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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이번 서울패션위크에서 주목해야 할 아이템 3 : 줄무늬, 봄버재킷, 카바나 셔츠

  • 남현지
  • 입력 2015.10.21 22:59
  • 수정 2015.10.22 07:16

2016 봄/여름 헤라서울패션위크’가 지난 16~21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렸다. 이번 패션위크에선 여느 시즌보다 몸을 조이지 않아 편안하고 여유로운 실루엣이 런웨이(패션쇼 무대)를 가득 채웠는데, 남성복·여성복 가리지 않고 통이 넓은 와이드 팬츠가 대세를 이뤘다. 상의 역시 헐렁해져, 잠옷 같은 파자마 셔츠, 느슨한 실루엣의 가운인 로브도 심심찮게 등장했다. 이런 가운데, 런웨이(runway)뿐 아니라 ‘리얼웨이(realway)’, 즉 실생활에서 입을 옷을 고를 때도 영감을 줄 만한 세 디자이너의 쇼를 살펴봤다. 지금 눈여겨본 이 옷들을 내년 봄 길거리에서 볼 확률이 굉장히 높다.

에이치 에스 에이치(Heich Es Heich) - 줄무늬를 입는 방법

두 가지 패턴이 충돌하는 재킷

에이치 에스 에이치’의 디자이너 한상혁은 매번 어떤 깜짝쇼를 보여줄지 기대하게 만든다. 지난 시즌에는 피날레 무대에서 가방을 실은 드론을 출현시키더니, 이번에는 영화 <스타워즈>의 다스 베이더와 스톰트루퍼를 런웨이에 올렸다. 단순히 재미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컬렉션의 주제인 ‘충돌과 대결(Versus)’에 부합하도록, 흑(다스 베이더)과 백(스톰트루퍼)의 대결을 성사시킨 것이다. 한상혁이 의도한 ‘충돌’은 옷 한벌 안에서도 일어났다. ‘아수라 백작’처럼 왼쪽은 흰색, 오른쪽은 줄무늬인 재킷, 왼쪽 다리는 흰색, 오른쪽 다리는 검은색인 바지 등이 돋보였다.

컬렉션 전반을 채운 줄무늬도 색면과 빈 공간이 교차·충돌하는 느낌을 자아냈다. 브레통 셔츠(Breton Shirt, 오늘날 줄무늬 티셔츠의 기원인 19세기 프랑스 해군 유니폼)를 재해석해 줄무늬의 두께와 간격을 넓힘으로써 조금 묵직한 느낌을 살렸고, 셔츠뿐 아니라 재킷, 바지, 티셔츠 등 거의 모든 종류의 옷에 이 줄무늬를 적용했다. 파란색과 검은색 줄무늬는 포인트로 허리 등에 짧게 한두줄 넣은 밝은 주황색과 만나 생기가 넘쳤다.

쇼 전반에 쓰인 줄무늬 패턴

'테일러링'을 기반으로 매시즌 남녀를 막론하고 잘 만든 '수트'를 선보인 한상혁은 이번에는 '스포티즘'을 가미했다. 상의가 재킷이라면 아래에는 트레이닝 팬츠를 입는 식이었다. <보그 코리아>의 신광호 패션 뉴스 디렉터는 "한상혁은 큰 기업에 속해 있을 때나, 개인 브랜드를 시작한 지금이나 흠잡을 수 없는 제품의 완성도를 보여준다. '운동'과 '건강'이 패션계 전반에 퍼진 트렌드인데, 그 큰 흐름을 농구 유니폼을 테마로 해서 가죽이라는 소재로 아주 고급스럽게 풀어냈다. 물론 쇼에 나온 옷을 입고 진짜 '운동'을 하긴 어렵겠지만, 옷을 입는 즐거움을 선사하는 컬렉션이었다"고 에이치 에스 에이치의 쇼를 설명했다.

쇼에 등장한 스톰트루퍼와 요다가 그려진 농구저지를 입은 모델

문수권(MunsooKwon) - 봄버재킷은 여전히 유효하다

디자이너 권문수의 이번 컬렉션 테마는 '귀어(歸漁)', 21세기의 젊은이들이 '어업'에 종사하러 어촌으로 떠난 상황을 패션으로 풀어냈다. 이제는 방구석에 앉아 실시간으로 대서양 건너 열리는 뉴욕 패션위크를 스마트폰으로 구경할 수 있는 시대다. 어촌으로 떠난 패셔니스타에게도 예외란 없다. 인스타그램 피드에 넘쳐나는 '신상'을 확인하고, 해외 편집매장 사이트에 들어간 후, '한국으로 배송', 즉 '직구'버튼을 누르는 건 요즘 세상에 일도 아니다. 권문수의 옷은 그 세련된 남자의 패션을 형상화했다. 시원한 시어서커(지지미)소재의 수트, 트렌치코트, 봄버재킷 등 남성 캐주얼 패션이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층위를 보여줬다.

컬라풀한 PVC 소재를 덧댄 항공재킷과 짧은 반바지

이번 컬렉션에서 눈에 띈 건 '봄버 재킷' 혹은 '항공 점퍼', 'MA-1 재킷'으로 불리는 아우터였다. 1950년대 미 공군과 해군 조종사들에게 지급된 방한옷으로 수십 년의 역사 동안 스킨헤드 패션, 힙합 패션 등에 차용되며 클래식한 아이템으로 자리잡았다. 최근 몇 시즌 동안 외국 고급 브랜드와 국내 스트리트 브랜드를 가리지 않고 너도나도 봄버재킷을 선보였는데, 문수권은 이 흔해진 옷과 정면으로 승부했다. 권문수 디자이너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아이템이지만 문수권의 옷처럼 보일 수 있게 유머를 더했다. 이번 컬렉션은 실제로 낚시를 갔을 때 영감을 받은 것들을 표현했는데, 물고기를 유혹하는 형광색의 낚시찌에서 착안해 봄버재킷 옆에 피브이시(PVC) 소재의 반짝거리는 반사 테이프를 부착했다”고 말했다. 프랑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유명 패션 블로거 다이앤 퍼넷(Diane Pernet)도 문수권의 옷이 익숙하지만 특별하다는 점에 동의했다. 그는 “클래식함을 유지하면서 스포티하게 풀어낸 것이 굉장히 신선했다. 스타일링이 흥미로웠으며 좋은 의미로 상업적인 컬렉션이었다”고 말했다.

쇼 전반부에 등장한 시어서커 소재의 수트는 봄·여름의 옷답다는 평가를 하기 충분했다. 하늘색과 흰색이 섞인 청량한 색감에, 몸과 닿는 면을 최소화하기 위해 일부러 울퉁불퉁한 조직으로 생산한 시어서커 원단은 스타일 면에서나 기능 면에서나 완벽한 선택이었다. 밑위가 한껏 내려가는 헐렁한 핏의 바지는 “어부들의 바지에서 착안했다”고 권문수 디자이너는 전했다.

또한 기존 문수권 컬렉션에서 볼 수 있었던 '짧은 반바지'도 어김없이 16S/S에 나타났다. 그는 문수권의 두 번째 컬렉션인 13 S/S부터 허벅지 중간까지 오는 길이를 유지했다고 설명했다. 주목할 점은 무릎 위가 마지노선인 줄 알았던 수트 하의도 과감하게 짧아졌다는 것이다. 권문수 디자이너는 "(짧은 하의는) 디자인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더워지는 여름철에 실용적인 역할도 한다. 한번 (이런 디자인을) 입어보면 계속 입을 것 같다."며 '쿨비즈(여름을 시원하게 보내기 위한 비즈니스룩)'의 미래는 더더욱 짧은 하의가 될지도 모른다는 재밌는 상상을 하게 했다.

시어서커 수트와 어부의 모자에서 영감을 받은 모자

더 클라이맥스(The Climax) - 2016년을 사는 ‘테디 걸’

신진 디자이너의 등용문 '제너레이션 넥스트(Generation Next)'의 첫 무대는 더 클라이맥스가 열었다. 서울패션위크 데뷔무대를 치른 이지원 디자이너는 일본 문화복장학원에서 공부하고 브랜드 미하라 야스히로에서 경력을 쌓았으며, 15S/S 시즌부터 자신의 옷을 공개했다. 이전에는 검은색을 주조색으로, 다소 차분한 색감과 양성적(앤드로지너스)인 실루엣, 1950년대 테디보이(로큰롤에 심취하고 기성세대에 반항적인 기질을 가진 세대. 긴 재킷과 정장 바지로 차림새는 단정하나 퇴폐적·반항적인 느낌을 줌)룩을 선보였다면 16 S/S에는 브랜드가 갖고 있던 기존의 이미지는 그대로 유지하되, 여성적이고 로맨틱한 요소를 더했다.

컬렉션의 제목은 '로맨틱-쥬이시-맘(Romantic-Jewish-Mom)', 말 그대로 '로맨틱한 유대인 엄마'다. 이지원 디자이너는 이번 컬렉션에서 "유대교 남성이 입는 종교의상을 여성화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유대교 남성들이 입는 긴 길이의 프록코트(frock coat)는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었는데, 특히 얇은 시폰소재를 더해 남성적인 이미지를 많이 덜어냈다. 또한 유대인들이 기도할 때 걸치는 숄 '탈릿(tallit)'를 연상시키는 분홍색 줄무늬 숄, 러플이 달린 실크 셔츠가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비록 옷의 형태는 유대인의 패션을 차용했지만, 첼시부츠(굽이 낮고 옆쪽에 고무밴드가 붙어 있는 발목 길이의 부츠) 클리퍼(테디보이, 펑크족이 즐겨 신던 통굽 구두) 같은 신발로 더 클라이맥스가 테디보이 패션에 근간하고 있다는 걸 드러냈다.

유대인들이 걸치는 의복을 연상시키는 분홍색 줄무늬 숄

더 클라이맥스의 쇼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아이템은 '카바나 셔츠(Cabana Shirts). '큐반 칼라 셔츠(Cuban collar shirts)라고도 불리며 '오픈 칼라'의 형태로, 보통 셔츠에 달리는 단추가 1~2개쯤 없다고 보면된다. 카바나 셔츠는 최근 남성복 컬렉션에서 자주 보였는데, 더 클라이맥스는 이 거칠고 자유로운 분위기의 셔츠를 차분한 검은색을 사용해 몸에 흘러내리는 우아한 셔츠로 탈바꿈시켰다. 쇼 내내 등장한 '벨보텀 팬츠(bell bottoms pants)', 쉬운 말로 '나팔바지' 역시 이번 시즌의 트렌드를 제시하는 듯했다. 이지원 디자이너는 "이번 컬렉션에는 총 네 가지의 벨보텀 팬츠가 있다. 데님 위에 실크 시폰을 겹치거나, 실크를 전체적으로 사용했다"며 단순히 밑단이 넓게 퍼지는 것을 넘어, 브랜드의 개성을 옷에 적절히 녹여냈음을 드러냈다.

<엘르 코리아>의 허세련 에디터는 "요즘 젊은이들이 입고 싶고, 사고 싶은 스타일을 명확하게 집어냈던 쇼"라며 "블랙과 페일핑크 두 가지 색깔만으로 매우 트렌디한 컬렉션을 구성해낸 신인 디자이너 이지원의 능력이 돋보였다"고 이번 컬렉션을 평가했다.

남성복에 자주 등장한 카바나 셔츠를 원피스 형태로 여성스럽게 표현했다

* 이 글은 <한겨레>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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