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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처에 묻힌 7만 5천 개의 지뢰, 조심하세요

ⓒ한겨레

지난 8월28일 오전 인천시 브래덤기념병원에서 이 병원의 진료센터장인 김성환 지뢰피해자 장애등급판정 실무위원회 위원이 민간인 지뢰 피해자 이경옥씨의 왼쪽 다리 방사선 영상을 살펴보고 있다.

민간인은 지뢰를 밟아도 보상을 받지 못했다

지난 8월4일 한반도에 전쟁 위기를 몰고 온 비무장지대 지뢰 폭발로 중상을 당한 김아무개(23) 하사와 하아무개(21) 하사가 받을 수 있는 보상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국방부의 보상 방안에 따르면, 장애등급에 맞춰 현역 복무 시에는 ‘상해후유 보험금’으로 각각 6000만원과 1억원을 받는다. 전역을 하면 상이·보훈 연금으로 각각 200만원과 530만원가량을 매달 받을 수 있다. 반면 민간인 지뢰피해자들은 한국전쟁 종전 이후 62년이 흘렀지만 어떤 보상도 못 받고 있다.

군인·민간인 지뢰 피해자 규모

2011년 강원도 지원으로 사단법인 ‘평화나눔회’(한국대인지뢰대책회의)가 벌인 ‘강원도 민간인 지뢰피해자 전수조사 보고서’를 보면, 강원도에는 228명의 ‘이경옥’이 있다. 정부 조사는 한번도 이뤄진 적이 없었다. 최초의 민간인 지뢰피해자 조사였다. 조재국 평화나눔회 이사장은 지난달 29일 “비인도적 재래식무기금지조약(CCW)을 보면 피해자들의 치료, 재활 및 사회·경제적 회복을 위해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이 조약에 가입한 한국은 이행하고 있는 게 없다”고 주장했다. 한국 정부는 1997년 9월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대인지뢰회의에서 “한국에는 대인지뢰로 인한 희생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북한과 대치선상의 155마일 비무장지대를 제외하면 한국은 그 어떤 지역에도 대인지뢰를 매설해놓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대인지뢰의 사용 금지와 제거를 규정한 ‘오타와 대인지뢰 금지 조약’ 가입을 피하기 위해 정부가 이렇게 주장했다는 게 관련 단체의 해석이다.

2001년 2월 주유엔 대한민국 대표부의 요청으로 국방부가 답변한 자료를 보면, 현재 비무장지대에 묻혀 있는 108만3000여발의 지뢰 말고도 서울 우면산, 인천 문학산, 경기 성남 남한산성, 충남 태안, 대구 최정산, 부산 장산 등 36곳에 7만5000여발의 지뢰가 매설되어 있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전국에,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는 민통선에, 19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올림픽 개최 당시에는 후방지역 방공포 기지 주변에 지뢰가 매설됐다. 국방부는 2010년 미확인지뢰지대에 매설된 지뢰를 제거하기 위해 약 489년이 걸린다고 밝혔다.

피해자 보상 문제의 실마리가 풀리고 있다

지난해 10월15일 한기호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지뢰피해자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민간인 지뢰피해자 문제의 실마리가 풀렸다. 지난 4월16일 국방부는 민간인 지뢰피해자의 접수를 시작했다. 그러나 시행령에 따라 사고 당시 평균 명목임금 기준으로 호프만 계수를 적용하여 ‘위로금’을 계산하면, 1953년 사고를 당한 부양가족이 있는 31살 사망 남성(월평균 임금 110원)은 67만원가량의 위로금을 받게 된다. 반면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이 2012년에 사고를 당할 경우 3억4494만원가량의 위로금을 받는다. 둘의 위로금 차이는 512배다.

조 이사장은 위로금 산정 문제에 대해 “과거의 명목임금이 아닌 현재의 실제 임금 기준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올해 7월8일 기준으로 지뢰피해 위로금 신청자는 180명이다. 이 가운데 임금 상승률이 둔화되기 이전인 1980년 이전 피해자 131명(72.8%)은 상당히 적은 위로금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게 관련 단체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문제 해결까지는 아직 멀었다

이 때문에 현실에 맞게 특별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피해자 단체는 치료 및 의료소모품 비용에 5천만원 정도의 위로금 지급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국방부는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시행령에서 사망자에 대한 최소 위로금 지급 기준이 2천만원이라는 점을 들며 2천만원 미만으로 지급이 가능하다고 밝히고 있다. 국방부는 관련 부처 협의를 통해 이런 내용의 법 개정안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8월13일 국회에서 열린 ‘지뢰피해자 지원대책 간담회’에서 한기호 의원은 “개정안에 나온 그 지급액 내용은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것”이라며 “국방부 시설기획관에 ‘지급액을 2천만원으로 못박지 말라’고 전하며 기획재정부와 더 협상해보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재민 국방부 시설기획관은 지난달 30일 “기재부와 예산 협의를 해보니 베트남전 참전군인의 보상 기준과 형평성 문제가 있다면서 기재부가 원칙적으로 찬성할 수 없다는 의견을 냈다”고 밝혔다. 반면 기재부 국방예산과의 이철영 사무관은 “법이 시행된 지 얼마 안 된 상황에서 그 내용이 타당한지 아직 알 수 없다. 국방부와 협의는 해봤지만 구체적으로 이야기한 적은 없다. (국방부가) 떠미는 것 같다”고 말했다. 조재국 이사장은 “두 부처가 예산 문제를 놓고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며 “광주민주화운동 보상 심의를 국무총리실 산하에서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위원회가 하는 것처럼 지뢰피해자를 위한 지원심의위원단도 관계 기관으로부터 독립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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