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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4월 24일 06시 17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6월 24일 14시 12분 KST

시대를 건너는 법, "뛰지 말고 어슬렁거리자"

유곽에 숨었기에 그는 마르크스를 논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국학(國學)으로 돌아서는 것과 같은 변절을 피할 수 있었다. <게다를 신고 어슬렁 어슬렁>은 "나는 도무지 새로운 세계의 사상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다. 마침내 나는 세상에서 완전히 소외되고 말리라"고 눙치면서 군국주의 시대를 건넜던 작가의 변장술을 보여준다. 슬리퍼를 걸치자. 게다면 또 어떤가? 뛰지 말고 어슬렁거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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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독서일기]

나가이 가후의 산문집 <게다를 신고 어슬렁 어슬렁>(정은문고, 2015)을 읽었다. 나가이 가후는 <묵동기담>(문예춘추사, 2010)이라는 소설로 겨우 한국에 명함을 내민 낯선 작가이지만 일본에서는 유명하다. 특히 <묵동기담>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에 모티브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에는 간혹 화류계 여성이 등장하지만, 나가이 가후는 화류계 자체를 문학 세계로 삼았다.

1879년 도쿄에서 태어난 작가는 1903년부터 1908년까지 미국과 프랑스에 체류했던 '모던 보이'다. 또 에밀 졸라에 심취했던 그가 이십 대 초반에 낸 소설은 모두 자연주의 작품이다. 그러던 그가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을 자처하면서 메이지 이전의 풍속을 예찬하고 유곽을 노니는 소설과 수필에 전념하게 된 것은, 강의를 하기 위해 학교로 가는 중에 대역(大逆)사건의 죄수들을 실은 마차를 보고서다. 1910년, 일본 경찰은 사회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를 말살하기 위해 대역 사건을 조작했다. 작가는 그 사실을 알았지만 드레퓌스 사건에 맞섰던 졸라와 같은 용기가 없었다. 양심의 가책을 느낀 그는 자신을 사창가로 끌어내렸다.

그 무단한 시대에 당신은 어쩌자고 술집을 번질나게 다니며 여급과 수작하는 글을 써댔느냐는 후대의 비난에 미리 답하기나 하려는 듯, 그는 <묵동기담>에 이런 요지의 석명을 했다. '내가 십 년을 하루같이 화류계 출입만 한 까닭은 화류계가 부정과 암흑의 세계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이 방탕한 사람을 충신이나 효자로 기리고 칭찬하길래, 나는 부정과 암흑으로 알려진 반대쪽으로 달려갔다. 어쩌다 정의의 궁전에 새나 쥐의 똥이 떨어져 있는 것처럼, 악덕의 골짜기에서도 아름다운 인정의 꽃과 향기로운 눈물의 과실을 따서 모을 수 있다.'

나가이 가후는 국가와 작가가 서로의 영역을 간섭하지 않기로 한 사소설(私小說)로 펜을 옮겼다. 하지만 그에게 열린 출구 가운데 하나였던 통속이 나름 의도적이고 반사회적인 기획이었다는 것은, 국가와 작가의 암묵적 계약에도 불구하고 그의 소설이 번번이 국가의 제재를 받았다는 사실로 증명된다. 또 다른 출구인 과거 회귀는 심미적 생활 예찬(dandyism)과 결합했다. 그리하여 세상일이야 어떻든 "골목은 어엿하게 예술이 조화를 이룬 세계"라며 도쿄의 옛 자취와 풍속을 탐닉하는 만보객(漫步客)이 탄생한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현실 비판이 좌절된 졸라이즘(Zolaism)이 문명 비판으로 비약하는 것이다. 나쓰메 소세키의 사정도 그와 같았다.

어느 날 작가는 셋집을 구하러 나갔다가 한 무리의 노동자들이 조합의 깃발을 앞세우고 대오를 맞춰 행진하는 것을 보았다.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면서 그는 자신의 댄디즘이 불행한 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한탄했다. 그 각성이 방향 전환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대신 유곽에 숨었기에 그는 마르크스를 논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국학(國學)으로 돌아서는 것과 같은 변절을 피할 수 있었다. <게다를 신고 어슬렁 어슬렁>은 "나는 도무지 새로운 세계의 사상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다. 마침내 나는 세상에서 완전히 소외되고 말리라"고 눙치면서 군국주의 시대를 건넜던 작가의 변장술을 보여준다. 슬리퍼를 걸치자. 게다면 또 어떤가? 뛰지 말고 어슬렁거리자.

나가이 가후(WIKIMEDIA COMMONS)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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