 안전하고 따뜻하게 부대낀 기억이 없었다. 각자의 삶을 서로 다른 단어로 이야기하지만 쉽게 공감이 됐고 (동료들이) 큰 의지가 됐다”고 말했다. 임작가는 “내가 얻은 건 ‘용기’였고, 현재 그 용기로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만든 노래가 사회에서 고립된 또 다른 피해자들에게 가닿길 기대한다. 김씨는 “가해자는 처벌받지 않고 피해자만 숨죽여 사는 현실 속에서 내 삶을 어떻게 조명할지 몰랐다. 앞으로는 노래를 통해 내 안의 울림을 만들고 내면의 힘으로 삶을 더 윤택하게 살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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