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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16일 08시 23분 KST | 업데이트됨 2016년 10월 16일 14시 12분 KST

도쿄 신주쿠 벼룩시장 | 도쿄 젊은이들의 취향 집합소

도쿄에만도 벼룩시장이 워낙 많지만 그중 도쿄 도청 근처에서 열리는 신주쿠 벼룩시장은 추천할 만한 명소다. 규모가 아주 크진 않지만 전문 상인들보다 가진 물건을 처분할 개념으로 짐을 싸온 이들이 많아 다른 곳보다 값이 저렴하다. 셀러들 중 상당수가 젊은이들인데 가진 물건들을 판매하는 이들이 대다수고 더러는 아예 즉석에서 뜨개질을 해 작은 파우치 같은 것들을 판매하기도 한다. 물건의 종류도 제각각인데다 가격도 대중이 없다. 사고 싶은 가격을 대충 제시하면 신기하게도 대부분 그 가격에 낙찰받을 수 있다. '부르는 게 값이다'란 말의 주체를 판매자가 아닌 구매자에게 적용시켜도 크게 무리가 없는 공간이 바로 이곳인 셈이다.

각국의 벼룩시장에는 그 장소와 짝을 맞출 수 있는 '셀러(Seller)'들이 존재한다. 가령 파리의 벼룩시장을 떠올리면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할머니들이 떠오른다. 그들은 주로 집에서 쓰던 낡은 그릇들을 판매한다. 반면 동유럽의 벼룩시장을 대표하는 셀러의 이미지는, 배가 남산처럼 나온 중년 남성의 모습이 압도적이다. 헝가리나 불가리아에서 만난 이들은 사실 판매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듯, 그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느라 바빴다. 아직 가보지 않았지만 미국 포틀랜드의 벼룩시장으로 간다면, 청바지에 체크 셔츠를 입고 부츠를 신은 카우보이가 셀러로 나와 1950년대의 낡은 가구를 팔지 않을까 싶다. 도쿄 벼룩시장의 셀러들을 나름 규정해보자면, 야구치 시노부의 영화 <워터보이즈>에 나오는 오합지졸 청춘들이 떠오른다. 주말이면 다들 이곳에 나와 회합을 하고, 그렇게 번 돈을 가지고 다시 취미를 위해 수집품을 사러 나갈 것 같은 풋풋한 청춘의 이미지.

도쿄에만도 벼룩시장이 워낙 많지만 그중 도쿄 도청 근처에서 열리는 신주쿠 벼룩시장은 추천할 만한 명소다. 규모가 아주 크진 않지만 전문 상인들보다 가진 물건을 처분할 개념으로 짐을 싸온 이들이 많아 다른 곳보다 값이 저렴하다. 셀러들 중 상당수가 젊은이들인데 가진 물건들을 판매하는 이들이 대다수고 더러는 아예 즉석에서 뜨개질을 해 작은 파우치 같은 것들을 판매하기도 한다. 물건의 종류도 제각각인데다 가격도 대중이 없다. 사고 싶은 가격을 대충 제시하면 신기하게도 대부분 그 가격에 낙찰받을 수 있다. '부르는 게 값이다'란 말의 주체를 판매자가 아닌 구매자에게 적용시켜도 크게 무리가 없는 공간이 바로 이곳인 셈이다. 이곳에서 건진 쓸데없는 전리품 중 하나는 단돈 450엔짜리 빈티지 드레스였다. 셀러가 자신이 입던 원피스라며 구매를 종용했다. 핑크빛 볼터치를 한 예쁜 소녀와 나의 간극은 어림짐작해도 구만리. 도통 어울릴 것 같지는 않았는데, 코디 방법까지 알려주며 시도해보라는 통에 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그 원피스는 지금 장롱 한구석을 얌전히 차지하고 있다.

디즈니 캐릭터 피규어는 거의 강탈에 가까운 가격으로 구매해 와서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물건이다. 판매자는 청년 셋. 일본 배우인 카세 료 두 명과 츠마부키 사토시 한 명의 결합 같았던 세 청년이 돗자리 두 개를 이어붙여놓고 앉아 있었는데, 셋은 룸메이트라고 한다. "이제 이사를 가게 됐어요. 그래서 물건들을 다 처분하려고요." 카세 료처럼 생겨서 안경을 낀 순진한 청년이 말을 건다. 미야모토 테루의 소설 『우리가 좋아했던 것』에서 어느 날 갑자기 함께 한 집에 살기로 의기투합했다가, 우정과 사랑, 진로가 엮이면서 흩어졌던 네 남녀가 떠올랐다. 그런 경우라면, 당연히 집 안을 채웠던 물건들이 처치 곤란이 되어버린다. 세 청년의 전리품을 보아하니, 같은 집에 사는 남자임에도 취향이 제각각이다. 한쪽이 온통 디즈니 피규어라면, 다른 쪽은 온통 스포츠카 모형, 또다른 쪽은 에반게리온 모형만 잔뜩 가지고 나왔다. 세 남자가 함께 사는, 이들 수집품이 자리를 차지했을 도쿄의 작은 다다미방을 상상해본다. 청년은 램프의 요정 지니와 피터 팬과 미키마우스와 미니마우스를 골라든 내게 통틀어 200엔을 제시했다. "정말이니?"라고 묻는데, 그가 얼른 고개를 끄덕인다. 인심 한번 후하네 하고 돈을 건네려는 찰나, 아니나 다를까 다른 손님에게 물건을 팔고 난 츠마부키 사토시 같이 생긴 청년이 제동을 건다. 하나에 50엔이 아니라 하나에 500엔으로 총 2천 엔이라는 것이다. 곧 두 청년의 일본어 난상 토론이 시작됐다. 대화가 끝이 없다. 그냥 실수였으니 정정하겠다고 해도 나쁘지 않은 금액인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청년들은 그러질 못한다. 결론은 그냥 모두 200엔에 가지고 가란다. 제대로 2천 엔을 지불하겠다고 하는데도 카세 료처럼 순하게 생긴 청년은 어디까지나 자기가 가격을 잘못 불렀으니 상관없다며 극구 사양한다. 카세 료와 츠마부키 사토시를 놓고 둘 중 하나의 편을 들어준다는 건 여러모로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미안하게도 나는 200엔을 내고 디즈니 캐릭터를 '강제연행'해온 염치없는 고객이 됐다. 두 친구 사이에 이후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서로 다른 길을 가기로 하고 짐을 처분하러 나온 거였다니 아마 오랫동안 서로 보지 않게 됐을지도 모르는데, 그들의 마지막에 내가 분란을 일으킨 것 같아 괜스레 미안해졌다. 어쨌든 신주쿠에서의 그날은 이른 봄, 쌀쌀한 기운을 머금고 돗자리에 앉아서 멋쩍어하던 청년의 미소처럼, 풋풋함이 가득한 기억으로 남게 됐다. 역시 어리바리한 판매자였다는 점에서는 이와이 슌지 감독의 로맨틱함보다는 야구치 시노부 감독의 코믹함에 더 가까웠지.

이제는 꽤 알려져 있지만, 아직 도쿄에서 벼룩시장을 찾아가지 않았다면 꼭 한번 들러보길 바란다. 주말마다 각지에서 벼룩시장이 열리는데 벼룩시장의 일정과 장소를 알려주는 웹사이트가 구비되어 있어, 일정을 잘 체크하면 벼룩시장 투어도 가능하다. 신주쿠 말고도 하라주쿠의 요요기 공원(代々木公園)에서도 주말마다 벼룩시장이 열리는데, 이 벼룩시장이 좀더 규모도 큰데다 인디밴드들의 공연까지 함께 열려 물건을 사지 않아도 볼거리가 상당하다. 역시 젊은 기운이 충만한 벼룩시장이다. 신주쿠 벼룩시장이 오합지졸 이미지인 반면, 요요기 공원 벼룩시장은 조금 더 프로페셔널한 상인들이 많아서 조직적인 기운이 넘친다.

도쿄 벼룩시장의 물건들을 면밀히 관찰한 결과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이곳은 '덕질'이 일반화된 일본 청춘들의 하나의 놀이터가 아닐까? 캐릭터 피규어처럼 취향이 반영된 각종 물건들을 잔뜩 싸들고 나와 벼룩시장의 돗자리 위에 전시하고 팔리길 기다리는 건, 그들에게 또다른 전리품을 획득할 공간이 필요하다는 의미기도 하다. 내게 디즈니 캐릭터 피규어를 처분한 그 청년은 이제 마블의 캐릭터 피규어로 수집 목록을 옮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얼떨결에 나처럼 200엔의 행복을 취하는 사람도 생기는 거고.

* 이 글은 필자의 저서 <시간 수집가의 빈티지 여행>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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