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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창조과학을 가르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는가?

  • 김도훈
  • 입력 2015.08.12 07:25
  • 수정 2015.08.12 10:27
ⓒMichelangelo

과연 대학에서 창조과학을 가르치는 것을 허용해야 하는가?

한겨레 보도에 의하면 지난 10일 연세대 공대 전기전자공학분의 최윤식 교수가 2학기 과목으로 '창조과학 세미나'를 개설했다. 그는 강의계획서에 '창조론과 진화론에 관한 과학적 접근을 통해 성경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한다'고 썼다. 이는, 결국 이 강의가 '성경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강의'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는 또한 "빅뱅이나 진화론이 과학적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누가 본 것도 아닌 가설일 뿐"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명확하게 말하자면 '창조과학 세미나'는 공대 수업은 아니다. 이는 전공에 관계없이 교수 스스로 신입생을 대상으로 여는 세미나 중 하나다. 문제는 이 세미나가 그저 학술적인 토론을 위한 과외 활동이 아니라 정확하게 1학점을 배정한 수업이라는 사실이다. 연세대에서는 14년 전에도 같은 수업이 한 번 개설된 바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창조과학은 "보수적 복음주의 계열 개신교회의 기독교 근본주의적 신앙에 기초하여 과학을 받아들이는 종교적 유사과학"을 의미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창조과학은 빅뱅과 진화론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주장하는 학문이다. 열혈 창조과학 지지자들은 "중고등학교 과학 교과과정에 창조주의가 나오는 과학 교과서를 제공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2012년에는 창조과학을 옹호하는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회'가 "시조새는 파충류와 조류의 중간종이 아니다"는 주장을 펼치며 고등학교 과학 교과서에 실린 시조새의 진화 내용을 삭제하라고 청원을 넣었고, 결국 교과서 저자들이 시조새 관련 내용을 삭제하는 이례적인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과학저널인 '네이쳐'는 'South Korea surrenders to creationist demands(한국이 창조론자들의 요구에 복종하다)'라는 제목의 기사로 이 사태를 다루기도 했다. 교과서에서 시조새와 진화론의 증거를 삭제하라고 청원한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회는 연세대에서 '창조과학 세미나'를 개설한 최윤식 교수가 활동 중인 '창조과학회'라는 단체에서 갈라져 나온 단체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일보 8월 11일 보도에 따르면 창조과학 과목 개설 소식이 전해지자 연대 페이스북 등에는 비판 댓글이 줄을 이었고, 한국 과학계도 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조선일보 8월 11일 보도에 따르면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창조과학은 미국 등에서 1970~80년대에 유행하다가 과학이 아니라는 판단이 내려진 지 오래다. 과학을 하겠다는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강의라는 점이 더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김승환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포스텍 물리학과 교수)은 "교회가 아니라 대학에서 이런 과목이 개설된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한겨레에 따르면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역시 "수업계획서를 보면 창조과학을 과학으로 가르치려 한다. 정설을 부정하는 사이비 학문을 하나의 생각이 아닌 일정한 이론처럼 가르치려는 것은 교육자의 의무에 반한다" 지적하고 나섰다.

연세대 측은 강의를 옹호하고 나섰다. 조선일보에 의하면 연세대 교무처 관계자는 "진화론 과목을 개설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듯이 기독교 건학 이념을 가진 학교에서 창조과학을 강의하는 것도 문제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창조과학회 측 역시 "10여개 대학에서 관련 수업이 진행되지만 창조과학이라는 명칭을 넣는 경우는 거의 없다. 미션스쿨이라면 어느 정도 허용되는 부분이 있지만, 대학 쪽에서 인지하지 못했다가 뒤늦게 수업 내용이 알려져 문제가 되는 일도 있어 조심스럽다”는 의견을 밝혔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지난 1950년대 "창조주의자들의 압력으로 인해 많은 주에서 진화론 교육을 금지하는 반진화론법이 제정되어 출판업계는 교과서에서 이런 내용을 모두 삭제"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 결과? 미국의 과학 교육은 크게 위축됐고 거의 모든 분야의 과학 발전도 느려졌다. 다시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한 건 1957년 소비에트 연방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스푸트니크호를 발사해 우주로 나아가면서부터였다. 진화론은 다시 교과서에 실렸고, 반진화론법은 60년대 후반에 완벽하게 폐기됐다. 그리고 지난 1987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창조론을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정교분리 원칙에 어긋난다며 위헌으로 결정했다.

사실 창조과학은 논쟁의 대상이 아니다. 창조과학은 과학이 아니라 종교행위이기 때문이다. 종교는 과학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종교가 과학이 되지 않는다고 종교의 가치가 떨어지는 건 아니다. 어느 카이스트 교수는 카이스트 신문에 아래와 같이 말한 바 있다.

"설사 창조론의 주장이 지금의 과학적 사실과 다르다고 해서 종교의 중요성과 가르침이 감소하거나 위기에 처하는 것이 아니다. 종교는 여전히 우리의 마음에 평안과 안식을 주고 있다. 지구가 46억 년 전에 창조되었다고 해서 성경에 나오는 사랑의 가치가 훼손되지는 않는다”

대학은 교회인가 아니면 지성의 전당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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