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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빈티지 카메라를 마음껏 만져볼 수 있는 서울의 공간 (사진, 인터뷰)

FINDS|사진을 발견하고 만지고 치유받는 곳

  • 박수진
  • 입력 2020.11.01 10:02
  • 수정 2020.11.09 15:55

박디터의 FINDS ⑥|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는 이곳저곳을 소개합니다.

엘리카메라 1호점
엘리카메라 1호점 ⓒINSTAGRAM/allycameras

서울 연남동 주택가에는 독특한 카메라 가게가 있다. 정확히는 가게가 아니라 박물관에 가깝다. 이곳에서는 주인의 개인 소장품인 카메라들을 보여주고, 직접 들어 무게감을 느껴보고 셔터도 눌러보게 해준다. 2016년 서울 연남동에 문을 연 ‘카메라 쇼룸’, 엘리카메라다.

지금은 단종됐거나, 길게는 100년이 넘게 오래된 빈티지 카메라들이 이곳에 모여있다. 영국과 독일의 카메라가 진열대의 90% 정도를 차지한다. 롤라이, 라이카 같은 유명 브랜드도 있지만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 제품이 더 많다.

박물관에 가까운 공간이지만, 입장료는 없다. 누구든 들어오면 자유롭게 전시된 카메라를 집어들어 만져볼 수 있다. 운영 수익은 이 카메라들을 만져보고 싶어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교육과 장비 대여를 하는 유료 체험 클래스에서 나온다.

이곳의 주인인 강혜원 대표는 유럽 카메라 수집가다. 쇼룸을 가득 채운 카메라들을 10년 넘게 모아왔다. 처음 문을 열었을 땐 ‘혼자 운영하기 딱 좋았을’ 정도였던 작은 공간은 4년 동안 카메라가 채워지고 입소문을 타고 온 손님들이 늘면서 비좁아졌다. 쇼룸인 1호점에 이어 판매점인 2호점, 그리고 곧 오픈을 앞둔 도서관인 3호점은 모두 연남동과 이웃 연희동에 있다. 주 목적은 다르지만 모두 카메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라고 강혜원 대표는 설명한다. 지난 19일, 쇼룸을 찾아 “단지 박물관이나 가게가 아닌 문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 카메라 수집가로 지금까지 모아온 소장품으로 전시관을 만들었다는 게 인상적이에요. 많은 사람의 꿈이기도 한데요. 이곳은 어떤 곳이고, 어떻게 열게 되었나요?

= 1호점인 엘리카메라 쇼룸은 다양한 필름 카메라들을 만져보고, 카메라에 얽힌 스토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이에요. 여기 있는 카메라 중 일부 기종으로 직접 사진을 찍어보는 체험 클래스도 들을 수 있고요. 2호점은 ‘동네 카메라 가게’, 3호점은 필름사진 책들을 볼 수 있는 도서관이에요.

영국 엔사인ENSIGN 사의 풀뷰 카메라. 기본 모델은 가장 오른쪽의 검은색이며 왼편의 초록색과 빨간색은 한정판으로 출시됐다.
영국 엔사인ENSIGN 사의 풀뷰 카메라. 기본 모델은 가장 오른쪽의 검은색이며 왼편의 초록색과 빨간색은 한정판으로 출시됐다. ⓒHUFFPOST KOREA/SUJEAN PARK
엘리카메라의 첫 번째 카메라인 풀뷰는 이곳 굿즈로도 재탄생했다.
엘리카메라의 첫 번째 카메라인 풀뷰는 이곳 굿즈로도 재탄생했다. ⓒINSTAGRAM/allycameras

카메라 수집은 대학교 때 시작했어요. 디자인 전공이라 여러 사진을 찾아보다가 특이하고 예쁜 카메라를 봤어요. 처음 보는 카메라였고, 직구도 쉽지 않았지만 어떻게 찾아서 그걸 샀어요. 1930년대에 출시한 영국 엔사인 사의 카메라예요. 제가 산 건 1940년대 모델이고요. 그 카메라에 대한 정보를 찾다보니 ‘이 시절에 어떻게 이런 걸 만들 수 있었을까’ 생각이 들면서 그 회사에서 만든 다른 카메라들에도 관심이 생기고, 점점 더 공부를 하게 되더라고요. 사진 결과물보다는 카메라의 디자인이나 역사를 알아보다가 옛날 필름카메라에 관심을 갖게 된 케이스예요.

본격적으로 영국과 독일의 카메라들을 모으기 시작한 건 영국에 유학을 가면서였어요. 그곳에는 카메라 가게들이 정말 많거든요. 졸업할 때쯤에는 컬렉션이 몇 백개로 늘었죠. 그때 한국에서도 영국에서처럼 옛날 카메라들을 쉽게 만져보고 설명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직구하기도 복잡하고, 구매하더라도 실제로 보지도 못하고 사게 되니까요. 그런 가게가 없으니까 내가 직접 열어야겠다고 생각했죠. 2016년에 문화체육관광부의 관광벤처로 선정돼서 지원금을 받아서 이 공간을 열 수 있었어요.

 

- 쇼룸에는 어떤 카메라들이 있나요? 

= 유명한 카메라보다는 한번도 들어보지 못 했을 법한 카메라, 아니면 평소에 자주 보기 힘든 브랜드의 카메라들이 많아요. 그래서 일본 카메라는 거의 없고, 90%가 독일이나 영국 카메라예요. 일본 카메라는 현대에 대량생산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라 편리성이나 기술력은 좋지만 또 그래서 요즘 나오는 카메라들과 크게 차이가 없거든요. 

ⓒHUFFPOST KOREA/SUJEAN PARK
35mm 필름을 사용하는 아그파 이안리플렉스 플렉실렛
35mm 필름을 사용하는 아그파 이안리플렉스 플렉실렛 ⓒ엘리카메라

제가 좋아하는 카메라 중 하나는, 1960년대 초반에 1년 정도만 출시됐다가 사라진 모델이에요. 독일 아그파 사의 제품인데, 그 시절에 수많은 회사에서 카메라를 만들다보니 마케팅에서 실패하고 주목을 받지 못해 사라졌다고 해요. 하지만 기술이 부족한 건 아니고 오히려 진보한 카메라예요. 렌즈가 두 개인 카메라는 보통 중형 필름을 쓰는데, 이건 35mm 일반 필름을 쓰거든요. 중형 필름은 가격도 비싸고 스캔하기도 비싼데 일반 필름으로 쓸 수 있다는 건 큰 장점이죠.

저의 첫 카메라인 엔사인 풀뷰는 뷰파인더를 아래로 내려서 보는데, 그때 특유의 느낌이 있어서 좋아요. 이건 더 이상 생산되지는 않아요. 유명하지 않아서 관심은 거의 못 받지만, 예쁘고 특이한 카메라도 있어요. 126mm 필름을 쓰는 카메라로 필름이 단종돼서 못 쓰고 있는데요. 여기에 다시 생명력을 불어넣어주고 싶어서, 일반 필름을 넣어서 쓸 수 있게 개조하려고 시도 중이에요.

필름이 단종돼서 사진을 찍을 수 없는 카메라, 1960년대에 나왔다가 1년 만에 사라진 카메라에 대한 이야기를 여기 오지 않으면 들을 수 없잖아요. 계속 그런 공간이고 싶어요.

1900년대 중반에 출시된 영화 촬영용 8mm 카메라들. 국내에서는 더이상 현상할 수 없다. 셔터를 눌렀을 때 돌아가는 필름 소리가 매력적이다.
1900년대 중반에 출시된 영화 촬영용 8mm 카메라들. 국내에서는 더이상 현상할 수 없다. 셔터를 눌렀을 때 돌아가는 필름 소리가 매력적이다. ⓒHUFFPOST KOREA/SUJEAN PARK

- 쇼룸에는 어떤 분들이 오시나요?

= 여러 카메라를 만져보고 싶어하는 분들이요. 박물관에선 유리장에 들어가있고, 카메라샵에서도 마음껏 만져볼 수 없잖아요. 만져보면 하나 사서 나와야 할 것 같고. 다만 요즘은 필름 카메라를 사기 전에 상담을 받거나, 아니면 미리 써보려고 오는 분들이 체험 클래스를 듣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 체험 클래스는 어떤 건가요? 

= 유럽 카메라 16종 중에서 하나를 골라서 한 시간 동안 일대일 수업을 받고, 나가서 사진을 찍어오면 저희가 현상스캔을 해드리는 원데이 클래스예요. 필름 종류도 여러가지가 있고, 카메라의 난이도도 다양해요. 부모님한테서 물려받았거나, 아니면 본인이 사서 썼지만 사용법을 숙지하지 못 하고 방치했던 카메라를 활용하고 싶은 분들이 듣는 ‘장농카메라’ 클래스도 있어요. 

2호점에서 판매한 카메라들. 펜타곤 프락티카, 바비 토이카메라, 미놀타 방수카메라, 아그파, 이하게 엑사, 브라운·라이카·롤라이 자동카메라 등.
2호점에서 판매한 카메라들. 펜타곤 프락티카, 바비 토이카메라, 미놀타 방수카메라, 아그파, 이하게 엑사, 브라운·라이카·롤라이 자동카메라 등. ⓒINSTAGRAM/allycameras_yeonhui

- 1호점은 보여주기만 하고, 판매는 2호점에서 하시더라고요. 

= 쇼룸은 온전히 카메라를 체험하는 문화적인 공간이 되길 바랐어요. “만지면 사야만 할 것 같은” 가게의 느낌을 주지 않았으면 했어요. 카메라는 웹사이트에서 간간이 판매하기도 했고, 그런 만큼 더더욱 쇼룸에서는 절대 카메라를 팔지 않겠다는 게 제 철칙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해에 영국에 출장을 갔다가, 제가 유학 시절에 들르던 카메라 가게들 절반이 사라진 걸 보고 슬펐던 적이 있어요. 오늘은 어떤 카메라를 발견하게 될까 기대감에 찾던 장소들이 사라진 거예요. 그 경험을 하고나니 저도 손님들에게 ‘득템’하고, 보물찾기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지 못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영국에서 다니던, 신기한 카메라가 모인 동네 앤티크 가게 같은 걸 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연 게 2호점이에요. 많이 파는 게 목적은 아니에요. 빈티지 카메라가 많이 팔리는 게 수집가 입장에서는 좋은 일만은 아니거든요.

 

- 카메라가 많이 팔리면 좋지 않을 수도 있다니, 이해가 잘 안 되는데요?

= 매해 유행하는 기종이 생기고, 그러면 그 기종의 가격이 지나치게 오르는 현상이 종종 생겨요. 연예인이 들었던 카메라라든가, 아니면 또 다른 이유로 인기를 얻은 카메라들의 가격이 뛰어요. 한 명이 10만원이던 카메라 가격을 40만원으로 크게 올려서 팔려면 그때부터는 시세가 그렇게 형성되니까요. 저희는 그런 기종도 4년 전과 비슷한 가격으로 파는데, 사라져가는 걸 팔다 보니 그렇게 가격이 올라가는 걸 보면 카메라를 팔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들죠.

사진책 도서관 3호점 엘리브러리
사진책 도서관 3호점 엘리브러리 ⓒINSTAGRAM/allycameras
엘리카메라 강혜원 대표
엘리카메라 강혜원 대표 ⓒHUFFPOST KOREA/SUJEAN PARK

- 곧 사진책 도서관인 3호점을 여신다면서요. 

= 유명한 작가들보다는 아마추어 작가들이 옛날에 찍었던 사진집 같은, 잘 찾아보기 힘든 책들 500권 정도를 준비했어요. 1900년대 초중반의 영국의 가정집 컨셉으로 인테리어도 꾸몄고요. 입장료로 운영되고요. 3시간에 음료 한 잔을 포함해 1만5천원이에요. 텀블벅으로 얼리버드 티켓을 판매하면서 희망도서도 신청 받았어요. 사실은 원래 2호점이 될 계획이었을 만큼 오래전부터 제가 애정을 쏟고 준비하는 곳이에요. 11월 중에 오픈합니다.

 

- 1호점은 오래된 카메라를 실제로 보고 만져도 볼 수 있는 살롱 같은 곳, 2호점은 득템하기 전 두근거리는 느낌을 주는곳, 다음이 도서관이네요. 엘리카메라가 문을 연 지 5년째인데, 목표대로 문화적인 공간으로 잘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 젊은 층에 필름 카메라 문화를 대중적으로 알린 데는 많은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처음 시작한 4년 전엔 이런 곳이 거의 없었지만, 지금은 출사 여행이나 일회용 카메라 리사이클클래스 같은 카메라 관련 활동이 늘어난 것 같아요.

하지만 무엇보다, 저희 공간을 찾았다가 영감을 받았다는 분들의 이야기가 들려올 때 ‘아직까지는 잘해왔구나’ 느껴요. 우울증이 심했다는 친구들이 카메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다 가면서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종종 해요. 그 중 한 명에게 어떻게 좋아졌냐고 물어본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전엔 밖에 나와서 무언가를 하겠다는 의욕이나 의지가 없었는데 여기서 카메라를 받아서 필름을 넣고 나면 36장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더라고요. 카메라를 들고 있으면 용기가 생긴대요. 저는 그 이야기가 굉장히 감동적이었어요. 

‘이런 게 아날로그의 힘인 건가’ 싶어요. 손님들이 이런 자기 이야기들을 방명록에 남기거나 편지로 써서 주세요. 그림을 그리거나, 엘리카메라를 손뜨개한 자기만의 굿즈를 만들어서 주신 분도 있고요. 저희는 방문객들로부터 선물을 정말 많이 받아요. 이런 게 다른 박물관이나 카메라 가게와는 다른 점이 아닐까 싶어요.

'2017년 1월 11일 올해 90세 왕용균 할아버지께서 직접 엘리카메라에 오셔서 기증하신 미놀타 카메라 2점입니다. 생이 얼마 남지 않으셨다며, 갖고 계신 것들을 정리 중이라고 하셨습니다. 엘리카메라를 찾느라 1시간도 넘게 연남동을 헤매셨다며, 작은 지도를 손에 꼭 쥐고 오셨던 분. 기억하겠습니다' - 진열대 사진 설명 중
"2017년 1월 11일 올해 90세 왕용균 할아버지께서 직접 엘리카메라에 오셔서 기증하신 미놀타 카메라 2점입니다. 생이 얼마 남지 않으셨다며, 갖고 계신 것들을 정리 중이라고 하셨습니다. 엘리카메라를 찾느라 1시간도 넘게 연남동을 헤매셨다며, 작은 지도를 손에 꼭 쥐고 오셨던 분. 기억하겠습니다" - 진열대 사진 설명 중 ⓒHUFFPOST KOREA/SUJEAN PARK

- 카메라에 대한 이야기들이 쌓이는 곳이네요. 자기가 소장하던 카메라를 기증하는 분들도 있다면서요?

= 네, 그냥 중고나라에 팔아도 될 것 같은데, 그것보다 여기에서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게 더 좋겠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에요. 저희 쇼룸 기사를 보고 소장하던 일본 미놀타 카메라 두 개를 기증하러 오신 90대 할아버지가 계셨어요. 카메라만 주고 금방 나가시는 통에 따라가서 성함을 묻고 연락처를 받았죠. 저희는 유럽 카메라를 전시하기는 하지만, 주신 분들의 이야기가 있어서 기증 카메라는 함께 전시하고 있어요. 여기서 드라마나 화보 촬영을 많이 해서 그거 보고 오는 분들도 계세요. 최근에는 ‘청춘기록’을 찍었고요.

 

-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 저는 같은 자리에 오래 있고 싶어요. 연남동 1호점만은 옮기지 않고 오래 한 자리에서 학생이 어른이 되어 아이와 함께 오는 그런 곳이 되고 싶어요. 제가 처음 꿈 꾼 건 3호점 도서관을 열면서 다 이뤘어요. 다만 카메라를 들고 용기가 생기더라는 친구처럼, 필름 카메라의 치유적인 힘을 활용하는 활동을 찾아보고 싶어요.

 

*대화는 명료한 전달을 위해 축약, 정리되었습니다.

 

박수진 에디터 sujean.park@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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