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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한국악에 휘날린 동아시아평화의 깃발

저는 한국, 일본, 중국, 대만, 북한 국기 등을 소재로 한 깃발 작품을 배낭에 꽂고 한국악을 등반했습니다. 에비노 고원(1,200m)에서 정상을 향하는 중 해당 국기를 본 등산객들이 그 나라에서 왔냐고 묻더군요. 우리는 "프롬 더 피스"라고 대답했습니다. 손을 흔들며 멀어지던 그들이 "포 더 피스"라고 화답해주었습니다.

  • 강영민
  • 입력 2016.02.05 06:00
  • 수정 2017.02.05 14:12

한국악 정상에서 동아시아평화를 위한 퍼포먼스를 하다.

지난 1월 22일 일본 규슈 가고시마현 기리시마시에 있는 한국악(‎韓国岳:1,700m)에 올랐습니다. 이곳은 1934년에 지정 된 일본 최초의 국립공원으로서 오래된 온천들과 화산들이 즐비한 관광명소입니다. 기리시마 산(霧島山)은 천손강림의 신화가 깃들어 있는 다카치호노미네(高千峰穂峰:1,574m)와 2011년 화산이 폭발한 신모에다케(新燃岳:1,421m), 그리고 일본에서 가장 높은 화구호수 오나미이케(大浪池:1,411m) 등으로 이루어진 연산(連山)입니다. 가장 높은 봉우리인 한국악에 오르면 여러 다른 봉우리들과 가고시마 내해의 명소인 사쿠라지마(櫻島:1,117m) 화산까지 굽어 볼 수 있습니다.

일행들 뒤로 보이는 산이 천손강림의 신화가 깃들어 있는 다카치호노미네

일본 최정상 화구호수 오나미이케와 그 뒤로 사쿠라지마 화산이 보인다.

한국악이란 이름을 기리시마시 국제교류대사인 스토리투어의 조현제 대표를 통해 처음 들었을 때 여길 꼭 올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뭔가 신비로운 사연이 숨겨져 있을 것 같았습니다. 왜 한국악이란 이름일까요. 캉코쿠다케가 아니라 가라쿠니다케로 발음하는 이유는 뭘까요. '가라'는 한반도 남쪽에 있던 가락국을 음차했다고 하고, 한은 삼한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임진왜란의 전초기지이자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180km) 규슈의 가라쓰(唐津)도 당나라와 무역이 활발해지기 전엔 한진(韓津)이었다더군요. 그 중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래인(渡來人)들이 이곳에서 한반도를 바라보았다라는 설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아시아 여러나라의 국기를 하트 심볼로 변형한 작품을 들고

저는 한국, 일본, 중국, 대만, 북한 국기 등을 소재로 한 깃발 작품을 배낭에 꽂고 한국악을 등반했습니다. 동아시아평화를 위한 퍼포먼스를 계획한 것이죠. 한 걸음 한 걸음 뽀얀 입김을 상고대에 녹이며 드디어 정상에 올라 섰습니다. 옛사람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이름 붙인 빛바랜 표지판 앞에 서니 시공과 국경을 넘어 마음의 장벽이 사라지는 것을 느낍니다. 환동해를 가르며 교역하던 고대해양세력의 활달한 에너지가 눈 덮인 산악을 뚫고 뜨거운 연기를 내뿜습니다. 현재의 경색된 한일관계와 민간의 분방한 교류의 대비를 상징하는 듯 합니다. 그 흐름이 평화를 바라는 뜨거운 숨결이 되어 그림처럼 자리잡은 이곳에 전해지기를 기대합니다. 독도가 동아시아 분쟁의 상징이라면 이곳을 평화의 상징으로 삼으면 어떨까요.

에비노 고원에서 한국악으로 난 표지판 앞에서 등반을 진행해주신 가이드 하가시 상과 조현제 스토리투어 대표

하산 후 구수한 유황냄새를 맡으며 800m의 고원에 위치한 이와사키 호텔의 유명한 노천온천에 몸을 담궜습니다. 메이지시대의 쾌걸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1836~1867)도 그의 부인 오료(お龍)와 함께 이곳에 왔다죠. 서구 열강들의 공세와 막부의 감시에 노심초사하던 그도 여기서 긴장을 풀었을까요. 다음 날 아침 그와 그의 아내가 여행 온 덕분에 일본 최초의 허니문이라고 알려진 료마산책로를 걸었습니다. 제주 올레길이나 지리산 둘레길 같이 정겨운 시골집들과 어우러진 풍광이 무척 평화로왔습니다. 이 아름다운 자연은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겠죠.

이렇게 자연은 국경을 넘어 서로 통하나봅니다.

에비노 고원(1,200m)에서 정상을 향하는 중 해당 국기를 본 등산객들이 그 나라에서 왔냐고 묻더군요. 우리는 "프롬 더 피스"라고 대답했습니다. 손을 흔들며 멀어지던 그들이 "포 더 피스"라고 화답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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