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남편과 나는 이혼 후 진정한 사랑을 찾았다, 함께

  • J T
  • 입력 2016.03.30 05:53
  • 수정 2017.03.30 14:12

11년 전, 나는 7년 동안 내 친구이자 연인이었던 젊은 남자와 결혼식을 올렸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한, 대학, 취업, 결혼, 출산이라는 관례가 내게는 성공의 비결이라고 주입되었다.

지금 결혼식 사진을 보면 자기 자신을 발견하지조차 못한 순진하고 희망찬 두 어린아이가 보인다. 자기가 누구인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법적으로 서로를 묶는 건 의미가 없다는 것도 모르는 아이들이었다.

그와 나는 처음으로 같이 한 것들이 정말 많았다. 첫 아파트, 첫 개, 첫 집, 첫 장거리 자동차 여행, 첫 아이, 그리고 2년도 지나지 않아 둘째 아이도 낳았다. 우린 우리가 다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해야 하는 모든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은 그게 우리의 실패의 원인이 되었다.

나는 착한 여자가 되라고 배우며 자랐다. 호감을 사고, 규칙에 따르고, 흰 말뚝 울타리라는 꿈 뒤에서 안전하게 미소를 지으라고 배웠다. 나는 언제나 못된 장난을 좋아했다. 내가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아는 모든 것들을 좋아했다.

내겐 어머니가 알았다면 기절했을 어두운 생각, 모험의 꿈, 성적 판타지가 있었고, 내가 배운 성공의 비결과 어울리지 않는 생각들을 지녔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오랫동안 그 대부분을 가둬두었다. 나는 사랑을 얻으려면 착한 여자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둘째 아이가 태어난 뒤의 몇 달, 몇 년 동안 나는 흐트러졌다. 지금 그때를 돌아보면 그때부터 내 본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음을 깨닫게 된다. 잠 못 이루던 밤들, 배앓이를 하던 갓난아기가 다루기 힘든 유아가 되고, 다투고, 경제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친밀감이 사라지고, 몇 달 동안을 우울증의 관에 갇히고, 몇 년 동안 억지로 내 역할을 한 세월이었다. 그리고는 떠들썩하고 유해한 불륜이 터져, 모든 것이 허리케인에 휩쓸렸다. 우리는 더 이상 머리를 모랫속에 파묻고 지낼 수는 없게 되었다.

그 착한 여자는 사라졌다.

나는 큰 고통을 느꼈고, 내 좋은 의도들 때문에 내가 바닥을 치고 산산조각이 났다는 것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사과하고 또 사과하고, 후회한다는 이야기를 늘어놓고, 예전으로 돌아가고 현실에 항복할까? 이게 내 침대고, 나는 여기 영원히 누워있어야 한다는 차가운 현실에 내 자신을 숨길까?

안돼. 그럴 순 없었다.

나는 거친 심장을 타고 났다. 이제 그 심장이 나를 이끌게 할 때였다. 잔인할 정도로 솔직해진다는 건 두려운 일이었지만, 나는 감수했다. 내 남편은 그를 아끼는 파트너를 가질 자격이 있었다. 모기지가 30년 걸려 있는 교외의 좋은 집에 만족하고, 그의 무릎 위에 기어올라 그의 목을 부비고 싶어하는 사람. 그건 더 이상 내가 아니었다. 나는 자유, 도시의 불빛, 내가 이제까지 시간을 들여 제대로 알고 지내지 못했던 사람, 즉 나 자신과 친밀하게 보낼 시간이 필요했다.

내 전 남편은 나와 아들들에게 있어 바위와 같다. 힘든 때가 오면 우리의 본색이 드러나고, 우리 두 사람의 색이 섞이면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를 색칠한다. 지금도 그렇다. 우리는 아이들을 위한 최고의 부모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잊은 적이 없다. 그는 자신의 행복과 꿈의 한도가 내게는 가시 철조망과 같다는 걸 알았고, 나를 날아가게 해줄 정도로 나를 사랑했다.

나 자신을 발견하고, 내가 탐험해야 할 곳들을 탐험하고, 내 혈관에 불꽃을 흐르게 하고 삶에 대한 사랑에 다시 불을 지핀 진정한 내 자신이 되어야 했다. 장난, 모험, 미지의 것을 사랑하는 그 여자. 성난 악마들을 거느린, 하루 종일 잭슨 폴락처럼 다양한 감정을 던질 수 있는 여자. 그녀도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었다.

요즘은 우리는 언제나 교외에 있는 그의 집이나 시내의 내 아파트에서 아들들과 저녁 식사를 한다. 우리는 지금도 가족 소풍을 가고, 명절을 함께 보내고, 여름에는 첫 가족 장거리 자동차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우리는 둘 다 아들들에게 진화를 주고 있다고 느낀다.

사랑과 가족은 결혼 증명서나 다른 사람이 정한 가이드라인으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받아들이고 서로의 행복을 키우는 것이다.

사랑은 당신이 아끼는 사람이 진정한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을 보거나, 순수하고 즐거운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뒤로 젖히는 것을 보았을 때, 심장이 가슴 밖으로 튀어나와서 방안에서 춤을 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사랑은 삶이 힘들어질 때 서로를 지키는 것이다.

사랑은 당신의 발목을 잡거나, 당신이 다른 사람이 되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그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그들의 행복을 바란다는 것을 알게 해주고 싶다. 이혼과 손상은 늘 같이 가는 게 아니다. 나는 전 남편을 사랑한다. 그는 지금도 내 가장 좋은 친구 중 하나이며, 이보다 더 좋은 아이 아버지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큰 상처를 주었지만, 서로를 깊이 용서했다.

우리는 함께 결혼식장에 서 있었던 두 어린아이와는 아주 다른 사람들이 되었다. 지금도 우리의 심장은 사랑으로 뛴다. 상대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하든 진정으로 사랑한다. 부부 사이는 아니라 할지라도 말이다.

허핑턴포스트US의 How Divorcing My Husband Helped Us Find True Love -- Together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페이스북에서 허핑턴포스트 팔로우하기 |

트위터에서 허핑턴포스트 팔로우하기 |

허핑턴포스트에 문의하기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이혼 #결혼 #사랑 #부부 #라이프스타일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