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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교과서는 날조의 표본이다?

ⓒ연합뉴스

정부가 중·고교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방침을 확정한 가운데 북한 교과서의 왜곡 실태는 어떤지 관심이 쏠린다.

여권 일각에서는 한국사 검정교과서 일부가 북한의 주장을 여과 없이 서술한 것을 넘어 좌편향적 내용으로 "친북 사상을 퍼뜨리는 숙주"라는 비판까지 하고 있다.

야권에서는 한국사 교과서가 국정으로 발행되면 북한과 마찬가지로 역사 왜곡이 벌어질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북한 교과서는 북한의 3대 세습 체제를 극단적으로 미화하고 항일투쟁사까지 왜곡하는 등 '날조의 표본'이라는 지적이 역사학계의 중론이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서옥식 초빙연구위원은 11월 출간 예정인 저서 '북한 교과서 대해부-역사와 정치사상교육을 중심으로'에서 북한 교육도서의 왜곡 실태를 고발했다.

저서 일부를 미리 입수해 북한 교과서 내용의 백태를 구체적으로 살펴봤다.

◇ "하늘이 낸 옥동자 백두밀영에서 출생"…김정일 출생지 조작

북한의 중학교 5학년 사상교육서 등 교과서들은 김정일이 '백두산 밀영'에서 태어났다고 썼다. 이곳은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 조직인 조선인민혁명군 총사령부가 있었던 곳이다.

김정일을 '백두산의 아들', '하늘이 낸 옥동자' 등으로 치켜세우며 "탄생 소식이 인민들에게 조국광복의 희망과 신심을 안겨주고 일제 놈들에게 커다란 공포와 불안을 주었다"고 기술했다.

그러나 일본 관동군과 만주군의 문서, 옛 소련정부 기록 등에 따르면 김정일은 북한이 주장하는 1942년 2월 16일이 아니라 1941년 같은 날 연해주의 우수리스크와 블라디보스토크 사이 하마탄이란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북한 화폐에 등장한 백두밀영

이곳은 일본군 토벌대의 공격으로 패주한 김일성이 1940년 10월 소련에 들어간 뒤 저우바오중(周保中) 휘하 동북항일연군 소속으로 1년 반 가량 야영생활을 하던 곳이다.

서 위원은 "북한이 김정일 출생지를 백두밀영(白頭密營), 출생일은 1942년 2월 16일로 조작한 것은 김정일을 '백두산의 아들'로 만들어 김일성 왕조를 구축하기 위한 작업"이라고 지적했다.

백두밀영은 해방 당시 함남 혜산군에 있었는데, 북한은 이곳이 1936년 9월 꾸려진 뒤 해방 때까지 조선혁명 사령부가 있었으며 김일성이 항일운동을 하던 중 김정일이 태어났다고 주장한다.

서 위원은 "100% 날조된 주장으로 백두밀영 자체가 실재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북한의 소학교 1학년 교과서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김정일이 어머니 김정숙과 함께 어느 소학교에 둘러 세계지도에 조선과 일본이 모두 빨간색으로 표시된 것을 보고 먹으로 일본땅을 새까맣게 칠했더니 갑자기 일본 전역이 암흑천지가 되면서 폭우가 쏟아졌다는 것이다.

서 위원은 "'그런 얘기가 있었다더라'가 아니라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을 사실인 것처럼 단정적으로 소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 고교 참고서 "김정은 3살 때 총 쏘고 운전 시작"

고급중학교(고교 과정) 학생에게 김정은의 '위대성'을 체득시키기 위해 집필했다는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 혁명활동 교수참고서'에서도 이런 대를 이은 신격화는 계속된다.

"3살 때 총을 쏘았고, 9세 때는 3초 내에 10발의 총탄을 쏘아 목표를 다 명중시키며 100% 통구멍을 냈다. 3살 때부터 운전을 시작해 8살도 되기 전엔 굽이와 경사지가 많은 비포장도로를 몰고 질주했다. 초고속 보트를 시속 200㎞로 몰아 외국 보트회사 시험운전사를 두 번이나 이겼다."

신격화의 원조 대상은 물론 김일성이다.

서 위원은 "교과서를 비롯한 주민 교육용 교재 등에는 김일성이 항일 무장 투쟁 시절 모래로 쌀을, 솔방울로 총알을 만들었으며 축지법을 쓰는가 하면 가랑잎을 타고 큰 강을 건넜다는 황당한 얘기가 나온다"고 전했다.

10살도 안 된 나이에 일본 헌병을 혼내주고, 용마(龍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 돌사태를 내려 일본군을 물리쳤다는 대목에 이르면 실소도 나오지 않는다.

중학교 5학년용 역사교과서 '김일성 혁명역사'

◇ 김일성 항일투쟁사 왜곡 셀 수 없어…"조선노동당 창건까지 날조"

황당무계한 김씨 3대의 유년 시절 신화는 웃음으로 넘길 수도 있지만, 항일투쟁의 역사 등 해방전후사를 왜곡한 대목에서는 심각해지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은 김일성이 1930년대 중국 공산당에 가입한 뒤 유격대를 조직, 항일무장투쟁을 벌였다고 선전한다. 그러나 정작 중국공산당의 공식 자료에는 그런 기록이 하나도 없다.

김일성이 1932년 반일인민유격대를 창설했다거나 이를 모태로 1934년 조선인민해방군을 창설했다는 북한 측 주장을 중국 자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서 위원은 "김일성이 회고록에서 1932년 4월 25일 반일인민유격대를 결성했다고 주장했지만, 이 조직은 이영배라는 인물이 조직한 '안도반일인민유격대'를 자신이 만든 것처럼 조작한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은 이 유격대가 조선인민혁명군의 모태라며 북한군 창건일을 종전의 1948년 2월 8일에서 1932년 4월 25일로 바꾼 뒤 매년 이날을 창군기념일로 지켜오고 있다.

또 북한 역사서 등에는 김일성이 항일무장투쟁을 준비하기 위한 최초의 공산당조직으로 '건설동지사'를 만들었다고 주장하지만, 이것도 허구라고 서 위원은 지적한다.

그는 "김일성은 해방 전까지 조선공산당의 당원이 된 일이 없는 인물인데 이처럼 당 창건을 날조하는 행위를 벌여왔다"고 말했다.

중국공산당 소속 동장영이라는 인물이 지휘한 '소왕청전투'를 김일성이 한 것으로 조작한 중학교 4학년용 혁명역사 교과서도 있다. 서 위원은 "북한 주장대로라면 이 전투는 보천보전투의 수백수천배에 달하는 전과라 할 수 있지만 소왕청방위전투는 두 차례 모두 중국공산당 동만특위(東滿特委) 서기 동장영이 지휘했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사례들 몇 가지만 살펴봐도 북한이 학생들이 공부하는 교과서와 참고서, 지도서 등을 통해 끊임없이 3대 독재 세습체계를 미화하고 근현대사를 왜곡하는지 알 수 있다.

서 위원은 "한민족 5천년의 역사를 착취와 피착취의 계급투쟁으로 기술하고 근현대사를 김일성 가계의 혁명역사로 바꾼 북한의 날조 실태를 조목조목 고발하겠다"고 말했다.

서 위원은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북한 연구로 정치학 박사를 취득했으며, 연합뉴스에서 북한부장과 편집국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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