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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님의 '은밀한 재테크'

ⓒgettyimagesbank

프리랜서인 증권 트레이더 ㄱ씨는 지난해 수도권의 한 지방법원에서 근무하는 ㄴ부장판사의 집무실을 찾았다. 한 증권사 부장의 소개로 알게 된 ㄴ부장판사는 기다렸다는 듯 준비한 계약서를 ㄱ씨에게 내밀었다.

‘시스템 사용 및 공동투자 계약서’의 내용은 이랬다. ㄴ판사가 ㄱ씨에게 5억원이 들어 있는 증권계좌를 빌려주는 대신 ㄱ씨는 ㄴ판사에게 ‘원금+연 12%대 이자수익’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이자수익이 연 6천만원에 이르는 일종의 ‘고금리 사채’ 계약이었다.

트레이더는 ㄴ판사가 빌려준 계좌에 보증금으로 1억원을 입금해야 하지만 돈을 인출할 수 있는 권한은 판사한테만 있었다. 또 계좌 잔액이 원금(5억원) 밑으로 떨어지면 거래는 바로 중지됐다. ㄴ판사 입장에서는 손해 볼 게 거의 없는 완벽한 재테크였다. 이 거래는 의사, 변호사, 사업가 등 자산가들이 주로 이용하는데 판사의 경우 신분이 확실해 이자율이 1% 정도 더 붙는다.

ㄴ판사는 1~2년 전부터 이런 거래를 여러 건 해왔다고 한다. 부모 명의로 된 계좌를 이용했지만, 계약은 주로 자신이 체결했다. 그는 지금도 똑같은 내용의 거래를 3건 진행하고 있다. ㄴ판사는 지난 23일 <한겨레>와 만나 “내 이름으로 거래를 하면 공직자로서 문제가 될 것 같아 안 한다. 부모님이 연로하셔서 내가 주식을 관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계좌에 있는 돈은 모두 어머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ㄴ판사는 ㄱ씨와 계약할 때 명의신탁이 의심되는 말을 했다고 한다. ㄱ씨는 <한겨레>와 만나 “내가 추가 투자할 뜻이 있냐고 물었더니 ‘내가 자금이 있으면 (추가 투자하겠다.) 나도 이런 걸 많이 해보니까 (금액을) 크게 하는 게 편하다’고 답했다. 본인 명의로 하면 문제가 있어서 부모 명의로 하는 것이라는 말도 했다”고 밝혔다.

ㄴ판사의 거래는 탈세에 해당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행법은 이자소득에 대해선 세금을 물리도록 돼 있다. 한 조세 전문 변호사는 “1년에 5천만~6천만원의 이자소득은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다. 결국 세금도 내지 않고, 음성적인 거래를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ㄴ판사는 “개인적으로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을 때 세금을 내는 사람은 거의 없지 않나. 물론 나는 공직자니까, 세금 안 내는 게 꼭 맞다고 얘기할 순 없겠지만. 이자소득이 문제가 되면, 나중에 세금 신고할 때 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ㄴ판사는 이런 거래로 인해 수사당국의 연락을 받기도 했다. ㄴ판사와 계약을 맺은 한 트레이더가 무등록 상태에서 투자행위를 한 혐의(유사수신행위 규제에 관한 법 위반)로 검찰에 기소됐기 때문이다. ㄴ판사는 “검찰에서 당시 트레이더와 어떤 거래를 했는지 물어봐서 설명해줬다. 수사에 협조해준 것뿐 나는 (범죄와) 관련이 없었다”고 말했다.

ㄴ판사와 거래했던 한 증권가 관계자는 “공직자로서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여지가 있다. 평소 ㄴ판사가 주식 투자하는 걸 보면 상당히 고급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 같은 전문가들도 모르는 정보라 오히려 우리가 (판사에게) 물어보고 그랬다. 증권가에서도 가진 사람들끼리 형성된 ‘그들만의 리그’가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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