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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컨퍼런스를 토요일에 하는 이유

컨퍼런스가 끝나고 수거한 설문지를 바라보니 궁금한 마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꼼꼼히 보는 것은 조금 뒤로 미루고 가장 알고 싶던 시간에 관한 응답만 얼른 모두 훑어봤다. 결과는 압도적으로 토요일에 집중되어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토요일 오전에 진행한 컨퍼런스에 참여한 사람들 아니던가. 하지만 그 선택에 대한 이유를 읽어보니 실제 상황은 예상과 크게 비틀어진 상태였다. "평일에는 일해야 해서요. 특히 디자이너는 매일 야근 때문에 주말에만 시간이 빕니다. 그런데 일요일은 정말 꼭 쉬어야 해요." 토요일은 일주일이라는 시간 중 그들에게 허락된 유일한 날이었던 것이다.

  • 전종현
  • 입력 2016.02.03 10:47
  • 수정 2017.02.03 14:12
ⓒgettyimagesbank

지난 1월부터 'CA 컨퍼런스' 기획을 맡게 됐다. 'CA 컨퍼런스'는 크리에이티브 매거진 <CA>에서 주최하는 세미나 이름이다. 주로 디자인과 관련한 주제 아래 창의적인 연사 3-4명을 초청해 그들의 인사이트를 들어보는 컨퍼런스는 작년 여름 이후 잠시 소강상태였다. 올해부터 다시 매달 기획할 요량인데 관련 경험이 무지한지라 개인적으로 타깃 관람객의 정보를 다시 파악하는 게 필수로 다가왔다. 예컨대 주 고객(?)이 학생이냐 직장인이냐에 따라 세미나의 주제와 난이도는 천지차이가 될 테니까.

'2016 디자인 트렌드'를 주제로 1월 중순 토요일 오전에 첫 번째 컨퍼런스를 기획하면서 간단한 설문지를 함께 준비했다. 다양한 질문이 담긴 설문지는 최대한 참여율을 높이려고 주어진 보기에서 동그라미를 치게끔 직관적으로 만들었다. 이 중 가장 필요했던 답변은 다름 아닌 향후 원하는 컨퍼런스의 시간대였다. 이유는 단순하고 명확하다. 그들이 속한 기관(학생/직장)에 대한 정보, 관심사를 바탕으로 주제를 기획하고 적절한 연사를 섭외해 프로그램을 짠다 해도 오프라인으로 진행하는 행사다 보니 모두가 원치 않는 시간에 컨퍼런스를 개최하는 것만큼 서로에게 당황스런 경우는 없을 테니 말이다.

컨퍼런스가 끝나고 수거한 설문지를 바라보니 궁금한 마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꼼꼼히 보는 것은 조금 뒤로 미루고 가장 알고 싶던 시간에 관한 응답만 얼른 모두 훑어봤다. 결과는 압도적으로 토요일에 집중되어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토요일 오전에 진행한 컨퍼런스에 참여한 사람들 아니던가. 하지만 그 선택에 대한 이유를 읽어보니 실제 상황은 예상과 크게 비틀어진 상태였다. "평일에는 일해야 해서요. 특히 디자이너는 매일 야근 때문에 주말에만 시간이 빕니다. 그런데 일요일은 정말 꼭 쉬어야 해요." 토요일은 일주일이라는 시간 중 그들에게 허락된 유일한 날이었던 것이다.

겉보기에 대한민국은 컨퍼런스, 세미나의 천국 같다. 기라성 같은 해외 연사가 찾아오는 국제 컨퍼런스는 매달 끊이지 않고. 국내 연사가 이끄는 세미나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자기 개발을 원하는 사람들이 도처에 존재한다는 증거다. 하지만 디자이너에게 이건 언감생심의 지옥이 따로 없다. 평일 근무시간에 진행하는 행사는 당연히 일 때문에, 평일 6시 이후에는 아직도 퇴근을 못해서, 주말에는 연장 근무가 많으니, 운 좋게 주말에 자유로워도 야근으로 엉망이 된 몸 때문에 언감생심의 연속이다. 토요일 하루 정도라도 시간이 나는 경우는 억세게 운 좋은 날이다. "토요일 아침이라도 늦잠 좀 자고 싶습니다. 그리고 맑은 정신으로 기억하고 싶어요." 토요일 오후 컨퍼런스를 원한다는 한 수강자의 절박한 대답이 아직도 내 머리 속을 울리며 돌아다닌다.

시대의 변화를 맨 앞단에서 겪고 새로운 것을 빠르게 제시해야 하는 운명을 짊어진 디자이너야 말로 자기 개발이 생업과 밀접히 연결된 업종이다. 컨퍼런스와 세미나, 그리고 다양한 대안 교육 커리큘럼은 살아있는 크리에이티브 캠퍼스와도 같다. 창조 산업의 발전과 그 구성원의 미래는 이런 프로그램을 얼마나 유기적으로 잘 운영하는지에 달렸다. 그런데 지금은 마치 사막 한가운데서 오아시스를 발견해도 접근할 수 없는 상황과 마찬가지다.

전 국가적으로 촘촘한 운영은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힘이 되어주지는 못할망정 도처에서 이들의 발목을 잡는 존재여, 디자이너에게 크리에이티브 캠퍼스를 허하라! 그러지 않으면서 제 살림살이가 나아지기를 바란다면 그야말로 언감생심 아니겠는가. 우리나라의 디자이너 대부분이 속한 소규모 디자인 회사를 이끄는 이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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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크리에이티브 매거진 <CA> 2016년 02월호 'INSIGHT'에 기고한 원고를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www.ca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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