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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탈북자들의 증언이 무너지는 이유

탈북자들은 인터뷰를 하는 사람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잘 알고 있다.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나 미국 의회, 서구 언론을 불문하고 질문은 한결같다. "왜 북한을 떠났나? 그곳에서의 삶은 얼마나 끔찍했나?" 그들의 이야기가 끔찍하면 끔찍할수록 더 많은 관심을 받는다. 국제적인 행사에 초청받는 일이 늘어날수록 수입이 늘어난다. 비극적이고 충격적인 이야기들의 경쟁, 이것이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 NK News
  • 입력 2015.10.29 08:18
  • 수정 2016.10.29 14:12
ⓒgettyimagesbank

탈북자 인터뷰를 통한 학술·정책 연구가 가지는 윤리적 문제점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는 2004년 발표한 보고서에서 북한 지도자 김정은을 반인도주의 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기소하고 이 사건을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북한은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의 입국을 거부해왔다. 대신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는 이 보고서 발간을 위해 잘 알려진 탈북자 신동혁을 포함하여 한국, 일본, 영국, 미국에 거주하는 240명의 북한이탈주민과 비밀 인터뷰를 진행했다.

2015년 1월, 북한 정부는 신동혁의 이야기가 거짓이라고 주장하며, 신 씨의 아버지를 촬영한 비디오를 내보냈다. 의혹이 제기되자 신 씨는 자신이 쓴 책에 있는 이야기의 일부분, 14번 수용소에 관련된 장과 그가 고문당했다고 주장한 나이가 사실이 아님을 고백했다.

북한 주민들의 이야기가 나중에 가서야 신뢰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밝혀진 경우는 여럿 있었다. 이순옥은 2004년 미국 하원에서 정치범 수용소에서 이루어지는 고문과 기독교인들에게 철물을 부어 화형하는 것에 대해 증언했다. 이후 이 씨는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된 적이 없는 경미한 경제사범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비슷한 사례로, 권혁은 미국 의회에 자신이 베이징에 있는 북한 대사관에서 정보를 담당하는 관리로 일했다며 정치범 수용소에서 생체실험을 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이는 2004년 미국 의회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이 통과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연합뉴스가 권 씨는 단 한 번도 그러한 정보에 접근했던 적이 없었다는, 그의 신변에 관한 의문을 제기했다. 이후 권 씨는 대중의 관심에서 잊혀졌다.

북한 정권이 심각한 인도적 범죄를 저질러왔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탈북자들의 증언을 신뢰할 만한 증거로 삼는 데에는 근본적인 회의가 존재한다. 미국의 북한인권결의안과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는 북한에서 살던 사람들의 구술 증언에 상당 부분 의존한다. 북한학 연구자들과 정책 분석 역시 탈북자들의 증언을 정보로 사용한다. 로스엔젤레스타임스의 전 서울 특파원 바바라 데믹이 저술한 세계적 베스트셀러 'Nothing to Envy (세상에 부럼 없어라)'는 탈북자들의 증언에 전적으로 의존한 대표적인 비 학술서적이다.

필자 역시 1999년부터 북한과 인권 문제를 연구하면서 북한이탈주민들을 인터뷰해 왔다. 필자의 경험은 북한인권문제에 접근하는 연구방법론에 대해 논의할 점이 있으며, 연구자들은 심각한 윤리적 딜레마를 상대해야는 점을 시사한다.

미심쩍은 신뢰성

일차적인 문제는 북한이탈주민을 인터뷰하는데 돈을 지불하는 것이 이 분야에서 관행으로 굳어진 데서 기인한다. 필자가 한국과 중국에서 북한이탈주민 인터뷰를 시작한 1990년대 후반, 원래의 취지는 인터뷰 대상자에게 식대와 교통비 명목으로 3만원 정도를 지급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작년 5월 필자는 연구 프로젝트를 위해 탈북자들과 인터뷰를 하며 시간당 약 20만원의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통일부 공무원은 북한이탈주민을 인터뷰 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가진 정보의 질에 따라 시간당 5만원에서 50만원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관행은 연구 윤리 측면에서 심각한 질문을 제기한다. 진실을 알아내는 과정에서 연구자가 확보한 근거의 금전적인 가치는 얼마인가? 인터뷰에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인터뷰 대상자의 발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비용을 지불함으로써 연구자와 증언자의 관계는 어떻게 변화하는가? 인터뷰 대상자들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가 희귀할수록 비용은 올라간다. 인터뷰에 참여하는 탈북자들은 언론이나 서구 국가들의 의회, 유엔에서의 공개를 목적으로 상당한 비용이 지급되면 '더 잘 팔리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다. 탈북자들의 증언은 증명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이순옥이 기독교인들을 화형에 처한다고 했던 것이나 김혜숙이 아이를 죽여 장터에 내다 판다고 했던 것처럼 아예 꾸며진 이야기인 경우도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일대일 인터뷰가 과장되거나 부정확한 정보를 생산해내는 경우가 잦다는 것이다. 비록 복수의 정보를 교차점검 하여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는 방법이 있지만 이 작업은 몹시나 시간이 걸리며 출처가 한 명인 정보의 경우 증명하기 어렵다.

2010년을 기점으로 탈북자의 수가 2만 명에 이르면서 앞서 언급한, 직접 목격한 적이 없이 들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구술 증언의 문제점은 완화되었다. 자신이 겪은 일을 증언하는 것이 표준이 되었지만 동시에 나이가 어린 희생자들이 연루된 더욱 비극적이고, 극적이고, 생생하며 감정에 호소하는 내용들이 증가했다.

할아버지가 요덕수용소에서 10년을 보낸 정치범인 강철환과, 개천에 위치한 14번 수용소에서 정치범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주장하는 신동혁 모두 지독한 수용소 경험을 공유했다. 'The Aquariums of Pyongyang (평양의 어항)'의 공동저자 강철환은 '14호 수용소로부터의 탈출: 북한에서 자유세계로 탈출한 한 탈북인의 놀라운 여정'의 실제 주인공인 신동혁 이전에 등장한 소수의 정치범 중 한 명이었다. 둘 모두 전 미국대통령 조지 부시를 만났다. 강 씨는 보수언론인 조선일보의 기자가 되었고, 몇몇 인권단체를 설립하였다. 신 씨의 이야기는 국제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다큐멘터리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탈북 활동가 신동혁 | 사진 출처: US Mission Geneva

북한이 이들이 말하는 증거를 무시하는 것은 놀라울 것이 없지만 북한 정부만 신 씨의 주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삼촌이 14번 수용소장으로 있던 탈북자 강명도를 포함한 많은 유명 탈북자들은 신 씨의 이야기가 거짓이라고 주장했다. 2015년 신 씨는 그의 책에 등장하는 일부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라고 고백하였고, 이는 그의 증언의 신뢰도에 의문을 남겼다.

내재적인 어려움

더욱 큰 복잡성은 북한을 탈출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 행세를 하거나 신분을 세탁하며 이름을 바꾸는 일이 흔하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일곱 개의 이름을 가진 소녀: 어느 탈북자의 이야기'의 저자 이현서는 중국과 한국에서 다른 이름을 사용하거나, 살아남기 위해 중국인인 척 했던 경험을 말했다. 신뢰할 만한 연구자가 탈북자들과 인터뷰를 할 때 이처럼 계속 신원을 바꾸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또는 그 증언들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그 연구자가 북한 사회에 대해 얼마나 잘 아는지에 달려있다.

이와 함께 연구자의 국적과 성별, 나이는 인터뷰하는 탈북자의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한국어를 할 줄 모르는 나이 많은 백인 남성 연구자와 한국 국적의 젊은 여성 연구자가 듣는 이야기는 다를 것이다. 영어 통역을 거친 인터뷰와 달리, 한국어 구사 능력은 증언에 드러나는 미묘한 어감 차이와 민감한 정보를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와 미국 의회의 청문회는 통역자에게 의존하고 있으며, 이는 많은 세부 정보가 유실되거나, 잘못 전달됨을 의미한다. 또한 문제는 단순히 통번역 과정에서 일부 정보가 사라진다는 사실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어의 언어적 특성상 젊은 연구자와 나이 많은 탈북자 사이에 위계가 형성될 수도 있다. 젊은 연구자들은 나이 많은 탈북자에게 존댓말을 써야 하는 반면, 반대의 경우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탈북자들을 인터뷰할 때, 연구자의 성별 역시 또 다른 변수이다. 연구자의 신체적 특징, 성격, 혼인 유무, 교육 수준, 가정 배경에 대한 언급은 매우 흔하지만, 통역자를 동반한 백인 남성 연구자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지는 않을 것이다. 연구자들은 자신의 국적과 언어, 성별, 인종, 나이가 탈북자와의 관계에서 변수가 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탈북자들은 인터뷰를 하는 사람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잘 알고 있다.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나 미국 의회, 서구 언론을 불문하고 질문은 한결같다. "왜 북한을 떠났나? 그곳에서의 삶은 얼마나 끔찍했나?" 그들의 이야기가 끔찍하면 끔찍할수록 더 많은 관심을 받는다. 국제적인 행사에 초청받는 일이 늘어날수록 수입이 늘어난다. 비극적이고 충격적인 이야기들의 경쟁, 이것이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이는 한국에서 폐지를 줍거나 화장실을 청소하며 돈을 버는 일보다 나은 삶이다.

묻히는 진실

16년 동안 탈북자에 대해 연구하며, 필자는 모순적인 이야기와 고의적인 생략, 거짓말을 수 없이 많이 경험했다. 또한 사기와 불법행위에 연루된 일들을 목격하기도 했다. 한 번은 연구를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을 정도로 신뢰를 잃은 적도 있다. 이러한 사건들은 믿을 만한 이야기를 걸러내 윤리적인 방식으로 전달하고 분석하는 필자의 학술적인 역량에는 긍정적 영향을 미치기도 했지만 필자가 진지하게 천착해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 방식에 대한 개인적 신뢰에는 심대한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거짓 증언은 북한인권 문제를 다뤄온 활동가와 연구자들에게 치명적이다. 많은 탈북자들은 이러한 현상의 근원을 탈북 활동가에 대한 시장압력이라고 밝혔다. 22호 수용소의 간수로 일했던 안명철은 대중들이 충격적인 이야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탈북 활동가들은 단순히 그에 맞춰 반응할 뿐이라고 말했다. 15호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었던 정광일은 책과 미디어를 통해 얻은 유명세가 탈북 활동가들을 옥죄기도 한다고 말했다.

영국에서 '재영한민족협회(Korean Nationality Residents Association)'를 설립한 최승철 대표는 "많은 북한 사람들은 북한의 인권침해 실태에 대한 큰 그림이 사실에 부합하는 한, 작은 오류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는다. 우리 북한 사람들은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알지만, 동시에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나 미국의 북한인권결의안과 같은 커다란 정치적 움직임을 망치고 싶지 않다"고 강조했다.

여전히 분명하지 않은 것은 정보기관으로서 국가정보원의 역할이다. 국정원이 어느 정도로 탈북자들의 활동에 개입하는지 파악하기는 어렵다. 국정원의 개입이나 탈북자들의 거짓, 과장은 북한의 인권실태에 대한 자료 조사 보고서나 논문의 질적 하락을 불러와 북한인권 연구나 궁극적으로는 그 개선에도 악영향을 미칠 위험이 크다.

이 글을 쓴 송지영은 싱가포르 경영대학교의 교수이자 Human Rights Discourse in North Korea의 저자입니다. 최하영이 번역했으며 메인 사진은 Rohan Radheya가 찍은 것입니다. 원문은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글은 Asia & the Pacific Policy Society's Policy Forum과 송지영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 이 글은 NK News 한국어판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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