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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코펜하겐 빈티지 그릇 상점 | 그릇 애호가들을 위한 타임리프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각종 빈티지 그릇들과 오래된 시계가 늘어서 있다. 눈으로만 탐닉하던 이베이의 세계가 직접 펼쳐져 있는 감격적인 순간. 주인아저씨에게 "내 친구가 얼마 전에 이곳에 다녀갔다"라며 반가움을 표했더니, 그 역시 먼 곳에서 찾아온 손님이 반가운지 격하게 맞아준다. 나는 숙고하여 일본 빈티지 도록에나 나올 법한 그릇 몇 개를 정성스럽게 골라냈다. 아저씨 역시 이 그릇들의 역사를 설명해주며 정성스럽게 포장해주었다. 상점을 나오려는데 도무지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것으로 된 걸까? 조금 더 욕심을 내야 하는 게 아닐까?

  • 이화정
  • 입력 2015.09.24 07:15
  • 수정 2016.09.24 14:12

한동안 이베이(eBay) 접속 빈도수가 부쩍 늘었다. 짬 날 때마다 호시탐탐 들어가는 건 예삿일. 본연의 일을 잊고 이베이의 망망대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니 이건 중독, 맞다. 찾는 아이템은 딱 하나. 바로 찻잔과 접시, 프라이팬, 냄비, 커트러리를 통칭하는 식기류다. 사실 말이 식기류지 입력할 수 있는 검색어의 수는 무한하다. 찻잔만 따져보더라도 종류가 커피 잔, 에스프레소 잔, 티웨어, 워터글라스 등으로 나뉘는데다, 브랜드까지 세분화하면 아라비아 핀란드(Arabia Finland), 피기오(Figgjo), 로열 코펜하겐(Royal Copenhagen), 빌레로이 앤드 부흐(Villeroy&Boch) 등 셀 수가 없다. 여기에 접시, 프라이팬 같은 기타 부엌 용품들을 추가하는 순간, 눈이 빠지고 등짝에 통증이 올 만큼 무한한 검색질이 요구된다. 물건은 주로 버지니아, 매사추세츠, 아이오와 같이 생전 가보지 않은 미주 지역에서 오는 게 대부분이고 런던, 뉴욕, 루마니아에도 얼마든지 산재해 있다. 그러니까 난 밤낮으로 세상의 모든 상인들이 쓰다가 내놓은 그릇들을 끝도 없이 클릭해대는 게 일이 되는 것이다.

간사한 게 취향이라고 나는 취향의 영속성을 믿지 않는다. 그러니까, 내가 이럴 줄은 나도 몰랐다는 거다. 자고로 그릇이란 본연의 목적이 음식을 담고 먹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면 내가 이렇게 그릇에 집착하는 건 미스터리에 가깝다. 일단 난 요리하는 데 전혀 관심이 없으며, 제대로 세팅해서 챙겨 먹는 스타일은 더더욱 아니다. 나름 곰곰이 분석을 해보건대 아무래도 그릇 본연의 속성보다는 '빈티지'라는 요소에 더 끌린 건 아닐까 싶다. 접시 하나에 그릇의 디자인사와 개인의 가정사가 공존하는 오묘한 조화!

덕분에 요즘은 여행을 갈 때도 몸과 마음의 준비를 충실히 하고 간다. 어느 벼룩시장에서 취급 주의를 요하는 깨지기 쉬운 50년 된 찻잔 세트를 만나게 된다면 싹 쓸어올 체력과 구매 의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사실 그래서 내 트렁크 안에는 언제나 '뽁뽁이'라는 비장의 포장 시스템이 함께한다. 가방 안에서 뽁뽁이를 꺼내고 꺼내고 또 꺼내도 마술 상자처럼 솟아나온다.)! 빈티지 그릇 애호가, 특히 미드센트리 모던(Mid-Century Modern) 디자인에 환장하는 나로서 지금의 바람이 있다면, 1950~1960년대 덴마크로 딱 하루만 여행을 가서 그릇 상인들과 수다를 떤 후, 물건들을 죄다 한국으로 배송하고 오는 것이다. 우디 앨런(Woody Allen)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소설가 길조지 윌슨이 1920년대로 가서 자신의 우상인 헤밍웨이와 F. W. 피츠제럴드를 만나 대화를 나누는 환상적인 체험을 한 것의 그릇 버전쯤 되려나.

어쨌든 잠깐이나마 현실적인 타협점을 찾았던 기억이 있다. 바로 덴마크 코펜하겐의 빈티지 스토어에서 말이다. 먼저 코펜하겐을 방문했던 친구가 추천해준 곳으로 '너는 거기에 가면 아마 정신도 못 차릴 것이다'라는 계시를 받은 후였다. 급한 마음에 아침 일찍 아예 숙소를 나서서 그곳을 찾아갔다. 수로를 따라 반지하 상점들이 늘어서 있는데, 쇼윈도에 이베이에서 그렇게 눈독을 들였던 '캐서린홀름(Cathrineholm)' 풀세트가 마치 전시관처럼 디스플레이 되어 있는 '문제의' 상점이 보였다. 너무 서둘러 온 탓인지 아직 상점 문은 열지 않았다. 근처의 카페에 가서 데니시 롤빵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도 시간이 남아 동네의 상점들을 족족 순례했다. 북유럽 특유의 감성이 더해진 각종 소품 숍들부터 옷 가게까지 이곳에 모두 있다. 중고 책을 파는 옆집의 위용도 대단했다. 이 모든 것을 구경하고 나서야 마침내 캐서린홀름을 전시해둔 숍이 문을 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각종 빈티지 그릇들과 오래된 시계가 늘어서 있다. 눈으로만 탐닉하던 이베이의 세계가 직접 펼쳐져 있는 감격적인 순간. 주인아저씨에게 "내 친구가 얼마 전에 이곳에 다녀갔다"라며 반가움을 표했더니, 그 역시 먼 곳에서 찾아온 손님이 반가운지 격하게 맞아준다. 나는 숙고하여 일본 빈티지 도록에나 나올 법한 그릇 몇 개를 정성스럽게 골라냈다. 아저씨 역시 이 그릇들의 역사를 설명해주며 정성스럽게 포장해주었다. 상점을 나오려는데 도무지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것으로 된 걸까? 조금 더 욕심을 내야 하는 게 아닐까? 엄선된 물건들 중에서 또 엄선한 물건을 소량만 들고 나올 수밖에 없으니 마음이 영 불안했다. 그리고 마침내 문제의 사건이 일어났다. 떠올리는 것조차 괴로우니 후다닥 이야기하자면, 결론은 그곳에서 산 밀크자(Milk Jar)가 내 손에 들어온 지 30분도 안 되어 장렬하게 운명했다는 것이다. 무슨 마가 씌었는지, 그날은 어쩐지 비장의 뽁뽁이를 챙겨오지 않았던 것이 1차적 부주의, 그릇을 가방에 넣고 있다 가방을 떨어뜨린 것이 2차적 부주의. 연속된 부주의로 인해 밀크자는 한때 내가 가졌지만, 그렇게 가지지 못한 것이 되어 나의 소유 품목에서 스르르 미끄러져 나갔다. 속이 쓰리지만 정신을 수습하고 좋은 쪽으로 해석해본다. 그러니, 조만간, 다시, 그곳에, 가라는 아름다운 계시일 뿐이라고.

* 이 글은 필자의 저서 <시간 수집가의 빈티지 여행>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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