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음지'에서 일하는 국정원은 왜 '양지'로 뛰어나왔나

  • 원성윤
  • 입력 2015.07.20 09:40
  • 수정 2015.07.20 09:55
이병호 국가정보원 후보자가 지난 3월 1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이병호 국가정보원 후보자가 지난 3월 1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한겨레

1. 국정원 '직원 일동'의 유례없는 일요일 밤 '성명'

국가정보원은 '음지'에서 일하며 '양지'를 지향한다(1961년 김종필 초대 부장 작품)는 표어를 가슴에 새기고 산다. DJ정부 시절, '정보는 국력이다'라고 바뀌었지만, 많은 이들은 전자의 문구를 많이 기억한다. 어딘가 으스스한 느낌이 들지만 그만큼 정보원들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고 일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지난 일요일(19일) 밤, 난데없는 국정원 '직원 명의 성명'이 등장했다. 정보 수집을 하는 국가 정보기관이 이 같은 성명을 쓴다는 것은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특히 이들은 '해킹 의혹'을 제기한 야당과 언론을 싸잡아 비난했다.

국정원은 이날 직원 일동 명의(국정원 직원 전체 동의를 받았는지 의문이다. 성명을 쓸 때 일동으로 쓰는 것은 정말 전체 동의를 받을 때만 가능하다. 그래서 성명을 낼 때 기관이나 장이 아닌 직원들이 낼 때는 몇 기, 몇 명 등과 함께 성명에 동참한 이들의 이름을 정확하게 적시해야 한다. 그런데 정말 이렇게 했다면 국가정보기관이라는 이름이 우스워졌을 것이다)로 '동료직원을 보내며'란 제목의 보도자료를 내고 다음과 같이 밝혔다.

그의 죽음을 정치적 공세를 이어가는 소재로 삼는 개탄스런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북한의 위협에 직면하고 있는 엄혹한 현실을 도외시하고 외교적 부작용이 발생해도, 국정원이 약화되어도 상관없다는 위험하고 무책임한 발상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일부 정치인들은 이런 내용을 모두 공개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근거없는 의혹을 입증하기 위해 국정원이 더 이상 정보기관이기를 포기하라는 요구와 같다. 국정원은 이미 우리 국민에 대한 사찰이 없었음을 분명히 했고 (국회) 정보위원님들의 현장 방문을 수용했다. 이미 합의한 절차에 따라 조용히 확인하면 될 일이었다. (7월19일, 연합뉴스)

마치 시민단체의 성명과도 같다. 일종의 '협박'처럼도 들린다. 온라인상에는 "직원들 이름이랑 얼굴도 드러내지 그랬냐"는 비아냥까지 나올 정도다. 내용을 뜯어보면 마치 야당 정치인들이 '조용히'했으면 될 일을 마치 논란을 일으켰다는 식으로 겁박하듯이 말한다. '무책임한' '근거없는 의혹' '외교적 부작용' 등 국익에 마치 해가 되는 일을 한다는 듯 비판한다.

2. ' 국정원 임 과장은/ 마티즈를 타고/ 경기도 용인 모 교회 집사이자/두 딸의 아버지'라는 신원 노출은 무엇을 노리고 있나?

국회 정보위원회 여당 간사인 새누리당 이철우 의원(왼쪽)과 정보위 소속 박민식 의원이 기자회견을 가지고 있다.

국정원은 자살로 생을 마감한 임 모 과장의 신원을 지나치게 노출하고 있다. 겉으로는 빈소 등을 취재진에게 막은 것처럼 보이지만, 이번 해킹을 둘러싼 이야기들이 새누리당, 국정원 관계자, 빈소에 온 사람들을 통해 흘러 나오고 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자살한 임 모 과장의 가족 이야기다. 보통 국정원 직원의 가족 관계는 노출되지 않는다. 그런데 국회 정보위원회 여당 간사인 새누리당 이철우 의원(김천)과 정보위 소속 박민식 의원은 19일 국회 브리핑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이번에 문제가 된 프로그램을 직접 구입하고 사용한 직원으로, 정말 모범적으로 일해 국정원 직원 사이에서 신망이 깊고, 딸이 둘 있는데 한 명은 사관학교에 입학하는 등 가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었다" (7월19일, 연합뉴스)

용인의 한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선 끊임없이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집사였던 임 과장과 같은 교회에 다니던 지인들의 찬송가 소리도 이어졌다. 장례식장을 찾은 교회 지인은 “이럴 사람이 아닌데…”라며 안타까워했다. (7월20일, 국민일보)

임씨는 자신 소유 이 승용차의 운전석에서 번개탄을 피워 숨진 채 발견됐다.

경기도 용인에 있는 한 교회에 다니는 집사이자, 두 딸을 두고 있으며, 그중 첫째 딸은 사관학교에 다니고 있으며 둘째 딸은 고3인 사람이 대한민국에 몇 명이나 될까. 게다가 임 집사는 빨간색 마티즈를 타고 다녔다. 지인들은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을 정도로 정보를 모두 공개했다. '국정원 임 과장이 종교적으로 신실한 사람이며 마티즈를 타는 검소한 사람이고 두 딸의 가장인 가정적인 사람인데 그런 나쁜 짓을 할 리가 없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함일까.

가족관계에 문제가 없다는 점과 내국인에 대한 해킹 여부의 상관관계는 그다지 없음에도 집권 여당의 정보위 간사의 입을 통해 나오는 이유는 뭘까. 유서 내용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고서라도 경찰관도 아닌, 국가정보기관의 가족관계가 이렇게 노출되는 점은 '동정심'을 얻기 위한 것일까.

3. 은수미 의원 "나를 고문하던 이들, 진정 그대들은 부끄럽지도 않은가?"

국정원 직원들에게 묻는다, 진정 그대들은 부끄럽지도 않은가?20여년전 그대들로부터 모진 고문을 당한 후 사경을 헤맬때도 원망하지 않았다, 나와 정반대의 입장에 서서 불법적인 고문을 하지만, 고민도하고 부끄러움...

Posted by 은수미 on 2015년 7월 19일 일요일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불법해킹 들킨 것도 부끄러울 판에 버젓이 야당탓하는 공동성명까지 발표한다?" 그것이 "음지에서 일하며 양지를 지향한다"는 정보기관원들의 태도인가? 스파이가 공동성명 발표를 하다니 언제부터 사회단체가 되었나?"라며 국정원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특히 은 의원은 국정원의 전신인 안기부에서 고문을 당한 바 있다.

나를 한달가까이 고문하면서 그대들이 한 말 기억하는가? "간첩잡고 국제활동하기도 바쁜데 어쩌다 국내사람인 어린 너를 고문하는지, 더럽다" "우리도 가슴이 덜컥 할 때가 있다. 언제인줄 아나? 길을 걷다 우연히 우리에게 고문당한 사람을 봤을 때다"

나를 고문했던 3개조 21명.

서로를 별칭으로 부르던 그대들.

지금도 기억나는 별칭인 만두, 김과장!

재직하는지 알수 없지만 한번 대답해보라. 이것이 당신들의 본모습인가? (7월20일, 은수미 의원 페이스북)

안기부에서 걸린 병은 폐렴과 장염이었습니다. 전혀 먹지를 못하고 먹으면 바로 쏟아내고 하니까 그 쪽에서도 죽는 줄 알았을 겁니다. 물론 고문도 당했죠. 당시에는 전기고문은 없었지만 물고문은 당해봤고, 성고문에 대한 협박도 받았고.. (3월10일, 딴지일보)

주간경향 1월20일 보도에 따르면 "1992년 우리나라를 뜨겁게 달궜던 ‘사노맹’(남한 사회주의노동자동맹)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정부는 사노맹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박노해·백태웅씨 등 간부 수십 명을 검거·구속했다. 박노해·백태웅씨에 이어 ‘넘버 3’였다"고 설명했다.

국정원은 이전 사건과 다르게 '공식 대응'을 하고 나섰다. 그들 말대로 조용히 처리하고 넘어갈 일을 '안보'를 다루는 국정원이 이렇게 대응하고 나서는 데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늘어나고 있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정치 #국정원 #양지 #은수미 #고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