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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정산 서민 세금폭탄'은 없었다는 명확한 증거

  • 허완
  • 입력 2016.01.11 09:10
  • 수정 2016.01.11 10:10
ⓒGettyimagesbank

지난해 이맘때쯤 벌어졌던 '연말정산 소동'을 기억하는가?

당시 정치권과 일부 시민단체, 그리고 언론들은 '연말정산 서민 세금폭탄'론을 제기했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은 "정부가 봉급생활자의 지갑을 털어 재벌 감세로 부족한 세수를 메우려 했다"고 정부를 비판했고, '한국납세자연맹'은 증세 반대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언론들은 연봉 7000~9000만원대 소득자의 사례를 들어가며 연일 '세금폭탄'을 거론했다.

그러나 모두 사실이 아니었다. 당시 연말정산이 '서민 세금폭탄'이 아니라 '부자증세'였다는 명확한 증거가 여기에 있다.

'서민 세금폭탄'은 없었다

이 그래프를 살펴보자.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이 표는 한겨레가 '2011~2015년 국세통계연보'(2010~2014년 소득에 해당)를 분석해 소득에 따른 실효세율을 정리한 것이다. 여기에는 정부의 '연말정산 보완대책' 결과가 반영됐다.

* 실효세율=결정세액(실제로 내야 하는 총 세금)을 총급여(과세 대상이 되는 근로소득)으로 나눈값=실제로 부담하는 세금 수준

이 그래프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액수는 근로소득자의 연간 총급여 기준)

  • 4500만원 이하 근로소득자가 내야하는 세금 액수는 1년 전보다 줄었다.
  • 6000만원 이하 근로소득자의 실제 세금 부담 수준은 1년 전보다 줄었다.
  • 1억원 초과 근로소득자의 실제 세금부담 수준은 1년 전보다 급등했다.

이에 따르면, 3억원~5억원 근로소득자의 실제 세금부담 증가폭(2.49%p)이 제일 컸다. 두 번째는 5억원~10억원 근로소득자(2.30%p)였다. 또 10억원 초과 근로소득자의 실효세율도 2.0%p 올랐다.

한겨레는 이 같은 자료를 근거로 "6000만원 이하 근로소득자의 세금 부담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며 "특히 총급여가 5억원인 고소득 근로소득자의 추가 세금 부담은 1200만원, 10억원인 경우는 2300만원에 이른 것으로 분석됐다"고 전했다.

이런 실질 세금 부담 증가 등의 영향으로 정부가 지난해 근로소득자들한테 걷어들인 세금은 25조3978억원으로 2014년보다 3조1105억원가량 늘었다. 또 증가한 세금 대부분은 고소득층의 주머니에서 나왔다. 총급여가 8000만원이 넘는 근로소득자들이 지난 한해 늘어난 근로소득세의 97.4%를 부담했다. 총급여 수준이 4500만원 이하인 근로소득자들의 납세액은 한해 전보다 되레 4042억원 줄었다. (한겨레 1월11일)

물론 이런 숫자들은 소득 구간별 평균값이기 때문에, 개인별 편차는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 4500만원 이하인데 세금이 늘어났다거나 1억원을 넘는데 세금을 덜 낸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개별적 사례들일 뿐, 전체적으로는 '부자증세' 효과가 명확하게 나타났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지난해 연말정산이 '부자증세'였다는 분석은 이전에도 나온 바 있다. 뚜껑을 열어보니 '폭탄'이 아니었다는 것.

관련기사 : [연말정산 대책] '세금폭탄'은 없었다

누가 '서민 세금폭탄'론에 기름을 부었나

그렇다면 대체 '서민 세금폭탄' 같은 말들은 왜 나왔던 걸까?

우선 연말정산 환급액을 미리 계산한 결과, '5500만원 이하는 세금이 줄어든다'는 정부의 애초 설명과는 달리 환급액이 줄어들거나 세금을 더 토해내야 하는 사례가 속출했던 점을 꼽을 수 있다. 연말정산 항목이 조정되면서 특히 1인 가구와 자녀가 셋 이상인 가구 등에서 이런 경우가 많이 나타났다.

그러나 그것 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당시 '세금폭탄'을 목소리 높여 주장했던 사람들이 누구인지 주의깊게 볼 필요가 있다.

이번 연말정산 논란의 전개 과정을 찬찬히 살펴보면, 고소득층의 불만 섞인 목소리가 유독 컸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실제 <조선일보><중앙일보> 등 보수 신문은 개정 소득세법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그 근거로 연봉 7천만~9천만원대 소득자의 사례를 집중적으로 들었다.

(중략)

올해 연말정산에서 상대적으로 ‘손해’를 봤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일부 언론과 정치권을 거치며 ‘증세 저항’으로 확대됐다. (한겨레21 제1047호 2015년 1월29일)

이런 고소득 근로자들은 사회의 여론주도층입니다. 특히 이번 연말정산을 ‘세금폭탄’이나 ‘조삼모사’ 같은 말로 공격하는 언론사의 부장급 데스크들도 연봉이 7000만원 이상인 고소득 근로자입니다.

고소득 근로자들의 불만이 전체 월급쟁이들의 의견인 것처럼 전달되는 데에는 언론사 부장급 데스크들의 개인적인 불만도 어느 정도 작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조선비즈 2015년 1월21일)

당신의 소득은 생각보다 낮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소득을 실제보다 '낮다'고 인식하는 경향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통계적으로는 '고소득자'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나는 고소득자가 아닌데 세금을 왜 더내야 하냐'는 불만을 갖는 경향이 있다는 것.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세 부담이 커진) 연봉 7천만원 이상인 사람들은 상위 10%에 해당한다. 7천만원이 낮은 소득이 아니지만 7천만원을 받는 이들은 자신이 상위 10%에 해당될까라는 의구심이 있다”고 분석했다. 즉 통계상 소득수준은 상위 10%에 들어감에도, 정작 자신이 그에 합당할 만큼 세금을 내야 할 정도로 돈을 많이 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는 얘기다. (한겨레21 제1047호 2015년 1월29일)

불평등 분야 전문가인 김낙년 동국대 교수(경제학)의 분석에 따르면, 연간 소득이 4000만원인 사람들은 개인소득 '상위 15%'에 해당한다. (근로소득, 사업소득, 금융소득 등 포함)

이에 따르면, 모든 개인소득자를 일렬로 세워놓으면 중간에 있는 사람들의 소득(중위소득)은 '1074만원'에 불과하다. 전체 평균소득은 2046만원이다. '나는 평균도 못 번다', '내 월급은 낮다'고 생각하기 쉽겠지만, 실제로는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는 한국 사회에서 고소득층에 들어가는데 이보다 못 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상당히 많다" (김낙년 교수)

증세 없는 복지는 없다

잊을만 하면 한 번씩 '세금폭탄' 같은 단어들이 흉흉하게 떠돌지만, 사실 한국은 소득의 높고 낮음에 관계 없이 OECD에서 소득세를 가장 적게 내는 나라다. (믿기 어렵겠지만) 이런 사실은 여러 통계로 분명하게 증명된다.

우리나라의 실효세부담은 다른 OECD 회원국에 비해 상당히 낮은 편이다. 이는 독신자, 2인 가구, 4인 가구 모두에 해당되는 것이며, 소득수준에 따라 세부담 격차에 차이가 발생하긴 하지만 전 구간에 걸쳐 우리나라가 OECD 평균치보다 상당히 낮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소득수준별 근로소득 세부담과 가족수당 혜택’, 2015년 4월)

세금을 깎아주는 각종 공제제도로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 직장인 과세 미달자가 전체 근로소득 납세의무자의 48%(802만3000명)를 차지하고 있다. (중략) 실제 세금공제로 전체 근로소득의 약 60%는 소득세를 전혀 내지 않는다. 또 우리나라 소득세 최저세율은 6%로 오이시디 평균(15%)보다 절반 이상 낮다. (한겨레 1월6일)

우리 모두가 확인했던 것처럼, '증세없는 복지' 같은 건 없다. 정치인들은 대놓고 말하기 꺼려하지만, 복지를 확대하려면 결국 세금이 필요하다. 이 사실을 회피하려 하다보면, 담뱃값 인상 같은 '꼼수증세'만 남게 된다.

소득세는 법인세, 부가가치세와 함께 가장 덩어리가 큰 세금이다. 우선순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어도, 소득세 인상을 빼놓고는 증세나 복지국가를 논할 수 없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오는 이유다.

이건 '소득세만 올리자'거나 '소득세부터 올리자'는 얘기가 아니라, '언젠가는 소득세를 올릴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얘기다. 당신이 복지 확대에 찬성한다면 더 그렇다.

고소득구간에서의 실효세율이 낮은 것도 소득세 부담률을 낮추는 역할을 하지만 특히 저소득구간에서의 낮은 실효세율이 우리나라의 GDP 대비 소득세 비율을 낮추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중략)

이러한 연구결과는, 우리나라의 소득세 세수입을 확대하여 장기적으로 복지재원으로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도록 기대한다면 소득세 실효세율을 인상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소득세 부담수준의 결정요인 분석’ 2015년 1월)

우리나라 소득세는 6~38% 세율로 부유한 사람은 세금을 많이 내고 가난한 사람은 적게 내는 누진적 성격이 강해 소득 불평등을 개선할 수 있는 핵심 세목이다. 세수 규모도 커서 세금을 제대로 걷는다면 다양한 복지정책을 펼 재원도 마련할 수 있다. 그럼에도 소득공제 규모가 큰데다 고소득층에 혜택이 더 몰리면서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한겨레 2015년 1월19일)

관련기사 : "복지 위해서는 서민증세도 필요하다"는 주장에 주목해야하는 5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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