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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워서 더 몰랐던 그녀들, '엄마들'

『엄마들』이 보여주는 중년 여인의 삶은 솔직히 구질구질하다. 집에 남편이 있거나 없거나 시정잡배 같은 남자들에게 매번 홀리고 또 울고불고 헤어진다. 하는 일도 마땅치 않다. 세상은 늙은 여자에게 쉽게 일자리를 주지 않으니까. 그런데 동정이나 손가락질이 좀체 되지 않는다. 산다는 것에 정답이 없다면 좀 구질구질하면 어떤가. 꼭 부부간의 백년해로만이 진정한 사랑인가, 골프를 치고 좋은 차를 타야 멋진 인생인가 하는 생각이 빼꼼 고개를 내민다.

모두가 엄마도 여자라는 걸, 인간이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엄마니까'라는 말로 그녀의 희생을 당연시하고, 모성애를 강요한다. 그런 주제에 '당신은 위대합니다', '엄마의 모성애는 대단합니다' 등의 텅 빈 미사여구로 치장을 한다. 과연 우리는 진짜 엄마의 모습을 알긴 알까. 나의 편의대로 엄마는 나를 위해 사는 사람으로 만들지 않았나. 문뜩 지난 모습을 검열할 때 엄마는 어떤 생각으로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 그제야 궁금해진다.

공장에서 대체 군복무를 한 경험을 담은 『남동공단』과 웹툰 『19년 뽀삐』로 자신 혹은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해 온 마영신의 『엄마들』은 그런 물음에 대한 가장 솔직한 응답이다. 작품에는 여러 엄마들이 등장한다. 중년에서 노년을 바라보는 나이대의 엄마들은 춤을 추러 나이트에 다니고 남편 몰래 애인을 만들지만 누군가의 엄마인 여자들이다. 평범하지 않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불륜을 위해 등산모임에 나가는 사람들은 우리 주변에도 많다. 그래서 생각해보면, 모성신화에 가려져 있던 엄마들의 진짜 민낯은 이런 것이지 않을까. 구차하고 별 볼일 없지만 때로는 손가락질 받을 일이어도 소소한 즐거움이 있는 인생 말이다.

이소연의 남자친구는 매번 바람을 피우고 뻔뻔하게 그녀를 찾아온다. 죄책감도 없다.

주인공은 돈도 떼이고 마음도 떼였지만, 허전함 때문에 진즉에 헤어졌어야 하는 남자랑 계속해서 사귀는 중년의 여인 이소연이다. 장성한 자식이 셋이나 있고 노름에 손댄 남편 때문에 빚만 갚는 생활을 하다가 이혼했다. 자신에게 남은 것은 달랑 집 한 채. 준비 된 노후 따위도 없으니 건물 청소를 한다. 그녀의 최대 고민은 노후와 속을 썩이는 시시껄렁한 남자친구다. 소연은 꽤 오래 나이트클럽의 웨이터와 사귀고 있다. 좋아서 만나는 것이지만, 그녀의 연애는 비참하다. 남자는 돈도 안 쓰는 주제에 이런 저런 여자들과 바람을 피우고도 당당하다. 울면서 몇 번이나 다시 보지 말자고 문자를 보냈지만 다짐도 한때, 남자가 술에 취해 찾아오면 늘 받아주는 미련함까지 보인다. 젊은 친구가 그랬다면 정신 차리라고 등짝을 때리고 싶어질 것 같은데, 중년 여자의 이런 철없는 연애는 어쩐지 짠하고 심지어 일면 귀엽다. 세상을 다 알고 있는 엄마도 결국 사랑 앞에서는 이렇게 귀엽고 대책이 없구나 싶어지는 것이다.

사랑 앞에서는 대책이 없었다면 일에 관해서는 또 대차다. 갑질을 하다못해 인권까지 유린하는 청소회사 소장을 엿 먹이기 위해 노조를 만들고 라디오에 나가 그들의 만행을 고발까지 한다. 이럴 땐 또 엄마가 인생 허투루 살지 않았다는 걸 화끈하게 보여준다.

부당대우를 받던 이소연은 노조를 만들지만 회사의 방해로 위기에 놓이고,

이런 사실을 라디오에 나가 알린다.

『엄마들』이 보여주는 중년 여인의 삶은 솔직히 구질구질하다. 집에 남편이 있거나 없거나 시정잡배 같은 남자들에게 매번 홀리고 또 울고불고 헤어진다. 하는 일도 마땅치 않다. 세상은 늙은 여자에게 쉽게 일자리를 주지 않으니까. 그런데 동정이나 손가락질이 좀체 되지 않는다. 산다는 것에 정답이 없다면 좀 구질구질하면 어떤가. 꼭 부부간의 백년해로만이 진정한 사랑인가, 골프를 치고 좋은 차를 타야 멋진 인생인가 하는 생각이 빼꼼 고개를 내민다.

『엄마들』은 매우 솔직하고 당당하다. 고작 '엄마들은 위대해'라고 치장하고 말았던 이야기를 자기방식대로 솔직하게 파헤친다. 마치 두꺼운 화장을 지우면 드러나는 기미 가득한 중년여인의 맨 얼굴을 묘사하는 것처럼. 어째서 이렇게 자세할 수 있을까 궁금했는데 작가는 자신의 엄마에게 펜과 노트를 선물하고 이야기를 써달라고 했다고 한다. 엄마들의 솔직한 이야기가 가능했던 것은 내가 바라본 엄마여서가 아니라 엄마 자신이 썼기 때문에 가능했구나 하고 수긍이 간다. 그리고 참 다행이다 싶다. 아무도 말하거나 들려주거나 궁금해 하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이렇게나 솔직하고 자세하게, 이제라도 말해주어서. 엄마에 대해 너무나 몰랐던 죄책감이 한 짐 떨어져 나간다.

글_ 남민영 에이코믹스 에디터

* 이 글은 에이코믹스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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