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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 100만원 임대주택? 뉴스테이, 누굴 위해 짓는가

  • 허완
  • 입력 2015.09.05 12:11
  • 수정 2015.09.05 12:17

[토요판] 뉴스분석 왜?

기업형 임대주택 시대

▶ 전월세난이 점차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지난해 전체 가구의 소득 대비 임대료 비율은 20.3%로 나타났습니다. 저소득층은 29%에 이릅니다. 소득 대비 주거비가 25%를 넘으면 유럽에선 국가의 책임으로 본다는데, 박근혜 정부는 지난 2년 반 동안 부동산 경기 활성화에만 골몰했습니다. 정부가 중산층들이 살 만한 월세 주택이라며 내놓은 ‘뉴스테이’의 임대료는 서울 기준 100만원에 이릅니다. 월세 100만원짜리 뉴스테이엔 누가 살게 될까요?

지난 1일 인천 남구 도화동 도화오거리에 위치한 ‘이(e)편한세상 도화’의 모델하우스에 설치된 단지 모형과 위치도. ⓒ한겨레

“만 19살 이상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청약할 수 있습니다. 공공임대와 다르게 청약통장 없으셔도 되고요, 소득 기준도 없습니다.”

도우미의 목소리는 낭랑했다. 발코니를 확장하고 고급 가구들로 치장한, 각각 전용면적 59㎡(옛 18평), 72㎡(22평), 84㎡(25평)인 본보기집(견본주택)을 둘러본 사람들이 낭랑한 목소리의 도우미에게 이것저것 물어댔다. “이게 공공임대랑은 뭐가 다른 건가요?” “벽지 색은 바꿀 수 있나요?” “월세를 더 줄일 수 있는 거죠?” 도우미들은 어떤 물음엔 쉽게 답했지만 어떤 물음엔 충분히 답하지 못하고 물어본 이를 상담소로 안내했다. 계속 다른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비슷한 질문들이 이어졌다.

지난 1일 인천 남구 도화동 도화오거리. 대림산업이 짓고 있는 ‘이(e)편한세상 도화’의 본보기집엔 평일 낮임에도 적지 않은 인파가 드나들었다. 대림산업은 약 89만㎡ 규모인 이곳 도화도시개발사업지구에 지하 2층 지상 29층 아파트 25개동을 짓는다. 전부 2653가구로, 이 중 548가구는 공공임대주택이고 나머진 정부가 중산층 주거안정을 위해 기획한 ‘뉴스테이’다. 뉴스테이법으로 불리는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은 지난달 11일 국회를 통과했다. 서울 신당동과 대림동, 문래동을 비롯해 내년까지 2만가구의 뉴스테이를 공급하는데, 인천의 이편한세상 도화가 처음으로 청약을 시작했다. 본보기집 상담소에선 번호표를 뽑은 이들이 차례를 기다리며 상담을 받았다. 1층 한쪽 구석에 놓인 단지 모형 한쪽에 주민 공동이용시설 안에 들어설 실내 골프연습장 등이 그려져 있었다.

뉴스테이는 정부가 올 초 중산층 주거불안을 해소하겠다며 선보인 기업형 임대주택이다. 이편한세상 도화의 경우 본인이 희망하면 2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해 최대 8년 동안 살 수 있다. 계약 갱신 때마다 적용되는 임대료 상승률은 3% 이내(정부 기준은 5%)이며, 임대료는 84㎡의 경우 보증금 6500만원에 월 55만원, 보증금을 1억3500만원으로 올리면 월 37만5000원이다. 이 금액은 5층이 기준이며, 층수가 낮아지면 월 임대료가 1만원씩 내려간다. 6층 이상은 일괄적으로 5층보다 5000원 비싼 금액이 적용된다. 입주 예정일은 2018년 2월이다.

이곳 홍보관을 다녀갔다는, 도화동과 인접한 인천 송림동에 직장을 둔 김덕수(37)씨는 “도화동 부지는 학교만 많을 뿐 주변에 이렇다 할 생활편의시설이 없는 낙후된 지역이다. 주변 아파트 시세와 견줬을 때 결코 싼 것 같지 않다”고 했다. 인근 한 부동산 중개인도 “인천 남구 일대는 소득 수준이 낮다. 이따금 50만~90만원의 월세 아파트가 나오지만 거의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했다. 주변 시세보다 저렴하게 설계했다는 뉴스테이의 월 임대료에 대한 평가는 몰려든 인파와 달리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대림동·신당동 월세 100만원

지난 5월 정부는 인천 도화동과 함께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과 중구 신당동에 각각 293가구(KCC건설), 729가구(반도건설)의 뉴스테이를 공급하겠다고 했는데, 가장 큰 면적인 59㎡, 44㎡의 월 임대료가 100만~110만원으로 정해졌다. 이때도 뉴스테이의 임대료가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100만원이 넘는 월세를 부담하며 8년 동안 살 수 있는 중산층이 얼마나 될까. 참여연대 등 주거·시민사회·노동 분야 100여개 단체로 구성된 ‘서민주거안정연석회의’는 논평에서 “정부와 국회의 중산층 개념은 보편적 인식과 완전히 다른 차원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소득 5~7분위(전체 가구를 소득 수준에 따라 10단계로 나눈 지표. 1분위 소득이 가장 낮다)를 대상으로 한 높은 월세의 뉴스테이가 과연 중산층의 주거비 부담 완화에 걸맞은 정책인지 근본적 의문이 해결되지 않는다”고 했다. 국회 입법조사처도 “서울 지역에 들어설 뉴스테이의 경우, 소득 8분위 이상이어야 월 임대료를 지불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뉴스테이는 계약 갱신 때 적용되는 임대료의 상승률을 제한하는 규제가 적용되지만, 초기임대료에 대한 규제가 없다. 국토교통부는 “기존 공공임대와 같이 초기임대료 규제를 두게 되면 임대주택의 품질이 떨어지고 공급도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올해 초 선보인 뉴스테이 정책은 현 박근혜 정부 이전부터 문제가 된 전월세 급등을 막고자 내놓은 고육지책이다. 전세 가격은 지난달까지 6년6개월째 오르고 있고, 임차가구 중 월세 비중이 55%를 넘어서는 등 서민과 중산층의 주거불안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지만 정부가 내놓은 대책들은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가 낸 공약집의 ‘행복주거’ 부분(210쪽)을 보면 “집주인도 세입자도 집 걱정, 대출상환 걱정 없는 세상이 옵니다”라고 쓰여 있다. 선거 당시 박근혜 후보는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아 집을 구했지만 과도한 대출 원리금 탓에 집을 포기해야 하는 ‘하우스푸어’를 위해 ‘보유주택 지분매각 제도’와 ‘주택연금 사전가입 제도’를 대책으로 내놨다. 치솟는 전셋값을 감당하지 못해 이곳저곳을 전전해야 하는 ‘렌트푸어’(전월세 난민)를 위해선 ‘행복주택 프로젝트’와 ‘목돈 안 드는 전세 제도’ ‘보편적 주거복지’를 제시했다. 하지만 이들 대책은 사실상 실패한 것에 다름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석 달 이상 연체한 하우스푸어의 부실채권을 한국자산관리공사가 사들이고, 집주인은 자산관리공사에 낮은 이자를 내는 보유주택 지분매각 제도는 지난해 4월 단 한 건의 실적도 올리지 못한 채 폐기됐다. 주택 소유권이 자산관리공사로 이전되는 것을 우려해 대상자들이 채무조정 제도 쪽으로 발길을 돌린 탓이다. 50살 이상인 하우스푸어가 10년 일찍 주택연금에 가입할 수 있게 한 제도도 가입자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지난해 5월까지만 시행됐다. 이 제도가 운영된 1년 동안 이용자는 536가구에 불과했다. 248만가구(주택산업연구원 2013년 기준)로 추정되는 대상 가구 중 턱없이 적은 수가 이용한 셈이다. 철도 부지 같은 국유지를 이용해 보증금과 임대료가 시세의 절반인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행복주택’도 성과는 부진하다. 대선 당시 2017년까지 20만가구이던 목표치가 14만가구로 축소된 데 이어, 그나마도 임기 절반이 지난 현시점에서 사업 승인량은 목표치의 30%에도 미치지 못한다. 목돈 안 드는 전세 제도는 세입자 대신 집주인이 자신의 주택을 담보로 전세보증금을 대출하고 이자는 세입자가 부담하게 한 제도인데, 이것도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이자 일부를 면세하고 납입한 이자만큼 집주인의 소득을 과세 대상에서 빼주는 게 유인책이지만, 전세 대란으로 계약을 하려는 세입자가 줄을 선 마당에 자신의 집을 담보로 대출을 해주는 집주인은 거의 없었다. 박동수 서울세입자협회 대표는 “실효성 없는 제도이자 현실성이 결여된 정책이었다”고 했다.

관련기사 : 1년만에 폐지된 하우스푸어 대책

‘이(e)편한세상 도화’의 모델하우스를 둘러보는 사람들. ⓒ한겨레

뉴스테이가 월세 올릴 수도

정부 스스로도 지난 2일 ‘서민·중산층 주거안정 강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그간 공공임대 공급 확대, 행복주택, 뉴스테이, 주거급여 등 맞춤형 주거지원을 강화해왔으나 아직 성과를 체감하기에 부족하다”고 자평했다. 이날 발표된 방안은 저소득 독거노인과 대학생 등 주거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내년 뉴스테이 공급량을 최대 2만가구로 확대한다는 계획이지만, 평가는 여전히 냉혹하다. 여당인 새누리당의 김성태 의원조차 3일 국회 서민주거복지특별위원회에서 답변자로 나온 김경환 국토교통부 1차관에게 “발표 이후 국민 여론은 ‘특별히 욕먹을 것도 없고, 특별히 잘 마련된 안도 없다. 밋밋하다’라는 것이다. 이런 방안으로 전월세 가격이 안정되겠는가. 재탕 삼탕 하는 정책 같다”고 혹평했다.

여전히 핵심 정책 중 하나인 뉴스테이도 임대료 수준이 현실성 없다는 지적과 함께 “기업형 임대사업자에게 파격적인 특혜”라는 비판을 받는다. 서민주거안정연석회의는 “민간 임대사업자에게 국가·지자체와 지방공사의 택지를 우선 공급하고 촉진지구를 지정할 권한까지 준다. 공공임대와 달리 임대인의 담보권 설정 제한 규제를 없애 세입자의 보증금이 보호받지 못할 위험도 있다. 공공성이 결여된 정책”이라고 했다.

뉴스테이가 외려 민간의 임대료를 올리는 구실을 할 것이란 지적도 있다. 박동수 대표는 “전세의 월세 전환 속도가 더디기를 바라는 서민·중산층의 기대와 달리 정부가 너무 앞장서는 모양새다. 정부가 민간 임대사업자를 위해 내건 ‘연 5% 수익률 보장’도 결국 임대료를 올리거나 임대료 하락을 막는 저지선 구실을 할 것”이라고 했다.

정부의 주거대책이 이렇다 할 효과를 보지 못하면서 집 없는 서민·중산층의 주거불안은 점차 심화하고 있다. 올 2분기 가계의 주거비 지출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달 23일 통계청의 ‘가계동향’을 보면, 지난 4~6월 가계의 실제주거비(월세) 지출은 월평균 7만3900원으로, 2003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높다. 지난해 2분기 6만600원에서 21.9% 올라 증가율도 사상 최고다(통계상의 월세가 지나치게 낮은 이유는 전국 8700개 표본가구 가운데 자가 보유 가구나 전세 가구의 주거비 0원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국토부가 발표하는 ‘주거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2000년대 들어 주택보급률은 100%를 넘어섰지만 자기 소유 주택에 사는 비율인 자가점유율은 1970년 71.8%에서 지난해 53.6%로 떨어졌다. 자가 가구는 지난해 평균 11.2년을 거주한 것으로 조사됐지만 임차 가구는 거주기간이 3.5년에 불과했다. 이미 10여년 전부터 전체 가구 수를 넘는 주택이 공급됐지만 주택 소유는 편중되기만 할 뿐, 집 없는 이들이 납득할 만한 주거비로 원하는 기간만큼 안정적으로 거주하는 일은 난망하기만 하다. 더 근본적이고 전면적인 처방은 없는 걸까.

야당과 시민사회단체에선 세입자 보호를 위해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계약갱신청구권은 2년의 계약기간 만료 뒤 세입자가 한 차례 이상 계약 갱신을 요구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 경우 집주인은 임대료 미납 같은 특별한 하자가 없는 한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결과적으로 임대기간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 전월세상한제는 계약을 갱신할 때 집주인이 제시하는 전월세 인상분에 상한을 두는 것이다. 세입자가 감당하기 힘든 액수를 요구해 계약 갱신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을 막자는 취지다. 둘 다 집주인의 소유권을 제한해 세입자의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계약기간이 늘어날 것을 대비해 집주인이 가격을 한꺼번에 올리는 부작용이 발생하거나, 집주인의 재산권 행사를 막는 반시장적 논리라며 반대하고 있다.

주거권 보장 외면하는 정부

지난 3일 활동기한을 연장한 국회 서민주거복지특위 첫 회의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반복됐다. 이날 쟁점은 특위 활동이 중단된 기간 동안 국토부가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의 효과에 대한 연구용역을 한국주택학회에 맡긴 것이 문제가 됐다. 그동안 주택학회가 이 제도 도입을 반대해왔기 때문이다. 야당 의원들은 “연구의 공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국토부와 여당은 “적법하게 이뤄진 과정”이라고 맞섰다. 이날 특위엔 야당 의원 9명이 모두 참석한 반면, 여당은 9명 중 위원장 대리 구실을 한 이노근 의원과 간사인 김성태 의원만 참석했다.

김상희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특위 질의에서 “전월세 문제는 심각하다고 얘기조차 할 수 없는 지경이고 주택시장은 대전환기에 있는데, 정부는 왜 임차인과 임대인 사이의 기본적 관계 설정에 해당하는 주택임대차보호법을 손도 대지 않으려 하나. (주택임대차보호법 주무부처인) 법무부와 국토부는 아무 근거 없이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를 도입하면 전월세가 폭등한다고 주장해오다 폭등의 근거가 없다는 비판을 받으니 이제 와 편향된 곳에 용역을 맡긴 것 아니냐”고 말했다.

실제 정부와 여당은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으로 전세 계약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린 1989년 전세 가격이 17.6%, 이듬해 16.7% 급등했다고 주장해왔지만 근거가 미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옛 한국주택은행의 ‘주택금융’을 보면, 1987년 19.2% 상승으로 시작된 전세 가격 상승세는 13.8%(1988년), 17.6%(1989년), 16.7%(1990년)로 4년여간 지속됐다. 제도 도입 이전부터 10%대의 상승세가 이미 시작된데다 1991년엔 상승률이 2.0%로 떨어지는 등 제도 도입 이후 오히려 안정세를 보였다. 윤은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간사는 “1980년대 중후반 전세 가격 급등은 경제성장률이 10%를 웃돌고, 3저 호황으로 시중자금이 넘치는 상황에서 주택 가격 급등과 동시에 일어난 현상일 뿐”이라고 했다.

현재로선 올해 말 한국주택학회의 연구용역 결과가 나온 뒤에도 비슷한 갑론을박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다. 스스로 내놓은 주거안정 방안이 별다른 효과를 얻지 못하는데도 정부는 근본적 처방을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인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의 이강훈 변호사는 “국토부는 계약갱신청구권 도입을 반대하고 있는데, 이미 상가임대차 제도에 이를 도입한데다 별다른 부작용 없이 시행 중이다. 독일이나 일본은 주택 부문에 계약갱신청구권을 보장해 세입자가 원하는 기간만큼 살 수 있는데, 왜 이들 나라에선 가능한 것이 우리는 안 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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