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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정치의 소임과 덕목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일자리 창출을 넘어 기본소득제를 둘러싼 소득 배분 문제가 제기되어 관심을 끌었다. 경제성장과 GDP를 관리하면서 대다수 사람들의 몰락과 공동체의 파괴로 인한 위기를 극복하고 국가사회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 한국의 실정에 맞는 기본소득제의 도입이 필요하다.

  • 국민의제
  • 입력 2016.05.16 12:41
  • 수정 2017.05.17 14:12
ⓒshutterstock

글 | 조 민(평화재단 평화교육원 원장)

천재가 세상을 구하는가?

"한 명의 천재가 10만, 20만 명을 먹여 살린다!" 이는 2003년 6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제기한 '천재경영론'의 요지다. 그는 "반도체 라인 한 개를 만들려면 30억 달러가 드는데, 누군가 회로선 반 만 줄이면 생산성이 높아져 30억 달러에 버금가는 효과를 누리게 된다. 천재 한 명이 수십 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얘기가 바로 이런 것이다"고 부연 설명했다(<한국경제>, 2012.11.20).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도 이런 맥락에 닿아 있다. 그런데 과연 천재 한 명이 수십 만 명을 먹여 살릴까?

기업이 추구하는 신제품은 기본적으로 과학기술의 발전에 뿌리를 둔 창조적 소수의 아이디어에서 나온다. 철저히 경쟁 원리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적 시장경제는 오래 전부터 몇몇 사람의 천재성이나 창의성이 기업의 성공 여부를 가늠하는 핵심적 요인이 되어 왔다.

우리 시대에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와 같은 창조적 소수는 호모 사피엔스의 최고 유형으로 우상화되고 있다. 그러나 천재들의 성공 신화에는 매우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바로 노동의 소멸이다! 유비쿼터스 아이폰이 2007년에 출시된 이래로 2015년 말 스마트폰 사용자는 20억 명에 달한다. 엄청난 시장 규모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스마트폰이 4만 5천 명의 애플사 직원과 삼성전자의 약 10만의 직원 수(2015년 6월 기준)를 합쳐 최대 15만 개 일자리를 창출했다고 볼 때, 스마트폰 개발로 사라진 일자리는 얼마나 될까?

전 세계의 많은 국가에서 유선전화 관련 일자리는 대부분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다. 카메라와 필름 회사 - 미국 뉴욕 주의 로체스터는 한 때 코닥 필름으로 번성했는데 이제는 흘러간 옛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 녹음기, 비디오, 음반, 지도제작, GPS, 신문 산업, 사전 제작 등의 기업과 연관 산업 부문에서의 일자리는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분명한 통계로 밝혀진 상태는 아니지만, 15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었다면 사라진 일자리는 아마 그것의 수백 배는 충분히 넘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세상에 한 명의 천재가 수십 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말은 가당찮다. 물론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가 사라진 일자리를 책임져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그렇다고 일자리 보전을 위해 새로운 아이디어와 소수의 창의적 활동을 억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노동의 소멸과 잉여인간화

혁명은 급진적이고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과학기술과 디지털화가 엄청난 속도와 규모로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는 중이다. 인류사적 혁명은 신기술과 새로운 세계관이 경제체제와 사회구조의 기반을 흔들어놓을 때 발생했다. 물리학, 디지털, 생물학 분야의 융합을 통한 과학기술혁명(또는 '제4차 산업혁명')으로 우리는 파괴적 변화와 혁신의 시대에 살고 있다. 과학기술혁명의 혁신과 파괴로 세상은 성공과 실패로 극명하게 대별되는 두 부류의 사람들로 나뉜다. 즉, 성공한 극소수의 사람들과 실패한 대부분의 사람들로. 혁신을 이끄는 이노베이터(innovator), 투자자, 주주 등 지적․물적 자본을 제공하는 사람들이 소수의 수혜자가 된다. 반면, 자동화, 로봇,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등이 인간 노동을 대체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잉여인간'으로 전락할 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이 지금 우리 눈앞에서 아주 빠른 속도로 전개되고 있다.

한국 사회의 공동체는 이미 깨졌고, 민주주의는커녕 나날이 커가는 불평등과 불공정으로 좌절과 사회적 위기감이 증폭되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은 보통 사람들이 그야말로 고통스러운 삶을 자살로 마감한다는 뜻이고, 세계 최저의 출산율은 젊은 세대가 우리 사회의 미래에 아무런 희망을 찾을 수 없다고 여기고 있는 현실을 말해준다.

정치는 희망을 제시해야

혁신의 혜택이 고루 퍼지게 하고, 파괴의 고통을 줄여 나가야 한다. 바로 여기에 정치의 소임이 있다. 새로운 시대에 기회와 도전의 기틀을 마련하는 한편, 불평등을 해소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삶의 토대를 제공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자는 세 측면 즉, 교육 분야의 근본적인 혁신, 전 국민의 기초생활을 보장하는 기본소득제 도입, 그리고 자치와 자율을 구현하는 분권형 국가체제 구축을 강조하고 싶다.

하나.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환부는 교육 문제라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좋은 대학을 목표로 모두가 영유아 때부터 사육되어왔지만, 이제는 좋은 대학을 나와도 특별히 보장된 미래는 없다. 더욱이 산업화 시대의 국민국가의 가치와 제도에 부응해온 대학을 비롯한 교육제도는 더 이상 순기능을 하기 어렵다. 지금의 교육 제도와 시스템으로는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낼 수 있는 창의력을 갖춘 인재와 새로운 일자리에 맞는 능력을 지닌 인재를 키워낼 수 없다. 과학기술혁명 시대에 부응할 수 있는 새로운 교육제도와 시스템을 창출해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대학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혁신을 모색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교육체제를 주도해온 국가(정부)는 한 발 뒤로 물러서야 하며, 이를 위해 현행의 교육부를 폐지하고 큰 틀에서 새로운 교육제도와 시스템의 기본 방향을 제시하는 수준으로 축소 조정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기에다 교육의 자치 분권화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교육부의 갑질이 대학을 줄세우고, 창의교육의 미래를 황폐화시키고 있다. 교육부 폐지는 교육 개혁의 첫걸음이다.

둘. 기본소득(basic income)은 자산과 근로에 대한 조사와 증명없이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지급되는 소득이다. 앞으로 생산 부문에서 노동의 역할은 크게 축소되어 구조적이고 장기적 실직과 그에 따른 존재감 상실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분노와 좌절의 늪에 빠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국민들 가운데 헌법이 규정한 삶의 존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마침 스위스에서는 빈곤과 복지 의존도를 없애는 방안으로 '보편적 기본소득' 도입 제안에 따라 내달 초에 실시될 국민투표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스위스가 최초의 기본소득 제도 도입국이 될지 주목된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일자리 창출을 넘어 기본소득제를 둘러싼 소득 배분 문제가 제기되어 관심을 끌었다. 경제성장과 GDP를 관리하면서 대다수 사람들의 몰락과 공동체의 파괴로 인한 위기를 극복하고 국가사회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 한국의 실정에 맞는 기본소득제의 도입이 필요하다. 소수의 특권․특혜층을 위한 특별석 마련은 필요없다. 정치는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이어야 한다. 발상의 전환과 함께 활발한 토론이 기대된다.

셋. 중앙정부 중심의 근대 국민국가는 안보와 산업화를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국민동원 체제에 부응하는 국가체제였다. 국민적 동원보다는 개개인의 창의성과 사회적 다양성이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시대에 이미 공룡화된 거대 국가는 변화에 쉽게 부응하기 힘들다. 자율적이고 분산된 작은 정부가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창의적인 혁신을 주도할 수 있다. '무늬만 지방자치' 형태를 타파하고 분권과 자치가 실질적으로 이루어지는 지방자치제가 필요하다.

서울-중앙정부 집중보다 자율과 통합의 가치를 구현하는 연방주의 원리 위에서 지방정부 중심 체제로 국가구조의 개혁이 요청된다. 다양한 지방정부 모두가 세계 속의 주체가 될 때 기회와 혁신의 문이 활짝 열리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통일코리아의 국가체제로 분권․자치의 토대 위에서 연방제 프로젝트가 구상될 필요가 있다.

이제 한국은 엄청난 속도로 변화하는 과학기술혁명의 시대에 혁신을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매우 '유능하고 민첩한' 국가로 바꿔져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문명사적인 변화의 방향을 파악하고 사회를 재구성하는 통찰력과 역량이 우리 시대 정치의 덕목이 된다.

글 | 조 민

평화재단 평화교육원 원장을 맡고 있으며, 선문대학 초빙교수로 대학원 강의를 하고 있다. 통일연구원에서 통일정책연구센터 소장과 부원장을 역임하면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문제에 대해 오래 동안 연구해왔다. 한반도 통일은 우리 사회의 내부 동력이 관건적이라는 인식 아래 새로운 접근법을 모색하고 있다. 그와 함께 문명사적 전환 속에서 기회를 포착하고 위기를 극복하는 정치의 역할을 탐색하고 있다.

<알 림> 국민의제 제 7차 공개 민회

국민의제 7차 민회는 곽노현 (사)징검다리교육공동체 이사장의 경제민주화에 대한 발표와 이어지는 대담토론으로 진행됩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 일시 : 2016.05.25(수) 19:00 - 21:00

◈ 장소 :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5길 29 태화빌딩 지하1층 회의실(종각역 3번 출구)

◈ 대상 : 누구나

◈ 참가비 :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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