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기념일이 참 많은 것 같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부부의 날, 성년의 날 같은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공유하는 날도 있고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같이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하는 기념일들도 있다.
의미도 기념하는 모양도 다르긴 하지만 적어도 이런 날들의 공통점은 기념일의 명칭이 주인공이 되고 그 대상을 기쁘게 하기 위한 날이라는 것일 것이다.
그런데 단 하루 4월 20일 장애인의 날만큼은 좀 이야기가 다른 것 같다.
보통의 기념일 같다면 난 분명히 주인공이 되어야 할 텐데 내 생애 한 번도 그 날이 기다려지거나 기뻤던 적은 없다.
그리고 수많은 주인공들과 함께 하는 우리 학교에서도 그날을 서로 축하한다거나 인사의 소재로 사용하지도 않는다.
중고등학교를 특수학교에서 다닌 나의 기억 속 그날은 영문도 의미도 모른 채 잠실운동장으로 전교생이 동원되었던 것으로 채워져 있다.
사회적으로 저명하다고 하는 몇몇 어른들의 지루한 기념사들과 관객의 눈높이와는 전혀 맞지 않는 특이한 축하공연들이 끝나면 싸구려 기념품 몇 개를 쥐어주고 반나절의 일정이 겨우 마무리 되었던 것 같다.
주변의 정돈되지 않는 웅성거림들로 짐작해 볼 때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어느 복지관이나 장애인 단체들에서 나처럼 이유도 모르고 소집된 것이 거의 확실했다.
기념표창이나 상장 따위를 받는 맨 앞줄의 100여명 남짓의 사람들을 제외하면 그날을 스스로가 주인공인 날이라고 믿는 사람을 찾는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이다.
방송에 나오는 유명한 사람들의 기부 소식이나 시설방문기도 시청자의 입장에서 볼 때 누가 주인공으로 느껴질 수 있을까는 특별한 논란의 여지가 없는 사실인 것 같다.
하루 만이라도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마음을 가져보자는 그럴듯한 이유를 들이대면서 하루 동안 뭔가 엄청난 사회적 책무를 다했다는 듯이 거만한 웃음을 띄고 인터뷰들을 한다.
잘 모르겠다면 이렇게 묻고 싶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가장 기억하기 싫은 날이 언제일까?
가장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다시 한 번 분리되어지는 그날은 누구를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란 말인가?
난 확신하건대 세상에서 가장 큰 장애는 신체적 장애가 아니라 사회적이고 환경적인 장애라고 생각한다.
혹여 그런 면들을 조금이라도 고치고 개선하기 위함이 이 날의 제정 목적이라면 차라리 이름을 '사회적 불평등의 날' 쯤으로 정하면 어떨까?
대표적인 불평등 사례를 소개하고 그 주인공들을 대대적으로 처벌한다면 사회적 약자들이 스스로를 일부러 도드라지게 드러내지 않더라도 조금은 기뻐하는 날이 되지 않을까?
푼돈 몇 푼 내어 놓고 뜻 깊은 일을 했다는 듯 연설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소외 받고 차별 받는 것이 가장 고통스러운 사람들에게 그 중 잘 나가는 몇몇을 띄워주기 위해서 그 안에서조차 다시 구별되어지는 잔인한 고통은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장애인의 날' 난 그날을 달력에서 지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