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독일 최고의 현자(賢者), 최고의 인물로 독일 국민의 사랑을 받아온 헬무트 슈미트 전 총리가 타계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슈미트 전 총리는 현존하는 독일의 최고 인물로 꼽혔으며 독일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지난 2005년 독일의 정치인, 문화인, 예술인, 체육인 등 17명의 저명인사들에 대한 선호도 조사에서 슈미트 전 총리가 96%의 지지로 최고의 인물로 선정된바 있다.
또 2002년 여론조사에서 가장 많은 응답자가 슈미트 전 총리를 현존하는 인물 중 가장 현명한 사람으로 꼽았다.
사민당(SPD) 출신의 슈미트 전 총리는 1974년부터 1982년까지 총리직을 역임하는 동안 온건하고 합리적인 사회민주주의 정책으로 국민의 신망을 얻었다.
그는 전임자인 빌리 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을 이어받아 독일 통일의 초석을 마련했으며 후임인 헬무트 콜 총리에게 통일 과업을 마무리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했다.
1974년 브란트 총리가 보좌관의 간첩행위 파동으로 물러난 후 슈미트는 의회 표결을 통해 총리로 선출됐다. 슈미트는 1976년과 1980년 총선에서 연속 승리했으나 1982년 사민당-자민당 연정이 붕괴하자 사퇴했다.
그는 정치권에서 물러난 뒤 독일 주간신문 디차이트 공동발행인으로 활동하면서 언론인으로서도 큰 영향력을 행사한 바 있다. 또한 활발한 저술 활동과 언론 기고를 통해 독일 사회의 나아갈 방향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왔다.
슈미트 전 총리는 정계 은퇴 이후에도 정치적, 사회적 이슈에 대한 발언과 경고를 서슴지 않았다.
지난해 우크라이나 사태를 둘러싼 서방과 러시아 간 갈등이 고조됐을 때 그는 "1차 세계대전의 서곡을 상기시킨다"고 말했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이처럼 사태를 악화시킨 유럽연합(EU) 관료들의 접근방법을 '과대망상증'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체인 스모커'로 유명한 슈미트 전 총리는 담배와 관련된 많은 일화를 갖고 있다.
파이프를 피워 문 모습이 트레이드마크처럼 인식되고 있는 골초 정치인인 그는 총리 재직시에도 정상 회담이나 기자 회견에서 거의 빠짐없이 담배를 입에 물고 등장했다. 그는 90세를 넘어서도 쉴새 없이 담배를 피웠다. 독일 국민은 그동안 슈미트 전 총리의 흡연을 문제 삼지 않았고 오히려 노익장의 상징으로 여기기도 했다.
그는 지난 4월 흡연이 허용된 TV 인터뷰에서 1시간 남짓 방송시간 동안 담배 10개비를 피워 화제가 된 바 있다.
독일에서 금연법이 시행된 2008년 이후에는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운 혐의로 고발되기도 했다. 그는 좋아하는 담배 종류가 판매 금지될 것을 우려해 200여 보루를 사재기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