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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판 찌라시' 만드는 고릿적 연예인 가십 방송

“십년도 더 된 이야기를 이제 와서 다시 끄집어내는 게 화가 나죠. 그래도 어쩔 수가 없죠. 방송사에 항의할 수도 없고.”

종합편성채널 <엠비엔>(MBN)에서 방영중인 <아주 궁금한 이야기>(이하 <아궁이>)를 본 한 연예인 매니저의 말이다. <아궁이>는 기자, 평론가, 피디, 아나운서, 배우들이 패널로 나와 연예인의 사생활을 소재로 이야기를 나눈다. 7월3일 방송에서는 ‘초고속 이혼한 연예인’이란 주제로 누가 며칠 만에 이혼을 했고, 이유가 뭐였는지 등을 놓고 ‘수다’를 떨었다. 또다른 매니저는 “재혼해서 아이 낳고 잘 살고 있는 연예인을 다루면, 해당 연예인뿐 아니라 그 아이들이 상처를 받을 수도 있는데 제작진이 그런 고민은 왜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연예인의 사생활을 소재 삼아 노골적인 ‘뒷담화’ 식 이야기를 나누는 연예프로그램들이 종편을 중심으로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증권가 찌라시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까지 여과 없이 등장해 ‘티브이판 찌라시’를 방불케 한다.

엠비엔은 <아궁이>뿐 아니라, 지난해 12월부터 시작한 <뉴스 빅5>에서도 연예인 사생활을 단골소재로 다룬다. <티브이조선>은 지난 5월 끝난 <대찬인생>에 이어 후속 프로그램 <솔깃한 연예토크 호박씨>(이하 <호박씨>)를 6월2일부터 내보내고 있다. <이(E)채널>의 <용감한 기자들>은 실명을 거론하지 않지만 ‘부유한 남자만 골라 사귀는 연예인 에이(A)양’처럼 가십을 다루는 내용은 유사하다. 지상파 연예정보 프로그램인 <섹션 티브이 연예통신>(문화방송)과 <연예가 중계>(한국방송2)에도 연예 기자들이 나와 연예인 이야기를 풀어놓는 코너가 있다.

이들 프로그램은 대부분 해당 연예인을 직접 취재하거나 새로운 사실을 공개하는 게 아니라, 과거 기사에 나온 내용이나 인터넷·찌라시 등에 떠돈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를 정리하는 수준이다. <아궁이>의 지난해 1월17일자 방송에서는 ‘결혼하지 않은 미인들’을 다루며 과거 장미희에 대해 떠돌았던 루머를 다시 끄집어냈다. <대찬인생> 지난 1월13일자 방송에서는 고현정의 재벌가 며느리 시절 이야기를 하면서 ‘왕따’ ‘외도’ 등 당시 증권가 찌라시로 돌았던 소문을 언급했다. <용감한 기자들>은 2013년 방송에서 ‘걸그룹 멤버 두명이 한 스폰서를 두고 다툼을 벌였다’는 식의 큰 파장을 낳을 수도 있는 내용을 익명을 방패 삼아 이야기하기도 했다. <아궁이>에서 언급됐던 한 연예인의 매니저는 “방송 내용과 관련해서 우리한테 취재 전화가 온 것은 없다”고 말했다.

한 배우는 “과거 사실을 재탕, 삼탕하는 것은 차라리 낫다”고 말했다. 근거 없이 내용을 자극적으로 부풀리는 경우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뉴스 빅5>는 한 여자 연예인의 소식을 전하면서 10년도 지난 간통 사건을 거론했는데, 진행자는 한발 더 나아가 패널들한테 “혹시 불륜이 아니라 그렇고 그런(스폰서) 관계는 아니었느냐”고 물었다. 또 이미 법원에서 무죄가 선고된 남자 연예인의 10년 전 ‘성폭행 의혹 사건’을 다루며 “무죄이기는 하지만 성관계를 가진 건 사실이지 않으냐”고 말하기도 했다. 이들 프로그램은 과거 사건을 다시 언급하면서 종종 ‘충격 스캔들’이라는 자극적인 문구를 사용하기도 한다.

한 지상파 예능 피디는 “가십 프로그램들은 인기 절정에서 한발 물러선 연예인들이 편하게 일할 수 있는 새로운 일터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배우 김형자는 <아궁이>에 이어 <호박씨>에 고정 출연자로 나오고, 가수 이상민과 방송인 장영란은 <호박씨>에 고정으로 출연한다. 또 <아궁이>에는 주제에 맞춰 해당 연예인들을 잘 안다는 이들이 ‘친구’라는 이름으로 출연하기도 한다. 이들은 “내가 그를 잘 안다”며 연예인의 과거 이야기를 내놓는다.

이런 연예인 가십 프로그램은 <101 할리우드 스타의 비밀> 등 할리우드 스타들의 가십을 소개하던 미국 프로그램을 본뜬 것이다. 한 지상파 예능 피디는 “스튜디오에서 패널 몇명 불러서 말만 하면 되는 프로그램이라 제작비가 적게 든다. 적은 제작비로 비교적 높은 시청률을 올릴 수 있어 케이블 방송에서 선호하는 포맷”이라고 말했다.

윤석진 충남대 교수(국문과)는 “시청률을 위해 본인에게는 불편한 과거를 들춰내 단순한 흥밋거리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제작진이나 시청자나 남의 인생을 가볍게 평가하고 희화화시키는 것에 대해 큰 문제의식을 못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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