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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과 경멸이 흐르는 전화선

ⓒ한겨레21

⑧ 상담사의 헤드셋: 시시콜콜 쉴 틈 없이 시민의 질문을 처리하는 서울시 종합민원전화 120다산콜센터 지윤재씨

따뜻한 물 한 모금을 마셔 목을 적신다. 헤드셋을 착용한다. 왼쪽 귀에 이어폰, 오른쪽에 마이크가 달렸다. 전화벨이 울린다. “120다산콜센터 지윤재입니다. 수도요금 어떤 부분 때문이세요? 계량기 마지막 숫자가 어떻게 되나요? 시민님, 확인 감사드립니다. 11월3일부터 오늘 22일까지 총 48t 쓰셨습니다. 11월 요금하고 이사 정산 금액을 더하면 18만6900원이거든요. 이걸 나누어서 세입자한테 받으시면 됩니다. 다른 문의 사항은 없으십니까? 좋은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내일 힐링캠프 누구 나와요?”

지난 11월22일 일요일 아침, 120다산콜센터 지윤재(35) 상담사의 첫 전화 상담. 그의 밝고 따스한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전달됐을까? 고맙다는 시민의 마음이 전화선을 타고 전해진다. 이어패드(헤드폰이 귀에 닿을 때 편안하게 착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쿠션)가 모처럼 푹신하게 느껴진다.

다음 ‘콜’을 받는다. 삼성전자서비스센터 전화번호를 묻는다. 왼쪽 모니터에서 포털 사이트를 열어 검색하고 곧바로 알려준다. 강서구청에서 인천공항으로 가는 공항버스 시간을 알려달란다. “시민님 인천공항 홈페이지와 운수회사 홈페이지 찾아볼 건데요,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공항버스 정류장과 시간대, 자동차 이동 거리와 택시요금까지 알려준다. 운수회사 연락처를 문자로 보내고 처리 결과를 다산콜센터 상담 AP창(다산콜센터 내부망)에 입력한다. 불법 주정차 신고가 이어진다. 차분히 부탁하거나, 짜증스럽게 내던지거나, 분노를 표출한다.

도로에서 차가 고장 난 시민이 전화를 걸었다. 어느 자동차보험 회사에 가입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단다. 서울시와는 상관없는 전화. 그런데 헤드셋을 타고 오는 목소리에 다급함이 묻어난다. 그를 안정시키고 해결 방법을 차분하게 들려준다. 스마트폰을 잘 다루지 못하고 정보 능력이 부족한 시민들, 늙고 약한 사람들에게 120은 119만큼 소중한 존재다.

5년째 동행하고 있는 헤드셋은 윤재씨의 가장 오랜 친구다. 서울시가 제공한 2만원 남짓한 중저가 제품이다. 상대방 전화기의 성능에 따라 귀청이 찢어질 듯 크게 들리기도 한다. 온종일 쓰고 있어 귀에 뾰루지가 생긴 동료들은 사비를 들여 5만원 넘는 고급 헤드셋을 쓰기도 한다. 윤재씨는 익숙해져서 지금 헤드셋이 크게 불편하지는 않다. 대신 노래방 마이크 덮개를 사서 갈아주고 있다. 한양도성 관광안내지도, 서울지하철 노선도, 수도사업소 본부 연락처가 윤재씨 책상 오른편에 걸려 있다. 서울시 데이터베이스, 서울 대중교통, 경기버스정보, 서울시 도로명 주소, 다음 지도…. 그녀의 왼쪽 모니터에 무려 17개의 홈페이지가 떠 있다. 그녀가 헤드셋을 벗는다. 지금부터는 문자 상담 시간이다.

‘홍대앞 동대문운동장 새벽 3시 이후 몇 번 버스인가요?’ ‘LG그룹 본사 주소와 위치 안내해주세요’ ‘현재 공군·육군·해군의 의무복무 일자는 몇 개월인가요?’ ‘애슐리퀸즈 압구정역에서 걸어서 얼마나 걸리나요?’ ‘관악구 조원동 주위 약국 오픈점 알 수 있는지요’ ‘잠실에서 평택 가는 버스 5시부터 7시 시간대까지 알려주세요’….

그의 열 손가락이 쉴 새 없이 움직인다. 서울시와 무관한 문자 상담에도 정성껏 답변한다. “저희를 골탕 먹이려고 이런 문자를 보내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시민이 정말 필요해서 물어본다고 생각하고 일해요. 그렇게 마음먹지 않으면 이 일을 하지 못하거든요.”

민원 처리 후 미선씨가 울었다

문자 상담이 이어진다. 수신 메시지 리스트에 메시지가 쌓인다. 블록을 처리하지 못해 쌓이면 게임이 끝나는 테트리스(다른 모양의 7가지 블록을 이용하는 게임)를 하는 느낌이다. 마음이 조급해진다. 손놀림이 더욱 빨라진다. 민원 내용을 검색하고, 내용을 요약해 문자를 발송하는 손놀림이 현란하다. ‘기가급’ 정보처리 실력으로 ‘테트리스’ 블록을 처리한다.

‘내일힐링캠프하고안녕하세요누구나와요문자주신상담원’ ‘안녕하세요는요’ ‘남자 김정민이냐?’ ‘프로배구하고 여자프로농구경기 결과좀요 문자주신상담원 누구예요’ (010-****-****)

한 사람이 보낸 문자다. 지금까지 30통 넘게 보냈다. 한숨이 나온다. 성희롱이나 폭언이 아니어서 악성 민원으로 처리하기도 어렵다. 마음을 다스리고 자판을 두드린다.

그의 옆자리, 김미선(가명) 상담사의 헤드셋 너머로 악을 쓰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주변 상담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미선씨를 향한다. SH공사(옛 서울시도시개발공사) 아파트 거주민인데 위층 배관 공사 뒤 물이 샌다는 항의다. 책임자를 바꾸란다.

“시민님 죄송합니다. 오늘은 휴일이어서 담당자를 연결해드릴 수가 없습니다. 민원 사항을 SH에 전달하겠습니다”를 반복하지만 소용없다. 오늘 중으로 고쳐놓으란다. 전화선을 타고 흘러온 분노의 음성이 귀청을 때린다. 경멸의 언어가 귓가를 후려친다. 서울시 담당자를 연결하란다. 전화가 끊어졌다. 미선씨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서울시청 당직실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알린다. 팀장과 동료들이 미선씨를 위로한다.

강성 민원(민원인의 행위가 즉시 법률상 범죄에 해당되지는 않으나 근무자의 정상적인 업무 수행을 불가능하게 하는 등 악성 민원 전환 가능성이 매우 높은 민원)이어서 팀장도 통화 내용을 함께 들었다. 통화 도중에 끊어졌기 때문에 전화를 해주는 게 원칙이지만 ‘아웃콜’을 하지 않기로 한다. “심한 민원 받고 나면 한참을 울어요. 쉬고 나서도 마음이 가라앉지 않고 다음 전화를 받는 게 두려워져요. 많은 상담사들이 불안감을 감소시키는 약을 복용하고 있어요.” 윤재씨의 목소리가 떨린다. 악성이나 강성 민원을 받는 날은 하루 종일 롤러코스터를 타는 느낌이다.

마음을 가라앉힌 김미선 상담사가 다시 전화를 받는다. 공사 소음과 먼지, 교통, 병원 민원을 처리한다. 어느 남성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저희는 법원 업무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만 인터넷 검색해서 이혼 서류를 찾아드릴 수는 있습니다.” 갑자기 화를 낸다. 말투가 왜 그 모양이냐, 왜 불친절하냐, 당신 이름이 뭐냐고 소리친다. “시민님, 불편을 드려서 죄송합니다”를 연발하지만 소용없다. 그의 이름을 확인한 민원인이 거칠게 전화를 끊는다. 그가 헤드셋을 내려놓고 휴게실로 향한다.

목소리가 좋은 윤재씨는 카드사 콜센터에서 일했다. 정확한 발음과 속도, 억양, ‘솔톤’(도레미파솔라시도의 솔 높이 음)을 훈련했다. 지금은 어색하고 고객을 불편하게 한다고 잘 사용하지 않지만 그때는 솔톤이 유행이었다. 고객이 상처받지 않는 단어를 사용하는 연습을 계속했다. 아웃바운드(전화를 걸어 상품을 파는 일)는 적성에 맞지 않아 인바운드(고객 응대) 업무를 했다. 하지만 회사는 영업을 요구했고 카드 발급을 할당했다. ‘순수’ 인바운드 일을 찾다가 함께 일했던 언니의 제안으로 2009년 10월 다산콜센터에 들어왔다. 소개해준 언니는 효성 ITX, 윤재씨는 MPC 소속이었다. 서울시가 상담 업무를 위탁한 업체 이름이다. 윤재씨 회사는 올해 초 ‘메타넷MCC’로 바뀌었다.

상담사들이 먼저 전화 끊을 권리

‘전화 한 통으로 서울시, 구청 관련 민원이나 궁금 사항을 속 시원히 해결해드리는 서울시 종합민원전화’의 상담사 업무는 쉽지 않았다. 한 구청에서 처리하는 업무가 3만6천여 개. 시청과 25개 구청, 보건소, 수도, 교통 등 서울시 민원 업무는 수십만 가지에 이른다. 서울시 행정 전반을 알지 못하면 상담할 수가 없었다. 한 달 보름을 교육받고, 매일 자료를 들고 다니면서 익혔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시간. 3분 내 민원을 완료하려면 전화를 받고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최고의 정보 검색 실력을 갖춰야 한다. 매달 시험을 봐야 했다. 적응이 빨랐던 윤재씨도 업무에 익숙해지는 데 6개월 이상 걸렸다. 서울시 민원 7년차 상담사지만 지금도 긴장의 연속이다. 매일 쏟아지는 서울시 정책, 구청마다 다른 행정 업무, 무수한 행사를 꿰차고 있지 못하면 민원을 처리하지 못한다.

윤재씨는 상품을 과장 홍보하고 때론 거짓말을 해야 하는 일반 기업의 콜센터보다 공익을 위해 일하는 다산콜센터가 좋았다. 시민들의 불편과 민원을 귀담아들어 서울시에 전달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친절하고 정확하게 서울시를 알리는 행정 전문 상담사라는 자긍심도 있었다.

그러나 헤드셋에 도달한 모멸의 언어는 그의 마음에 생채기를 냈다. 속옷 치수를 묻고, 키스해달라는 성희롱에도 전화를 끊을 수 없다는 현실이 끔찍했다.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욕설을 들으며 서러운 눈물을 흘려야 했다. 2012년 노조(희망연대노조 다산콜센터지부)를 만든 상담사들은 가장 먼저 ‘악성 민원이라 판단될 시 상담사들이 직접 전화를 끊을 권리’를 요구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2월 성희롱에 대한 ‘원스트라이크아웃’ 제도를 도입했다. “노조가 만들어지니까 15분 일찍 출근하는 일도 없어지고, 이석(자리를 뜨는 일)에 대한 간섭도 줄어들었어요. 악성 민원도 많이 사라졌죠. 정말 숨 쉴 것 같더라고요.”

서울노동권익센터는 최근 <서울시 공공부문 감정노동 보호방안 연구>(서울시·기관용 가이드라인과 노동자를 위한 안내서)를 발간하고, 서울시에 전달했다. ‘감정노동 보호 가이드라인’에는 서울시가 해야 할 7대 역할, 산하 기관장의 12대 역할이 담겼다.

‘감정노동을 하는 노동자 보호 조항’에는 “악성(진상) 고객의 경우 고객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고 업무를 잠시 중단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그리고 문제 발생시 감정노동 책임자가 문제 해결을 맡도록 한다” 등 9개 조항이 포함됐다. ‘감정노동을 완화시키는 근로조건 마련’을 위해서는 적정 인력 확보, 휴식 시간 보장 등 6대 항목이 담겼다. 하지만 ‘감정노동 가이드라인’은 시청 서랍 속에 고이 모셔져 있다.

서울시청 앞에서 사지 들려 끌려나온 이유

요즘 윤재씨는 근무가 없는 날 서울시청으로 출근한다. 박원순 시장에게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하는 노조의 농성에 함께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2월 서울시 인권위원회는 “다산콜센터의 상담 업무는 서울시의 상시·지속 업무로서 서울시가 실질적인 사용자임에도 민간위탁이라는 간접고용 방식을 취함으로써 다산콜센터 상담사의 인권침해 상황을 악화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며 “직접고용 등 고용 구조를 개선해 상담사의 노동인권을 보장할 것”을 서울시에 권고했다. 10개월이 지난 지난해 12월 박원순 시장은 다산콜센터 상담사들을 직접 고용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서울시가 ‘공무직’이 아닌 2년 기간제 비정규직으로, 상담사 전원이 아닌 일부만을 고용하고, 경력도 인정하지 않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11월17일 시장의 책임 있는 답변을 요구하기 위해 시청을 방문했던 노조 간부들은 청원경찰에게 사지가 들려 끌려나왔다. “서울시가 왜 남의 앞마당에 와서 그러냐며 끌어냈어요. 우리가 남이라니요?”

창밖이 어두워졌다. 야간팀 상담사들이 출근해 헤드셋을 쓴다. 모두들 잠들어 있는 시간, 지윤씨는 언니·동생들이 술 취한 취객들과 어느 ‘또라이’들의 모욕을 무사히 견뎠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윤재씨와 미선씨가 헤드셋을 벗고 고개를 든다. 다산콜센터 벽면에 “120을 통해 모두가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쓰인 현수막이 걸려 있다. ‘모두’에 상담사도 포함되는 걸까? 윤재씨의 헤드셋과 컴퓨터에 존중하는 말과 배려하는 글자가 따뜻하게 흘렀으면 좋겠다.

글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 @ccomark, ccamcy@gmail.com

사진 노순택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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