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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덜 유명한, 매력적인 영화들 34선

8. 마리포사 Butterfly Toungues 스페인 내전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마리포사]는 그 시대가 폐부 깊숙이 찌르고 들어온다. 이 영화는 더 설명하면 안 될 것 같다. 영화는 아무런 정보 없이, 기대 없이, 준비 없이 볼 때 가장 깊게, 깨끗하게 볼 수 있다. 누군가가 내게 자신이 안 봤을 법한 영화를 추천해 달라고 하면, 제일 먼저 꺼내는 영화.

  • 권성민
  • 입력 2015.09.03 07:47
  • 수정 2016.09.03 14:12
ⓒgettyimagesbank

<왓챠>라는 영화평가 앱이 매력적인 건, 심심풀이 땅콩으로 하다보면 어느새 통계에서 그렇게 찾기 힘들다는 '전수조사'가 된다는 거다. 사실 영화에 별점을 매기며 평론가 놀이를 하는 게 무슨 의미인가 싶지만, 내가 본 영화 전부(!)를 솔직하게 점수 매겨 놓으면 애플리케이션의 추천작이나 예상 별점이 놀라울 정도로 믿을 만해진다는 이점이 있다. 그 매커니즘이야 굉장히 간단하겠지만 '전수조사'인데 오죽 정확도가 높을까.

해서 <왓챠>에 쌓인 관람영화 리스트를 보다가, 꽤 매력적이었는데 봤다고 표시한 사람이 의외로 적은 영화들을 발견했다. 좀 덜 유명한, 나에겐 더없이 매력적인 영화들을 소개해본다.

1. 제이콥의 거짓말 Jakob the Liar (1999)

故 로빈 윌리암스 옹의 영화를 참 많이 봤다. 가장 좋아하는 배우를 꼽으라면 늘 첫 번째로 꼽는 배우이기도 했다.

그의 영화들 중에 가장 오래 기억에 남았던 영화. 물론 아주 어릴 때 봤던지라, 지금 다시 보면 그의 작품들 특유의 작위적인 냄새를 더 짙게 맡을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영화적 휴머니즘은 때론 조금 비현실적으로 허용해 주어도 좋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내용은 간단하다. 나치 치하 폴란드의 유태인 게토 지역, 희망을 잃은 사람들. 하나둘씩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들이 생기자, 주인공은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얼떨결에 뉴스를 들을 수 있는 라디오를 가지고 있다고 거짓말을 하게 된다. 희망을 섞은 뉴스를 전하는 그의 거짓말에 사람들은 점점 활기를 되찾고 그의 거짓말은 점점 커져간다.

[인생은 아름다워]의 어른 버전 같기도 하고, 마지막 장면의 여운으로 크레딧이 올라가는 내내 멍한 표정이 되는 것도 비슷하다.

주인공이 어느 소녀와 왈츠를 추는 장면은, 그의 영화를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장면 같다.

2. 천국보다 아름다운 What Dreams May Come (1998)

역시 로빈 옹의 영화 중 사람들이 비교적 많이 보지 못한 영화. 영화의 내용 자체는 단순하고, 전개도 썩 설득력이 뛰어나진 않아서 사실 내러티브적으로 그리 매력적인 영화는 아니지만, 감각적인 시각효과가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인상을 남긴다. 벌써 20년 가까이 된 영화이니 기술적인 면에서야 지금에 한참 못 미치겠지만, 뛰어난 상상력과 예술성을 갖춘 덕에 영화적 상상이 보여줄 수 있는 수준을 한 계단 올라선 느낌이다. 영화가 개봉한 지 몇 년이나 지나고도 한국의 어느 TV CF에서도 저 시각효과를 따라했을 정도이니 아름다운 영상미만큼은 손에 꼽을 만하다.

미국영화인지라 당연하게도 기독교적 배경에서 '천국'과 '지옥'을 그리지만, 오히려 기독교인들이 보면 굉장히 불경스러워할 법한 묘사들이 많다. 그런데 그런 부분들이 역시 기독교인인 나에게는 '천국'과 '지옥'에 대한 오해를 걷어내고 본질을 꿰뚫는 역할을 했던 것 같다. 내게는 기독교인으로서 상상할 수 있는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굉장히 중요한 인사이트를 주었던 작품이다.

3. 퍼펙트 월드 A Perfect World (1993)

'스톡홀름 신드롬'을 설명할 때 보여주면 가장 적절할 것 같은 영화. 초등학교, 아니 그 때는 국민학교였던 1학년 때 보고 숨을 못 쉴 만큼 울었던 기억밖에 없다. 그만큼 나에게는 '슬픈 영화'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세상 슬펐던 영화.

지금 생각해보면 감독이 클린트 이스트우드 할배라는 사실이 새삼 실감 나는, 마초 냄새 팍팍 나는 영화이긴 하다. 다시 봐도 그때만큼 울 수 있을까.

4. 파우더 Powder (1995)

아마 내가 그맘때 비디오가게 아들이 아니었다면 평생 볼 일이 없는 영화가 아니었을까.

주인공은, 엄마가 그를 임신한 채 번개에 맞아 희귀병에 걸려 태어난 소년이다. 털이 없는 온 몸은 하얗고, 전기가 흐르며, 천재적인 초능력까지 가지고 있다.

어쩐지 마블형 히어로의 탄생 비화와 겹치는 느낌이긴 한데, 실제로 그런 사람이 존재한다면 맞닥뜨리게 될 현실이 마블코믹스와는 얼마나 다를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인상 깊었던 영화 속에서도 유독 기억에 짙게 남아있는 장면은, 세상 신기했던 '야곱의 사다리 (high voltage traveling arc).'

5. 뉴욕의 가을 Autumn in New York (2000)

리처드 기어의 캐스트가 너무 잘 어울리는, 초호화 레스토랑의 경영자이자 매력적인 중년의 바람둥이와 그의 나이의 반도 안되는 불치병 여인, 위노나 라이더의 사랑 이야기.

솔직히 말하면 어디서 본 듯한, 통속극 같은 멜로 영화다. 기억하기엔 관객들의 반응도 그리 좋지 않았던 것 같다. 별로 안 알려진 영화는 대개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왜 아주 어릴 때 봤던 이 영화가 그 뒤로 굉장히 오랫동안 기억에 내내 남아있고, 가을만 되면 약속이나 한 듯 어렴풋이 떠오르는지는 잘 모르겠다. 리처드 기어와 위노나 라이더가 가을과 참 잘 어울려 보였나 보다. 영화 내내 등장하는, 낙엽 진 센트럴 파크도 그렇고 다른 건 몰라도 참 예쁜 화면이 가을스러웠던 영화.

6. 원더풀 라이프 After Life (1998)

죽은 사람이 1주일 간 머물렀다 가는 림보라는 공간. 동사무소 같이 생긴 이곳의 직원들은 망자들을 하나 하나 면담해 생전 가장 행복했던 한 순간을 정하게 한다. 그리고 그 순간을 영화로 만들어 상영관에서 함께 보며, 망자는 진짜 내세로 떠난다는 내용.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출발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두 번째로 만든 극영화이니, 비교적 초기작. 그래서인지, 영화 중간중간, 이게 정말 연기자들이 연기한 영화인지, 다큐멘터리인지 헷갈리는 장면들이 나온다.

이 영화만큼이나, 아니 사실은 그 이상으로 인상적인 그의 다른 작품들 [아무도 모른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 알 수 있듯 그의 작품에는 꼬박꼬박 아이들이 등장하는데, 어쩜 저렇게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아이'의 모습을 영화에 그대로 담았는지 늘 신기했다.

원래 아이가 나오는 영화는 꽤 자주 그 '아역' 때문에 몰입이 끊긴다. 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그건 '어른'의 연기를 흉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애들은 대사처럼 얘기하지 않거든. 영화 속 아이들은 하나 같이 어른스럽다.

그런데 그의 영화에서 등장하는 아이들은 천생 아이다. 정말 내가 알고 있는 '아이들'의 말하고 뛰는 모습 그대로 카메라 앞에 서있다. '상황만 주고 애들끼리 자연스럽게 말하도록 대사를 안 줬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인데, 들어보면 저건 분명히 대사이긴 하다. 도대체 어떻게 연기지도를 하는 걸까 항상 궁금한 영역.

[원더풀 라이프]에서는 어른들의 그런 연기를 볼 수 있다. 이창동 감독의 [시]에서 비슷한 장면이 나오는데, 문화센터 수강생들이 시를 쓰기 위해 자신의 삶을 술회하는 인터뷰 장면들, 아마 그 장면은 비연기자들을 정말로 그냥 인터뷰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원더풀 라이프]의 망자들이 행복했던 순간을 되새기는 장면들도 그렇게 찍은 게 아닐까 싶을 만큼 날 것 그대로의 말들이 들려온다.

하지만 아이들을 그렇게 찍어낸 감독의 연출력을 생각하면 이 영화에서도 성인 연기자들을 데리고 그런 연출을 한 듯 싶다.

물론 연기와 별개로 영화도 충분히 인상적이다. 사실 [원더풀 라이프]보다는 영어제목인 [애프터 라이프]가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일본어 원제를 보니 이쪽도 '완다후루 라이후'다.영어 사용자들에게는 저 제목의 복잡 미묘한 어감이 전달 안된다고 생각했던 걸까.

그나저나 포스터는 되게 재미없어 보이게 만들어 놨다. 포스터 만들 돈이 없었던 거니.

7. 아이언 자이언트 The Iron Giant (1999)

이런 거 되게 좋아한다. 뭐 그런 거, 용과 소년의 우정, 말과 소녀의 우정, 고래와 소년의 우정 막 이런 거. 중요한 건 소년 혹은 소녀와 우정을 나누는 그 '비인간'이 가급적이면 커야 된다는 거다. 그래야 그 느낌이 배가 된다.

내 이런 취향의 원류를 쫓아가면 아마 이 작품이 있지 않을까 싶다. 외계에서 불시착한 거대 로봇과 소년의 우정. 내용은, 지금에야 말할 것도 없고 그 당시로서도 아마 그렇게 새로운 내용은 아니었을 거다. 보다 보면, '어라, 저런 상황이면 왠지 이런 전개로 이어질 것 같은데' 싶은 예상은 그냥 다 맞다고 보면 된다. 그만큼 작품 자체가 클리셰에 가깝긴 하다.

마음을 건드리는 이야기는, 꼭 새로울 필요가 없다. 오히려 진부한 이야기일수록 그만큼 오랜 세월을 거슬러 인류의 마음을 만져왔다는 얘기다. 해 아래 새 것이 없나니, 해가 거듭 돼도 사랑받는 이야기는 대개 늘 옷만 갈아입은 오랜 고전들이다. 중요한 건, 진부한 이야기를 어떻게 설득력 있게 풀어내느냐일 뿐이다.

어린 나는 이 작품을 보고 울었다. 그리고 없는 중딩 용돈 탈탈 털어 비디오까지 샀다.

8. 마리포사 Butterfly Toungues (1999)

소년과 거대 비인간의 우정만큼이나 내가 죽고 못 사는 종류의 이야기가 이런 '노소물'이다.

'노소물', 그러니까, '노인과 소년'물. 이렇게 표현하니까 뭔가 좀 변태 같긴 한데, 꼭 노인까지는 아니어도 되지만, 적어도 나이 차가 40년 이상 나는 두 인물의 케미가 돋보이는 영화들. 아마 [시네마 천국]이 대표적일 것이고, 앞서 언급했던 [퍼펙트 월드]도 비슷한 맥락일 게다. 서로가 살아온 세상과 세월이 까마득히 차이나는 와중에도, 그 막역함 사이의 배려, 좁은 공통분모 위에서 이루어지는 이해 같은 그런 요소들이 마음을 건드린다.

그런 노소물 중에서도 [마리포사]는 좀 특별하다. 그 어떤 영화보다 마지막의 여운이 강렬했던 영화였다. 수애와 이병헌이 나왔던 [그 해 여름]은, 그저 순수함을 그리워하는 복고 멜로 영화라고만 생각한 채 보다가 어느 순간 시대가 일상을 찌르고 들어오는 섬뜩함을 느끼게 하는 영화였다.

어딘지 조금 아쉬웠던 [그 해 여름]에 비해 1930년대 스페인 내전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마리포사]는 그 시대가 폐부 깊숙이 찌르고 들어온다. 이 영화는 더 설명하면 안 될 것 같다. 영화는 아무런 정보 없이, 기대 없이, 준비 없이 볼 때 가장 깊게, 깨끗하게 볼 수 있다.

누군가가 내게 자신이 안 봤을 법한 영화를 추천해 달라고 하면, 제일 먼저 꺼내는 영화.

9. 파인딩 포레스터 Finding Forrester (2000)

역시 노소물. 단 한 권의 전설 같은 베스트셀러만을 남기고 잠적해버린 작가와, 글쓰기에 보석 같은 재능을 지닌 슬럼가 흑인 소년의 만남 이야기. 비교적 전형적인 성장 드라마이지만, 영화에서 잘 다루어지지 않는 '글쓰기'가 주 소재로 등장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나는 중학교 때 그저 숀 코너리가 나온다는 이유로 봤었는데(어릴 땐 항상 숀 코너리처럼 늙어야지-하고 생각했다), 후일 대학에 들어가 글쓰기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보여주셔서 굉장히 반가웠던 기억이 난다.

모나지 않은 연출, 안정적인 연기, 잘 갖춰진 내러티브, 뭐 하나 특별할 것 없지만 군더더기 없이 꽉 찬 드라마.

주인공 자말은 글쓰기에도 천부적인 재능을 보이는데, 농구도 천재다. 불공평해.

10. 에버 애프터 Ever After (1998)

모든 동화는 '옛날 옛적에 Once upon a time'로 시작해 '그 후로 오랫동안 Ever after'으로 끝난다. 동화의 클리셰를 차용한 제목의 [에버 애프터]는 신데렐라를 재해석한 영화다.

사실 저런 공주 스토리의 동화들은 대부분의 상식인들을 빡치게 만드는데, 인어공주에게는 "목소리를 잃었으면 종이에 써서라도 니가 구했다고 얘기 좀 해 이냔아!"를 외치게 되고, 신데렐라에게는 "방에 숨어 있지 말고 나와서 무도회장의 그녀가 너라고 좀 얘기해, 왕자는 무슨 안면인식장애냐!"를 외치게 된다. 하긴 한 나라 안에 맞는 발치수가 하나 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왕자를, 성 안에만 살아서 상식이 처참하다고 비난하기엔 풀메이크업과 민낯의 격차를 이해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면 꽤 현실적인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영화에서 신데렐라로 등장하는 드류 베리모어는 고전 신데렐라를 보며 고구마 답답하던 이들에게 사이다가 되어줄 주체적인 여성이다. 지금에야 별로 새롭지 않은 재해석이지만 그 때만 해도 꽤 신선한 소재였고, 소재의 신선함을 떠나 수려한 영상미와 알콩달콩 보고 있기 즐거운 연기와 연출만으로도 훌륭한 로맨틱 코미디다.

매드 사이언티스트로 나오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신데렐라의 멘토 겸 친구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가 얼마나 상상력이 풍부한 지를 보여주는 예가 될 듯 싶다.

11. 플레전트빌 Pleasantville (1998)

(세상 여느 남매처럼) 서로 다른 TV 프로그램을 보겠다고 싸우다가 TV 속으로 빨려 들어간 남매가 맞닥뜨리는 이야기. 그들이 TV 속에서 깨어난 프로그램은 흑백 고전 시트콤 <플레전트빌>이다.

흑백 세상 속에서 무언가가 하나씩 색깔을 찾아가는 시각효과는 그간 뮤직비디오나 CF에서도 즐겨 활용 되고, 최근 개봉했던 [더 기버: 기억전달자]에서도 중요하게 사용되었을 만큼 영상쟁이들이 즐겨 찾는 효과다. 이제는 좀 진부해 보일 정도인데, 그만큼 감각적인 영상미의 상징처럼 쓰여져 왔다.

이 효과를 내러티브와 몹시 유기적으로 활용한 최초의 사례가 이 [플레전트빌]이었다. 개봉한 지 한참 되었는데도, 최근작인 [더 기버]보다 훨씬 더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다.

꽤 정치적이고, 인문학적인 질문을 직설적이면서도 흥미진진하게 던진다. 시각적으로도, 영화적으로도 완성도가 충만했던 영화.

토비 맥과이어와 리즈 위더스푼의 소싯적 모습을 감상하는 재미도 덤으로 누릴 수 있다.

12. 매치스틱 맨 Matchstick Men (2003)

작품 고르는 눈이 도대체 왜 그렇게 된 건지 지금은 거의 믿고 안보게 되는 배우 니콜라스 케이지와, '에? 이런 영화도 만들었었어?' 싶은 이름 리들리 스콧 감독의 작품.

니콜라스 케이지는 강박증, 대인 기피증, 광장 공포증, 결벽증에 틱 장애까지 앓고 있는데 능수능란한 사기꾼이라는 도저히 말이 안 될 것 같은 인물을 연기한다. 근데 되게 잘해. 아니 그러니까 이렇게 연기를 잘 하는 사람이 왜 자꾸 이상한 작품만 고르냐고.

아마 저렇게 다양한 증상은 사기꾼이라는 불안한 생활로부터 왔을 거라는 설정일 텐데, 그런 그에게 오래 전 임신한 줄도 모르고 이혼했던 전처의 딸이 나타나면서 그런 불안함이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하는 그런 얘기. 하지만 또 절대 그렇게 평범한 휴먼 드라마이지만은 않다.

사기를 치는 장면들의 흥미진진한 스릴부터, 딸을 향한 진한 부성애로부터 느껴지는 인간적인 따뜻함까지, 다양한 감정들을 고루 잘 개어 전달해주는 거장의 연출력과 연기를 감상하기 좋다.

거기에, 영화를 잘 몰입해서 보다가 헐? 하는 육성을 터뜨렸던 몇 안되는 영화. 후에 헐? 했던 감정의 잔여물까지 친절하게 잘 추스러주는, 정말 그 중에서도 드문 영화. 재밌다.

13. 버터플라이 Le Papillon (2002)

또 노소물. 나 노소물 진짜 좋아한다. 심지어 이 영화는 [마리포사]하고 제목도 소재도 겹친다. [마리포사]가 시대의 냄새가 짙게 풍기는, 나비의 혀를 말하는 노소물이었다고 한다면 이 쪽은 똑같이 나비가 나오는 노소물이지만 시트콤, 혹은 촌극에 가깝다. 시종일관 투덜거리는 츤데레 할아범과 맹랑하게 쨍알대는 꼬마 소녀의 케미에 프랑스 영화 특유의 유머까지 더해져 유쾌한 노소물의 전형을 보여준다. 가볍게, 기분 좋게 볼 수 있는 영화.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갈 때 두 주인공이 불러주는 노래까지 충실하게 귀엽다. 노래는 그렇게 귀여우면서도 노소물 특유의 철학, 노인의 지혜와 아이의 순수함이 어우러지는 그 진리의 냄새도 놓치지 않는다.

14. 녹차의 맛 茶の味 (2003)

일본의 감성은 확실히 독특한 것 같다. 중국 영화만 해도 국경을 넘어서 통용되는 보편적 정서가 자주 담겨 있는데, 일본 영화는 정말 '일본이 아니면 나올 수 없다'고 생각 되는 그런 정서들이, 오히려 주류에 가까운 것 같다.

일본영화는 꽤 자주, 둘 중 하나다. 굉장히 순수하거나, 굉장히 기괴하거나. [녹차의 맛]은 그 두 가지를 같이 보여주는 느낌이다.

내러티브랄 건 딱히 없다. 도쿄 외곽 조용한 시골마을에 사는 한 가족의 일상을, 딱히 갈등의 줄기를 따라갈 것 없이, 두서 없이 차례차례 보여준다. 보고 나면 굉장히 컬트적인 영화를 본 것 같기도 하고, 녹차처럼 잔잔한 영화를 본 것 같기도 한 기묘한 느낌에 사로잡히는데, 이게 도대체 뭘 얘기하려고 하는 건지 설명하려고 하면 못할 것도 없지만 굳이 설명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좋은 태도 같다.

그... 세상엔 두 종류의 사람이 존재하는데, <멋지다 마사루!>라는 만화를 보고 미친듯이 웃는 사람과 어처구니 없어하는 사람. 후자에 속한다면 이 영화는 안 보는 쪽이 좋은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삶이라는 게, 가족이라는 게, 잘 만들어진 헐리우드 영화처럼 늘 그렇게 매끄럽게, 말이 되게 다듬어져 있지만은 않다. 만화적 상상력의 필터를 두껍게 끼우긴 했지만, 그런 일상에도 카메라를 비추는 이런 영화가 반가운 이유다.

15. 칠드런 오브 맨 Children of Men (2006)

전 인류가 불임이 되어 버린, 거기에 대부분의 나라들이 무정부상태가 되어 버린 디스토피아적 근미래를 그린 영화. 영화는, 전 세계에서 드물게 시스템이 그나마 유지되고 있는 런던을 배경으로, 전 인류를 통틀어 가장 어린 18세 소년의 사망 뉴스로 시작한다. 그는 단지 모두가 불임이 되어 버리기 전, 가장 마지막으로 태어난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셀러브리티 같은 삶을 살았던 걸로 그려지는데, 말하자면 '모두의 막내 아기'였던 셈이다. 그래서였는지 성격은 개차반인 모양이었는데도, 그의 사망 소식에 온 도시가 초상집 분위기인 모습을 보여주며 이 영화가 어떤 세계를 그리려고 하는지 설명해낸다.

불임의 세상, 유일한 임산부. 시놉시스만으로도 충분히 귀가 확 끌리는 이 이야기는, 손에 땀을 쥐고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못 견디게 만들고자 했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도 있었을 테다. 하지만 [그래비티]의 거장 알폰소 쿠아론은 종반부 단 하나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충분히 극적이고 흥미로울 수 있는 이야기의 요소들로부터 긴장감을 차근차근 도려낸 뒤, 조용하고 성실하게 내러티브를 쌓아간다. 해서 극적이기 그지 없는 이 시놉시스는, 담담하게 현실감을 잃지 않은 채 지긋이 이어진다. 이런 연출의 선택이 사람에 따라서는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후반부에 5분 여의 롱테이크가 이어지는데도 불구하고, 컷이 한 번도 끊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안정적인 앵글 구성을 보여줄 만큼, 깊은 안정감이 묻어나오는 감독의 연출과 클라이브 오웬의 연기는 마침내 주제가 선명히 드러나는 장면에 이르러, 지금껏 보아온 영화들 중 정말 손에 꼽는 깊은 울림을 만들어낸다.

선명하고 선명하지만 전혀 촌스럽지 않은 주제의 제시. 꾹꾹 눌러 만든 영화.

16. 비밀의 숲 테라비시아 Bridge to Terabithia (2007)

한국판 포스터에는 이마에 대문짝만하게 "<반지의 제왕>, <나니아 연대기> 제작진"을 강조하고 있는데다, 배경에는 마법의 성이며, 거대한 독수리를 넣어놓고 판타지 대서사시인 양 마케팅을 하고 있지만 실상은 미국판 포스터가 영화의 진실에 가깝다.

한국판 포스터에 등장하는 저런 요소들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건 맞다. 하지만 이 영화는 청소년 소설을 원작으로 한 성장영화다. 사실 [반지의 제왕]이나 [나니아 연대기]보다는 [플립]에 훨씬 가까운 것 같다. 하긴 생각해보면 [나니아 연대기]는 물론이거니와 [반지의 제왕]도 뭐, 일종의 성장영화이긴 하다.

이 영화가 나에게 인상 깊었던 건, '판타지'는 도구일 뿐 '성장'이 더 중요한 주제인 이 영화가, 오히려 저 판타지 대서사시들보다 '판타지'의 본질을 더 충실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나에게는, 그 어떤 영화보다 '판타지의 본질'을 가장 잘 담아낸 영화다.

17. Babies (2010)

인터넷에서 트레일러를 보고, 너무 보고 싶어져서 그때 살고 있던 고시원 총무에게 이 영화의 트레일러 얘기를 막 떠들었더니 능력자 총무님이 어디선가 영화를 구해다 주었다...

한국에서는 개봉을 안 한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한글제목도 사이트마다 제각각이다. 영화는 아주 단순한 다큐멘터리. 나미비아, 몽골, 일본, 캘리포니아의 각각 아기 한 명씩을, 출생부터 첫 걸음마의 순간까지를 담아냈다. 인터뷰도, 내레이션도 없다. 주변인물들이 영화 속에서 어쩌다 한두 마디씩 하긴 하는데, 다 합쳐도 A4 용지 한 장도 안 나올 것 같다. 요즘 인터넷에서, 아기들, 혹은 아기와 동물들을 찍은 소위 '심쿵짤'들을 보는 게 인생의 낙 중 하나인데, 이 영화는 사실 그냥 80분짜리 짤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그냥 귀여움 뚝뚝 듣는 '짤'로만 치부하기에는 다큐멘터리다운 면모도 가득하다. 문명으로 가득한 도쿄와 샌프란시스코의 아기들, 그리고 반대극단의 나미비아와 몽골의 아기들이, 출생부터 1년까지 똑같이 겪는 발달과정들의 교차편집은 아무런 설명이 없어도 그 자체로 대단히 극적인 문화인류학 교재다.

가장 극적인 대비를 보여주는 장면이 바로 아기를 씻기는 장면인데, 물이 귀한 나미비아에서는 엄마가 아기의 얼굴을 직접 혀로 핥고 빨아서 세수를 시키고, 똥을 싼 엉덩이는 엄마 무릎에 닦은 다음 무릎은 다시 다 먹은 옥수수대로 몇 번 슥슥 문질러 닦는다. 나미비아만큼은 아니지만 역시 물이 귀한 몽골 어느 초원의 엄마는, 모유를 아기의 얼굴에 짜낸 다음 이를 헝겊으로 닦아내는 것이 세수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은 아빠의 품에 안겨 샤워기로 씻고 있는 샌프란시스코의 아기, 풀장에서 놀고 있는 도쿄의 아기. 솔직히 감독의 편집이 좀 짓궂다.

이렇게 초반에는 도시의 아기들이 누리는 문명의 이기에 비해, 비문명의 아기들이 좀 안타까워 보이는 장면들이 이어지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오직 집과 부모 품에서 벗어날 일이 없는 도시의 아기들에 비해, 누가 엄마인지 갈피가 안 잡히는 나미비아 공동육아의 장면들, 그리고 몽골 전통 가옥인 게르 안에 갓난쟁이를 혼자 내버려두고 엄마가 일하러 간 사이 초원을 마음껏 기어 다니며 염소며 개며 닭과 하염없이 부비고 노는 몽골 아기의 자유로운 모습들이 이어진다.

다분히 감독의 의도가 반영된 것 같아 보이긴 하지만, 내레이션 하나 없이 날 것 그대로의 촬영과 편집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지 새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영화적이고 문화인류학적인 재미들을 다 떠나, 진짜 미친듯이 시종일관 귀엽고, 영상미도 너무 예쁘다. 일곱 번쯤 본 것 같다.

18. 삼사라 Samsara (2010)

[Babies]처럼 내레이션 하나, 인터뷰 하나 나오지 않고 오로지 영상으로만 말을 거는 다큐멘터리지만, 걸어오는 말의 내용이나 어조는 [Babies]와 완전히 반대 극단에 서있다.

'삼사라'는 산스크리트어로 윤회, 혹은 흐름이라는 뜻이다. 태초로부터 이어져오는 인류 문명의 탄생, 고통, 억압, 착취, 구원에의 의지, 파멸 등을 고요하게 울부짖는 영상들로 쉬지 않고 보여준다. 정말, 영상들이 울부짖는다.

[Babies]를 보고 있으면 인간이란 존재가 그토록 사랑스러울 수 없지만, [삼사라]를 보고 있으면 인류로부터 눈을 감고 그냥 머리 깎고 산사에 들어가야만 할 것 같다.

연출되지 않은, 그저 현존하는 인류문명의 장면들을 그대로 담아낸 것만으로도 그 어떤 특수효과를 동원한 영상서사보다 강렬한 충격을 선사한다. 어떤 영상을 보며, 오로지 눈으로 보이는 그 시각적 충격만으로 탄성을 질러본 영상은 [삼사라]가 유일했던 것 같다. 그만큼 기록으로서의 영상이 보여줄 수 있는 전율의 최고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론 프릭 감독은 이 작품을 찍기 20년 전에도 [바라카]라는 다큐멘터리를 찍었는데, 20년 차이의 낡은 기술로도 꽤 많은 장면에서 [삼사라]와 비슷한 주제의식, 비슷한 시각경험을 선사한다. 인류에 대한 그의 문제의식이 20년 동안 꾸준히 숙성되어 온 것이다.

이토록 인간의 문명을 깊게 긁어낸 영상이 많지 않은 편인지, [루시]나 [더 기버: 기억전달자] 같은 꽤 여러 편의 할리우드 영화에서 '인류'를 설명하는 장면에 꼭 이 [삼사라]의 클립들을 자주 동원한다. 어, 저거 [삼사라]에서 본 것 같은데 싶은 기시감에 크레딧을 확인하면 어김 없이 자료를 사왔다고 적혀 있다.

[삼사라]는 그 영상만큼이나 감독의 웅변이 강하게 느껴진다. 그가 자기 문제의식을 말하기 위해 인류사를 취사선택한 그 의도성에 비하면, [Babies] 감독의 의도적인 편집은 애교도 못 된다. 그만큼 론 프릭 감독의 이 경악스런 영상의 향연은 다분히 설교적이고, 의도적이다.

물론 인류의 다른 장면들을 또 다시 취사선택하면 얼마든지 반론도 가능하다. 그러나 그 의도가 빤히 보이는데도, 독실한 기독교인임을 자부하는 나도 잠시간 불교로 개종할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강렬함 그 자체로 설득력을 가지는 영상들.

19. 비투스 Vitus (2006)

노소물 + 천재소년물, 두 장르의 클리셰를 고루 잘 갖춘 영화.

포스터의 카피처럼, 열두살에 바흐, 모차르트, 슈만, 리스트를 모두 마스터한 천재 피아니스트 소년 비투스와, 그를 이해하는 유일한 친구이자 '하늘을 나는 것'이 소원인, 소년 같은 그의 할아버지 이야기.

어디서 본 것 같은 장면들, 이야기들이 이어지지만 할리우드와는 결이 다른 스위스 영화의 감성과 함께, 시종일관 들려 오는 수준 높은 클래식 음악에 귀가 즐거운 매력이 있다.

사랑스럽게 잘 만들어진 영화인 것 확실한 것 같은데, 내가 노소물 마니아라서 유독 재미있게 본 것 같기도 하고.

20. 소중한 날의 꿈 (2011)

손에 꼽을 만큼 뛰어난 작화와, 작화를 받쳐주는 잔잔한 감성.

억지스럽지 않은 한국적 정서까지, 이 정도면 한국의 지브리라고 불러줘도 아깝지 않았던 작품인데 그 완성도에 비해 그리 많은 관객이 들지 않아서 안타깝기도 했던 애니메이션. 어딘지 웹툰 <무한동력>도 떠오르고, <검정고무신>도 떠오르고.

말도 안 되는 꿈을 꾸는 소년스런 주인공을 짝사랑하는, 전형적인 굳세고 순수한 평범녀 주인공의 청춘순애물인지라 사실 내용은 그리 특별할 건 없긴 한데 수채화 같은 화면들을 보고 있으면 그 분위기에 젖어 별 거 아닌 내용도 촉촉하게 느껴진다.

본편도 좋았지만,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청각장애를 가진, 주인공의 삼촌이 나와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에게 담담하게 수화로 말을 건다. 수화로 말을 건네긴 하는데 자막이 없다. 조금 불친절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감독이 이 작품을 만들며 한참 힘들어하고 있을 때 제작진 중 청각장애를 가진 스탭이 와서 수화로 위로를 건넸는데, 그때 그 수화의 내용을 정확하게 알아듣지 못하는데도 굉장히 위로를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었고, 관객에게도 그 느낌을 느낄 수 있게 해주고 싶어 일부러 자막을 넣지 않았다고 한다.

인터넷 검색을 조금만 해보면, 그 수화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 내용이 영화 전체의 아쉬움을 만회하고도 남을 만큼 마음에 깊이 남았다.

...근데 생각해보면,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수화로 건네는 위로를 짠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을 감독의 모습을 상상하자니 어딘지 좀 귀엽게 느껴지기도 한다.

21. 인 디 에어 Up in the Air (2009)

조지 클루니는 여전히 섹시하다. 그런 조지 클루니조차 어딘지 찌질하게 만들어 버리는 기민한 연출의 영화.

사랑에 대해서, 관계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는 척 무게를 잡기도 하고 빼기도 하고 실소를 터뜨리게도 하면서 관객을 살짝 살짝 쥐었다 놨다 한다.

적당히 가볍고, 적당히 무거워서 마음에 들었던 영화. 섹시한 듯 찌질하고 유쾌한 듯 쓸쓸하다.

22.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The Motorcycle Diaries (2004)

장 코르미에의 빨간 책, <체 게바라 평전>과 이 영화는 공히 에르네스토, 즉 체 게바라를 다루었다는 점 말고도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는데 사람들이 대부분 그 존재를 알고 있고, 한 번 봐야지- 생각은 하면서도 계속 보지 못하고 있는 놈이라는 점인 것 같다.

<체 게바라 평전>은 한 때 유행처럼 거의 웬만한 책장에서는 꼭 발견할 수 있는 책이었지만 주변인들에게 물어보면 '읽을 예정'인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보통 읽을 예정인 책을 읽게 되는 날은 쉽사리 오지 않는다. (...내 얘기다) 그리고 이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도, '젊은 체 게바라가 주인공인 로드무비'라는 사실은 평전 만큼이나 잘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본 사람을 만나기도 평전만큼이나 어려웠다.

평전이라고 적혀 있지만 사실상 위인전이나 다름없는 <체 게바라 평전>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역시나 의대생 에르네스토가 여행을 떠나 '몰랐던 세상'을 만나던 장면이다. 위인전들이 대개 그렇듯 젊은 시절 이야기가 그 삶의 주된 업적 이야기보다 재미있다. 평전에서 가장 즐겁게 읽었던 부분만 따로 떼어 놓은 영화이니, 반갑지 않을 리가.

어쩐지 고생의 냄새가 풀풀 나는 '로드 무비'라는 장르는, 장르 자체로는 썩 반갑지 않은데 정작 영화를 보면 기억에 오래 남는 경우가 많다. 고생하며 찍어서 그런가.

영화적인 완성도가 그리 훌륭하다고 느껴지진 않지만, 영화가 끝나고 천천히 여러가지를 반추하게 되는 영화. '잘' 살고 싶어지는 영화.

23. 디파이언스 Defiance (2008)

나치의 유대인 학살과 2차대전은,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극적인 모습들을 모두 담아냈던 사건이었고 그만큼 이를 소재로 한 좋은 영화들이 끊임 없이 등장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

[블러드 다이아몬드]와 [라스트 사무라이]의 감독 에드워드 즈윅과 가장 혁신적인 제임스 본드 다니엘 크레이그가 고른 2차대전의 장면은, 독일군을 피해 숲속에서 공동체를 만들어 나갔던 유태인들의 엑소더스적 실화였다. 마치 [쉰들러 리스트]와 <출애굽기>를 연상시키는 장면들.

2차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 중에서, 어쩌면 비교적 신선하지는 않은 소재, 그리 눈에 띄지 않는 요소들로 이루어진 작품이라 큰 입소문 없이 조용히 지나간 것 같지만 회화적이고 감각적인 결의 아름다운 영상미와, 공동체를 이루어나가는 통찰이 드러나는 장면들, 하나의 사회가 어떻게 원시적인 발생의 단계를 거쳐 하나의 생물로 성장해 가는지를 그려내어 내겐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영화가 됐다.

물론 내 입에 맞았던 사이드 디쉬 말고도, 휴머니즘 전쟁 드라마라는 메인 코스도 다른 영화와 견주어 뒤지지 않는다.

24. 우리도 사랑일까 Take This Waltz (2011)

키이라 나이틀리와 클로이 모레츠가 나온 [래기스]나, 다니엘 래드클리프가 나온 [왓 이프] 같은, '바람'을 미화하는 영화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결혼한 사이가 아닌 이상, 서로에 대한 책임이나 의무가 강제적인 건 아니니 더 마음이 잘 맞는 상대가 나타나 지금의 파트너를 떠나는 걸 무조건 나무랄 수야 없는 일이긴 하지만 보통 그런 '바람' 영화에서 버려지는 파트너는 별 잘못이 없는 경우가 많다. 나름 성실하게, 충실하게 연인의 역할을 하고 있는데 그런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일의 손을 들어주는 이야기는 뭐 인간사가 다 그렇다지만 별로 예뻐 보이진 않는다. 하긴 영화가 꼭 예뻐야 영화는 아니니.

하물며 이 영화는 연인 사이도 아니고, 불륜이다. 그것도 지극히 성실하고 자상한 남편을 떠나는 불륜 영화. 중간 중간, 주인공의 마음이 툭툭 떨어지게 만드는 장면들이 한 번씩 나오긴 하지만 불륜을 합리화하기엔 한참이나 부족하다.

내 마음에는 썩 들게도, 사라 폴리 감독은 꾸준히 예쁜 영상미를 보여주지만 결코 불륜의 손을 들어주진 않는다. 굉장히 세련된 영상과 연출과는 안 어울리게, 다소 촌스러울 정도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극중 인물의 입을 빌려 직접 하기까지 한다.

어쨌거나 쉬지 않고 이어지는 섬세한 연출들이 인상적인 영화.

옷을 다 입고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기만 하는 롱테이크 컷이 어지간한 베드씬 보다 농염하게 다가오는 장면이라든지, 남편과 불륜남과 한 장소에 함께 머무르는 동안 느껴지는 혼란스러운 설렘을 정말 세심하게 그려낸다.

꽤 진부하고, 심지어 내 취향도 아닌 소재를 세심하면서도 과감한 연출로 너무 즐겁게 보게 만든 영화. 얼마나 인상 깊게 봤는지 보고 와서 블로그에 긴 리뷰까지 남겼다.

(http://blog.cyworld.com/miracleofgiving/9586453)

[주먹왕 랄프]의 귀여운 여주인공 '페넬로피'의 성우였던 사라 실버맨의 걸걸한 모습을 보는 재미는 덤.

근데 한글 제목을 꼭 저렇게 촌스럽게 지어야 했을까. 'Take this waltz'라는 원제는 영화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과 그 순간의 OST도 잘 담아내면서, 역설적으로 영화의 주제까지 아우르는데. 하긴 번역하기 정말 애매한 제목이긴 했다.

25. 대학살의 신 Carnage (2011)

[피아니스트]와 [올리버 트위스트]의 감독 로만 폴란스키, 그리고 [대학살의 신]이라는 제목. 이것만 보면 인류사의 가장 처참한 장면들을 고발하는 거대한 스케일의 휴머니즘 드라마를 기대하게 된다. 그래서 정작 영화를 보면 의아한 감정을 감추기 어려운데,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느 중산층 부부의 거실만 나오고, 학살은 커녕 피 한 방울 안 튄다. 아마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작품들 중에서, 그리고 화려한 캐스트인 조디 포스터나 케이트 윈슬렛에게도 스케일로는 가장 작은 작품이 아닐까 싶다.

다만 인류사의 처참한 장면을 고발하는 영화는 맞다. 저 흥미로운 포스터의 12개 얼굴이 이 영화의 내용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데, 이 영화의 줄거리를 아주 거칠게 요약하면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 되는" 이야기다.

케이트 윈슬렛과 크리스토프 왈츠 부부의 아이가, 조디 포스터와 존 C. 라일리네 아이와 놀다가 다툼이 붙어 살짝 다치게 만드는데, 해서 가해자 아이네 교양 있는 부모가 피해자 아이네 교양 있는 부모에게 사과를 하러 찾아온다는 내용.

처음에는 교양 있는 중산층 부부들 답게, 불미스러운 일로 만났지만 서로 품위를 잃지 않고 대화를 시작하는데 조금씩 서로의 민감한 부분을 웃는 얼굴로 비꼬기 시작하다가, 급기야는 피아식별마저 무너진 채 너나 할 것 없이 고함을 질러대며 멱살 잡기 직전까지 가는, 뭐 그런 얘기.

포스터에도 쓰여 있듯, '대학살의 신'의 지배가 시작되는 인간의 본성까지의 과정을 담아낸 블랙 코미디다. 흡사 연극을 보는 듯, 이렇다 할 앵글의 구성도 액션도 없이, 담담한 화면 아래 날이 선 대사들이 휙휙 날아다닌다. 그러니, 오로지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그 즐거움으로 꽉 차 있다. 보고 나면 유쾌한 듯 찝찝한 그 기분을 내버리기 어려운 영화, 그래서 그 유쾌한 듯 찝찝한 기분을 담아 써내려간 리뷰(http://blog.cyworld.com/miracleofgiving/9551542).

26. 서칭 포 슈가맨 Searching for Sugar Man (2011)

"덜 유명하다"고 하기엔, 사실 너무 유명한 영화긴 하다. 노래로 말을 걸고, 자신이 한 말을 삶으로 살아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 한 인물. 만약 극영화였다면 너무 심하게 극적이어서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소리를 들을 수 밖에 없었을 것 같은, 정말 영화 이상의 실화.

'그'가 등장하는 순간 흘러 나오던 트랙, "Sandrevan Lullaby"가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고, "Cause"의 첫 줄은, 쓸쓸하다는 감정을 가사가 어디까지 담아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생각하며 들을 수밖에 없는 가사들, 아니 들으면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가사들. 그리고 그 말들을 담담하게 실어 나르는 멜로디. 그 멜로디가 온전히 공명하는 주인공의 삶과 쓸쓸한 시대.

극장문을 나서며 바로 OST를 사러 가게 만들었던 영화.

27. 인사이드 르윈 Inside Llewyn Davis (2013)

이야기는 별 게 없다. 이렇다 할 극적인 사건도 없다. 카메라가 무심하게 쫓아가는 르윈의 삶은, 그가 부르는 노래들 만큼이나 낮게 깔리고, 질척거린다.

[서칭 포 슈가맨]이 그랬던 것처럼, '노래하는 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가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방식. 인물과 사건뿐 아니라, 그만큼의 무게로 흘러가는 '노래'가 어떻게 영화의 무게추를 함께 맞추는지를 잘 보여준다.

르윈은 사실 별로 좋은 사람은 아니지만, 그가 노래하는 장면들 만큼은 보석처럼 빛난다. '포크'라는 장르의 음악이 어떤 정서들을 담아내고 있는지 가장 잘 보여주는 영화가 아닐까.

"Hang me, Oh hang me"를 들으며 숨을 죽이게 되고, "The Death of Queen Jane"을 들을 때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지금의 우리에게야 '쎄씨봉'으로 대표되는 '포크송'은, 부모 세대가 젊었을 적 모닥불 피워 놓고 조개껍질 같은 거 목에 걸어주며 불렀던, 순수한 낭만의 상징과도 같은 옛날 노래지만 영화 속 포크송이 울려퍼지는 그 시절 술집은, 실은 오늘의 클럽과 다를 바 없는 유흥의 최첨단이었다는 것도 재미있는 '다시 보기'가 된다.

무엇보다, 떠돌이 음악가와 그가 데리고 다니는 고양이라니. 코엔 형제에게서도 덕후 감성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마찬가지로 영화가 끝나자마자 OST를 사서 집으로 들고 온 영화. 지금도 종종, 조용한 밤이면 방 안에 틀어놓게 되는 음반이다.

28. 맨보그 Manborg (2011)

2011년 작이다. 포스터를 봐서는 믿을 수 없겠지만, 2011년 작이다.

<무서운 집> 같은 영화도 극장에 걸리는 마당에, 이 영화라고 걸지 말라는 법은 없겠지만 내 기억으로는 못 걸렸다. 몹시 어울리게도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볼 수 있었던 저주 받은 걸작.

얼마 전 인터넷 상에서 [쿵 퓨리]가 B급 감성의 정수라며 화제였던 적이 있는데, [쿵 퓨리]는 제작자가 메이저 출신이어서 그런지, 너무 고급이었다. 메이저가 B급을 흉내내면, [쿵 퓨리]처럼 마치 B급인 척 하지만 한꺼풀 아래에서 주류의 냄새가 풀풀 묻어나는 영화가 나온다. [맨보그] 정도는 되어줘야 진짜 B급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두 작품에서 모두 충실히 지키고 있는 B급 컬트물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아무리 영화가 거지 같아도 영화 속 주인공 본인들은 세상 진지해야 한다는 거다. 그나마 [쿵 퓨리]의 인물들은 제법 말이 되게 진지한데, [맨보그] 영웅들의 진지함은 '끄으으으으으, 으으으으' 소리를 내며 보게 된다, 너무 오그라들어서.

75분짜리 총체적 오그라듦의 영화다. 작품의 괴랄함은 [맨보그]가 [쿵 퓨리]를 한참 뛰어 넘는다. B급 영화는 바로 이런 재미로 보는 거다. 저런 포스터지만, 포스터의 완성도가 영화보다 훨씬 높은 것 같다.

29. 루비 스팍스 Ruby Sparks (2012)

포스터가, 정말 몹시 안 예쁘지만, 영화의 내용은 굉장히 잘 표현하고 있다.

주인공은 소설가, 그리고 그가 소설의 여주인공으로 상상하며 써내려간 여인이, 어느 날 눈 앞에 정말로 나타난다. 나타나기만 했을 뿐 아니라 그녀를 만난 이후로도 그가 쓰는 내용 그대로 변하는 그녀. 그러니 그는 자신의 연인을, 손끝에서 얼마든지 가장 이상적인 여인으로 만들어갈 수 있다.

어딘지 비슷한 소재의 영화 [스트레인져 댄 픽션]도 생각이 나는 이 흥미로운 이야기는, 보면서 즐겁기로는 그보다 한 수 위다. [스트레인져 댄 픽션]의 주인공은, 자신이 어떤 작가의 소설 속 인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그러니 자기 운명을 어찌할 도리 없이 수동적으로 불안하게 끌려가는 입장이지만, [루비 스팍스]의 주인공은 스스로가 작가, 절대자, 피그말리온이다.

한 여성을 마음 먹은 대로 창조할 수 있는데, 심지어 그녀가 내 연인이다. 초능력과 섹슈얼리티, 남성들의 두 가지 판타지를 동시에 충족시켜 버린 것이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굉장히 하드코어한 내용이 될 법도 한데, 영화의 대부분은 귀엽고 유쾌하게 그려진다.

내 연인의 생각을, 성격을, 모든 것을, 내가 원하는 대로 바꿔 버릴 수 있다. 이런 설정에서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것들을 그대로 보여주고, 그것이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 진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찬찬히 잘 그려낸 영화.

가벼운 로맨틱 판타지로 시작해 즐겁게 보다 보면, 후반부에 이르러 숨을 죽이고 볼 수밖에 없는 묵직한 장면들도 이어진다.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 조 카잔이 피그말리온의 그녀, '루비'로 등장하는데, 주이 디샤넬처럼 어딘지 독특한 자기 세계를 가진 분위기의 그녀가 자못 매력적이다. 앞서 언급했던 다니엘 래드클리프의 바람미화 영화 [왓 이프]에서도 묘한 매력을 뽐내서 인상적이었는데, 이 [루비 스팍스]의 시나리오까지 그녀가 썼다고 하니 지켜볼 만한 배우인 것 같다.

30. 아무르 Amour (2012)

이 역시 여기에 쓰기엔 사실 꽤 알려진 영화.

나이듦에 대해, 오래된 사랑에 대해, 그 어떤 작품보다 깊게 어깨를 두드리는 영화였다. 담담하고 짙게 흘러가는 고요한 영상은, 영화를 보는 내내 숨을 죽이게 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다 올라가 상영관에 불이 켜질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게 했다.

두 번을 관람했지만, 두 번째 객석에 앉는 것이 참 힘들었던 영화. 오래도록 생각 나겠지만, 다시 보라면 어려울 것 같은 영화.

31. 와일드 Wild (2014)

영화 내내 리즈 위더스푼 혼자 개고생하는, 로드무비이자 여성영화.

애증을 나누던 엄마의 죽음 이후, 망가질 대로 망가진 자신의 삶을 다시 추스르기 위해 트레킹을 떠나는 여성의 이야기다. 개고생하는 트레킹의 낭만도 잘 보여주지만, 동시에 '여자 혼자 여행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또한 실감나게 담아내기도 한다(개새끼들이 참 자주 나온다).

여행을 소재로 하는 영화들은 대개 보는 이의 역마살을 부추기는데, 그녀의 여행은 보는 나로 하여금 떠나기보단, 머문 자리를 돌아보게 만든다. 삶은 늘 여행에 비유되고, 그렇기에 여행을 그리는 영화들은 늘 삶을 말하지만, 이 영화처럼 그 둘을 한 덩어리로 잘 매만진 영화는 드물었던 것 같다.

길 위에서 그녀가 마침내 눈물을 터뜨렸을 때, 나도 함께 울었다.

32. 내일을 위한 시간 Deux Jours, Une nuit (2014)

내용은, 지나치게 간단하다. 우울증으로 휴직을 했던 마리옹 꼬띠아르가 공장으로 돌아오자, 사장은 그녀 없이도 업무가 이루어진다는 이유로 그녀를 해고하기로 하고 그 최종 결정을 자신이 아닌, 그녀의 동료들의 투표에 맡긴다. 그녀가 해고되는 것으로 결정이 나면, 천 유로의 보너스가 지급된다는 조건과 함께.

그래서 영화는 아주 성실하게, 투표가 이루어지기 전 이틀의 주말 동안 열 여섯 명의 동료들을 설득하러 다니는 그녀만을 보여준다. 그게 전부다.

중간 정도까지 볼 때는, 설마 열 여섯 명을 전부 다 보여줄까 싶은 의문을 갖게 되는데, 다르덴 형제는 기어코 열 여섯 명 모두를 만나는 과정을 빠짐 없이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느끼는 지난함, 답답함, 불안함, 인간적 모멸감, 수치심, 구원과 절망, 간절함, 애정. 이 모든 것이 '동료의 손에 의해 해고 되는' 이의 감정이고, 다르덴 형제는 구토가 나올 것만 같은 이런 감정을 관객도 느낄 수 있도록 전달하는데 성공한다.

해고자는 비참하다. 더구나 고작 120만원 돈에 내 삶을 외면하려는 동료들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아야 하는 해고자는 더없이 처참하다.

그러나 인간이기에 또 다시 떳떳할 수 있다. 그렇게 선연하고, 인간다운 영화.

그나저나 제목 번역을 참 잘 한 것 같다. 영화의 내용과 주제를 모두 포괄하는 중의적인 뉘앙스도 갖췄고. 원제를 직역하면, '1박2일'이 된다...

33. 엑스 마키나 Ex Machina (2015)

[인사이드 아웃]에 대한 이야기를 쓴 글(http://blog.cyworld.com/miracleofgiving/9893775)에서도 '불쾌한 골짜기'를 다루며 언급했지만, 인간을 모사하는 것에 대한 본능적 두려움은 수많은 이야기에서 반복되어 온 주제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라는 말은 유명하다. 영어로 'God from the machine', 기계를 타고 온 신이라는 이 말은 그리스 연극으로부터 유래했다.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이리 얽히고 저리 엉킨 갈등 관계를 도저히 작가 자신의 능력으로 해결할 방법이 보이지 않을 때 등장시키는데, 그리스는 신의 나라 아니겠는가. 워낙 문화적으로 익숙한 만큼 연극 무대에도 뿅 나타나 전능한 힘으로 모든 갈등을 다 해결해준다.

이때 무대 위에 등장하는 신은, 신이니까, 나름 특수효과로 기중기 같은 기계를 타고 내려오며 등장하는데,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그 뒤로 문학작품에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뜬금 없는 인물이나 사건이 나타나는 플롯을 일컫는 말이 됐다.

물론 [엑스 마키나]는 그런 이야기를 다룬 영화는 아니다. 다만 저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서 '데우스'만 뺀 말이니, 'from the machine', '기계로부터'가 제목이 된다. 제목부터 의미 심장하다. 기계로부터.

영화는 대단히 단순한데, '인물'이라 할 수 있는 등장인물은 딱 세 명, 이 셋이서 모든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현실로 따지면 구글 정도 되는 IT 기업의 대표, 그로부터 행운의 초대에 당첨된 그 회사의 프로그래머 직원, 그리고 그 대표가 만든, 인간에 가까운 인공지능의 여성형 로봇.

대표는 주인공에게 일종의 튜링 테스트를 제안한다. 튜링 테스트는 앨런 튜링이 생전에 제안한 테스트로, 인간이 인공지능 프로그램 또는 진짜 사람과 채팅을 하면서, 채팅하는 상대방이 사람인지 프로그램인지를 판단해 내는 테스트다.

물론 주인공의 눈 앞에 나타난 것은 누가 봐도 분명한 로봇이지만, 그는 그녀가 로봇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대화를 할수록 점점 그녀에게 빠져든다. 그리고 어느 시점부터인가, 대표와 그녀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기 시작하는데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 것인지 혼란스러운 속에서 진실을 캐내려 한다.

자유를 구가하는 인공지능 로봇의 이야기. 인간과 구분할 수 없는 로봇의 '권리'에 대한 이야기. 이 소재를 다루는데 있어 익숙하게 만나온 질문이지만, 극도로 단순한 구조의 [엑스 마키나]는 그 익숙한 플롯을 세밀한 연출로 펼쳐 보이며 그동안과는 다른 색깔로 눈앞에 가져온다. 그리고 이런 류의 이야기가 설득력을 갖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인데, 인조인간 '에이바' 역의 알리샤 비칸데르는, 주인공이 그랬듯 로봇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빨려 들어갈 만큼 매력적인 분위기를 연출해낸다.

익숙한 소재, 흥미로운 전개, 설득력 있는 연출, 그리고 영화의 결말도 익숙했던 예상처럼 이루어질까. 내 경우엔 아니었다.

...사실 난 영화 결말 이런 거 예측 잘 못하는 편이긴 하지만. 영화는, 전개를 설득력 있게 잘 만들었으면, 예상 같은 거 하지 말고 그냥 몰입해서 보는 게 이득이다.

34.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Finding Vivian Maier (2013)

감독이자 주인공인 존 말루프는, 우연히 동네 경매장에서 인화되지 않은 수만 장의 필름을 산다. 인화된 적이 없고, 그러니 당연히 어딘가 발표된 적도 없는 그 사진들은 하나 같이 예사롭지 않다. 처음 들어보는 원래 주인의 이름, '비비안 마이어'라는 여성의 흔적을 따라 그녀의 정체를 쫓는 이야기.

이 흥미로운 다큐멘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두 괴짜의 괴팍한 성격 덕분에 완성된 거나 다름 없는데, 캐면 캘수록 도무지 알 수 없는 괴팍한 성격의 비비안 마이어하며, 그냥 대수롭지 않게 지나갈 수도 있는 필름들의 정체를 정말 집요하게 따라가는 존 말루프도 도무지 평범해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영화 속 그녀의 사진들을 보노라면, 그렇게 집요했던 말루프의 추적이 내심 이해가 가기도 한다. 사진이란 예술형식이, 우연이 겹치면 아마추어도 얼마든지 거장의 작품을 따라갈 수 있는 유일한 예술이기도 하지만, 그녀의 사진들은 정말이지 사진 예술의 대가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그런 사진을 단 한 장도 인화하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나다니. 그리고 그런 사진을 찍은 그녀는 평생을 유모로 살았다니. 누구라도 흥미로울 수밖에 없는 이야기이고, 그 자체로 영화적인 미스터리까지 완성된다.

다만, 사진과 영상 같은 그녀의 작품, 기록물, 수집품들은 무서울 정도로 자료가 넘쳐나는 반면 그녀 스스로의 신상과 관련된 정보는 거의 남기지 않고 떠난 그녀의 알 수 없는 성격 덕분에 영화적 미스터리를 낳은 그 요소는 그 자체로 동시에 영화적 내러티브의 한계가 되기도 한다. 그런 부분들은 영화를 보고 나서도 좀 석연치 않은 기분을 남기긴 한다.

예술과 삶에 대해 이런저런 질문들을 던질 수 있게 해주는 영화이긴 하지만, 그런 것들을 차치하고라도 저 흥미로운 미스터리적 실화와 함께 그녀가 남긴 인상적인 사진들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치는 충분한 다큐멘터리.

드물게 한국판 포스터가 원래의 것보다 훨씬 예뻐, 이 영화만 한국판 포스터를 첨부했다. 포스터 속 그녀의 모습이, 이 영화가 말하는 그녀에 대한 여러 가지 면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녀의 사진전도 열리고 있다니 꼭 관람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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