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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관광버스 차벽'이다(사진)

28일 오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앞 버스정류장을 관광버스 6대가 포위하고 있었다. ‘관광버스 차벽’에 막힌 시내버스들은 도로 중간에 정차해야 했다. 정류장에서 기다리던 시민들이 도로로 달려나가면서 하차하던 승객들과 뒤엉켰다.

차벽을 친 관광버스 운전기사 배기주(53)씨는 쇼핑에 나선 중국인 관광객들을 기다린다고 했다. 배씨는 “원래 여기 세우면 안 되는데 도저히 세울 곳이 없다. 중국인들은 성격이 느긋해서 버스를 타고 내릴 때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했다. 디디피 근처에는 관광버스 52대를 세울 수 있는 노상주차장이 있지만 이미 ‘만차’ 였다.

외국인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인 서울 명동 롯데백화점 주변은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관광버스들이 차벽을 만든다. 근처 남산순환도로에 주차중이던 관광버스 기사 이원용(55)씨는 홍콩 관광객 16명을 명동에 내려주고 왔다고 했다. 이씨는 “유료주차장도 만차다. 세울 곳이 없으면 시내 도로를 뱅뱅 도는 날도 있다”고 했다. 명동에 직장이 있는 지승훈(31)씨는 “안 그래도 복잡한 도심인데 관광버스들이 늘어서 있다 보니 길이 더 막힌다”고 했다.

서울시 조사(2013년) 자료를 보면, 롯데백화점 주변에는 평일 오전 11시30분에 평균 59대의 관광버스가 몰린다. 오후 4~6시에도 67대가 주정차를 반복하며 교통 혼잡을 가중시킨다. 주말에는 오후 1~6시에 관광버스 52~74대가 주정차를 한다. 버스당 평균 주차시간은 평일 102분, 주말 71.3분이었다.

황금연휴인 중국 노동절(4월30일~5월4일)과 일본 골든위크(4월25일~5월6일)를 맞아 중국인 10만명과 일본인 7만3000명이 한국을 찾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서울 도심 곳곳에 관광버스 차벽 경고등이 켜졌다. 차벽에 막힌 시민들의 불편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한 경찰과 서울시도 비상근무 체제에 들어갔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지역 주민들은 아우성이다. 중국인이 많이 찾는 종로구 부암동 서울미술관 앞에서 꽃집을 하는 황정인(53)씨는 “미칠 노릇이다. 주말이면 양 차선에 관광버스들이 줄지어 주차해 골목을 다 막아버린다”고 했다. 장신구를 파는 이형훈씨는 관광버스가 공회전하면서 내뿜는 매연 때문에 두통에 시달린다고 했다. 단체관광객들이 몰리는 공연 장소인 종로 서울극장, 충무로 명보극장 주변은 공연이 끝나는 시간대에 관광버스들이 한꺼번에 몰리며 혼잡이 극에 달한다.

지난해 1월부터 이달 29일까지 서울시에 관광버스 주정차 문제로 접수된 민원은 1만1783건이다. 중국인 관광객들이 몰리는 마포구(1993건), 중구(1442건), 종로구(1352건), 서대문구(1003건) 순서로 많다.

구청과 경찰은 사실상 두 손을 든 상태다. 김기환 중구청 주차관리과 주무관은 “관광버스 줄이 밀려 앞차가 나가기를 기다리거나 기사가 탑승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 단속이 쉽지 않다고 했다. 정규열 남대문경찰서 교통관리과장은 “(주차할 곳이 없는 것을 아는데) 다른 곳에 주차하라고 말할 수 없으니 그냥 ‘이동하라’고 한다”고 했다.

서울시가 2013년 내놓은 ‘관광버스 권역별 수요 예측 및 추가 주차장 확보를 위한 연구’를 보면, 하루에 서울 도심으로 들어오는 관광버스는 최대 788대에 이른다. 그런데 도로 일부를 전용한 노상주차장까지 포함한 주차 수용 능력은 598대에 불과하다. 이미경 서울시 주차계획과 주차계획팀장은 “여행업계에 수요조사도 하고 교통 흐름도 조사해서 추가 주차장을 선정했다. 하지만 관광객 증가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했다. 서울시는 2018년 남산 교통방송(TBS) 건물 자리에 관광버스 122대를 세울 수 있는 지하주차장을 건설할 계획도 세웠다.

당장의 대책은 없다. 단체 패키지 여행 위주인 중국인 관광객들의 특성 때문이다. 김순관 서울연구원 박사(교통시스템연구실)는 “독일 베를린은 외곽에 버스를 세워두고 정해진 시간에 관광객을 태우러 오는 식이다. 도보관광 쪽으로 여행 패턴이 바뀌고, 관광교통 정책도 픽업 시스템으로 변해야 한다”고 했다. 경복궁~창덕궁 도보관광을 하게 하고 그 시간 동안 버스는 주차장 여유가 있는 남산 쪽에 세워두는 방안 등을 검토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같은 연구원의 금기용 박사(시민경제실)는 “중국인들도 초기에는 단체여행을 많이 오지만 이후에는 일본인 관광객처럼 혼자서 또는 몇 사람이 같이 다니는 여행으로 바뀌게 된다”고 했다.

관광객이 몰리는 미국 일부 도시에서는 아무 데나 주정차하지 못하도록 관광버스 승하차 지점을 정해놓고 있다. 또 비어 있는 주변 주차장 정보를 관광버스 기사들의 스마트폰으로 전송하는 지능형 주차 시스템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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