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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 제로' 선거에선 누굴 뽑아도 똑같다

이 나라 정치가 퇴행하는 징조는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엘리트로 자처하는 이들은 아직도 자신의 리더십이 괜찮다고 착각한다. 이들이 하는 일이라곤 거대권력을 지향하며 패권에 집착하는 것뿐이다. 패권놀이는 곧 패싸움이다. 패싸움 하는 것을 보면 정당이 파당으로 바뀌어가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권력의 종말의 한 단면이긴 하다.

  • 김광웅
  • 입력 2016.03.30 13:00
  • 수정 2017.03.31 14:12
ⓒ연합뉴스

공천의 긴 터널을 뚫고 나와 햇볕을 잠시 쬐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 중 3백명이 플라톤의 동굴(Plato's Cave)이라 이름하는 국회에 들어가 벽에 비친 자신만 볼 뿐 바깥 햇볕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 줄 알지 못한 채 국민에게 약속을 한다. 이들의 약속은 머리도 가슴도 아니고 입에만 머물러 있다. 국민만 불쌍하다.

한계비용이 제로가 되는 사회가 이미 시작됐다. 한계비용이란 생산량을 한 단위 증가시키는데 필요한 생산비의 증가분을 말한다. 자유경쟁시장에서 혁신 기술이 한계비용을 제로 수준으로 떨어뜨려 경제가 풍요롭게 되었으나 역설적으로 기업의 이윤은 낮아지고 실업은 증가하고 투자와 소비는 위축되어 생산성의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다(Jeremy Rifkin). 각자가 자기 돈 조금씩 들이면 지금껏 교열을 포함한 편집, 인쇄, 판촉, 유통, 소매 등으로 이어지는 출판 과정을 뛰어 넘어 책이 독자에게로 직접 가게 된다. 대학 강의도 열려 세계 석학들이 강의하는 '대량 온라인 공개강좌'(Massive Open Online Courses)는 6백만명이 무료로 듣는다. 각자가 비용 없이 아니면 약간 들여 알아서 내 일을 해 내는 세상이다. 그냥 있어도 얻을 것이 너무 많다. 누가 뭘 더 어떻게 해주고 먹여주겠다는 세상이 아니다.

정치가 우리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이제 아무것도 없다. 이런 시대에서는 국회라는 입법과정이 구차스럽다. 국민이 직접 법을 만들어 제의하고 있고 온 입법을 직접 할 날도 멀지 않았다. 이는 대의고 뭐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비용만 많이 들고 세금만 축내는 대의제가 올바로 한다면 또 모르겠지만 낭비와 허세, 비방과 응징만 일삼는 이들이 용도가 폐기 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오염된 토지에 새 싹이 나오지 않듯이 권력욕으로 물든 대지에 새 인물이 등장할 수 있을까. 이번 20대 총선은 이 땅의 정치풍토가 방사능에 오염된 실태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고, 거기서 자라는 농작물은 먹을수록 국민은 건강을 해친다는 진리를 피부로 느끼게 하고 있다. 선거는 이제 매번 반복되는 슬픈 또 뽑기일 뿐이다.

이 나라 정치가 퇴행하는 징조는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엘리트로 자처하는 이들은 아직도 자신의 리더십이 괜찮다고 착각한다. 이들이 하는 일이라곤 거대권력을 지향하며 패권에 집착하는 것뿐이다. 패권놀이는 곧 패싸움이다. 패싸움 하는 것을 보면 정당이 파당으로 바뀌어가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권력의 종말의 한 단면이긴 하다.(Moises Naim)

승패란 승강기 오르내리듯 하는 것이다. 헌데 모두들 올라가려고만 하니 권력의 본질을 몰라도 한참 모른다. 올라가는 사람들은 반드시 내려오게 되어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우리는 목도한다. 그러기에 권력을 내 놓지 않으려고 온갖 안간힘을 다 쏟지만 소용이 없다. 국민이 훨씬 현명하기 때문이다.

권력은 에너지와 같다고 했다(Bertrand Russell). 권력은 달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차선 위반하고 마구 속력 내며 달리는 자동차를 누가 타겠는가. 이제 그만 탈 때가 되었다.

나라가 기운다. 국회의원 300명 아무리 잘 뽑아도 나라는 전과 달리 나아질 것이 하나도 없다. 패권놀음에 시스템이 망가졌는데 부품 몇 개 견실하다고 살아날 리 없다. 권력의 실세들이 뒤에서 조정하는 꼭두각시 수백 명 있어 봤자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내 세금 축내기일 뿐이다. 지능 로봇이 제 발로 척척 걸어가는 세상에 뒤에서 줄 당기며 인형극 노릇이나 하고 있는 권력의 실세들을 보면 역겹기만 하다.

이들이 착각하는 더 큰 문제는 성장, 소득, 분배, 복지, 경제민주주의 등 한참 떠들어 보았자, 국가운영을 경제원리만 따라 돌진하니 고지를 점령해 보았자 돌덩어리만 쌓인 폐허일 뿐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운영은 이윤 극대화 같은 기업논리가 아니라 그 넘어 다른 차원에 있다(Paul R. Krugman). 누가 뭘 더 해라, 말라 하기보다 그냥 내버려두어도 스스로 굴러가는 것이 세상 이치이다. 노벨 경제학 수상자의 말이다.

누굴 뽑아도 똑같다. 그럴싸한 정책을 아무리 제시하고 손님 끌어봤자 불량상품에 속기는 마찬가지다. 정책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제 삼척동자라도 안다(Yohai Benkler). 정책이라고 해봤자 우리 세금으로 자기네들 패권 더 쌓기 이상이 아니다.

계란(미시권력, 다윗)이 바위(거대권력, 골리앗)를 깨는 시대에 접어 들었다(Nicco Mele). 작은 시민의 힘이 거대권력을 능가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는 뜻이다. 시위 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시대 흐름 따라 시민이 총궐기해 거대권력을 압박해야 한다. 그래도 상품을 사야 한다면 그나마 옥석을 가릴 수 있어야겠다.

차선책은 하나밖에 없다. 이번 선거에서 꼭 찍어야 한다면 후보들 당을 보지 말고 뒤죽박죽으로 찍어 결과를 혼돈(chaos) 속에 빠뜨리면 된다. 그래야 새 활로가 생긴다. 흙탕물에서 연꽃 피듯 그렇게 새로 시작하는 것이 훨씬 날 듯하다. 카오스 속에도 질서는 있으니까 말이다.

좋은 기회는 왔다. 이번 선거에서 이 나라 정치패턴을 바꾸자. 알파고가 이긴 것은 기존의 기리(棋理)와 기보(棋譜) 와 다른 패턴으로 갔기 때문이다. 정당보다, 후보자보다 우리가 이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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